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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심히 Feb 15. 2021

21st Century Breakdown

Green Day (2009)


호랑이 없는 숲엔 여우가 왕이라  


락 음악이란 건 참 별 거 없다. 그게 커트 코베인이 머리에 총을 쏜 다음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아니면 메탈리카가 [St. Anger]를 통해 장렬히 전폭 사망한 다음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이도 저도 아니면 아예 짐 모리슨이 '30살 넘은 사람 말은 믿지 말라. 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니까'라고 말한 바 있는데 지금 잘 나가는 뮤지션들은 다 30살 이상이라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째 자의든 타의든 락 음악이란 참 별 거 없게 되었다. 


그린 데이의 새 앨범을 둘러싼 요란한 반응들은, 이러한 락 신 전체의 거대한 상실감을 반영한다. [American Idiot]은 아메리칸 아이돌만큼이나 거하게 미국 사회를 '때린' 락 음반이었다. 한 때 개념과 진심이 없는 아해들의 기타 음악으로 치부받던 네오 펑크 밴드를 향한 평가가 앨범 한 장을 통해 180도 바뀐 것에는 그 컨텐츠의 힘은 물론, 락 음악을 통해 사회를 때려본 지가 워낙 오래된 락 신의 초조함이 큰 역할을 했다. [Dookie]에 대한 격양된 그네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접한 세대들에게, [American Idiot]에 대한 '완전한' 찬사는 운동권 행동대장에서 대심도철도의 선봉장으로 돌아선 김문수 도지사를 지지하는 고엽제 전우회를 바라보듯 당혹스럽거나, 급작스럽거나, 그래서 더 큰 시대적 상실감을 느끼게 했다. (사실 님로드 때도 그린 데이 꽤 많이들 쌩깠잖아.) 그린 데이가 회심의 일격을 준비하는 사이 과거의 영광을 소비하던 그 수많은 거장들은 어째서 락 음악신이 사소해지는 것을 막지 못했던 것일까. 세상에, 그러던 사이에, 이제 네오 펑크 밴드가 가장 사회적으로 '깊숙한' 락 음악을 내놨어. 


[21st Century Breakdown]은 애써 쌓아 올린 그 공든 탑을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의지로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내달린다. 그런데, 착잡하게도 이들의 이런 '기대치에 대한 정확한 사전 파악'이 완공건물의 부실을 모두 눈감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잘라 말해보자. [21st Century Breakdown]은 대놓고 거창하고 의미심장한 앨범이지만, [American Idiot]만큼 폭발력 있는 앨범이 되지는 못했다. 


이 앨범은 거대한 컨셉 앨범임을 자초하며 '아띠스뜨'로 얻은 굳건한 명성을 유지 보수할 것임을 천명한다. 여기에, 3분짜리 펑크 곡들을 계속 이어 붙이며 뚝심 있게 밀어붙이며 장르적 순결을 지키고, 미국 사회(그중에서도 비합리적인 미국의 정체성)에 대해 시종일관 날을 세우며 전작에서 구가했던 '똥꼬 깊숙이'의 엣지 또한 견지한다. 사실, 21세기에 이토록 노골적으로 사회관여적인 락 음악 자세를 견지한다는 점 자체가 이 앨범의 차별점이 된다. 그리고 3분 내외의 펑크 곡들로 앨범의 주 뼈대를 구성한 자체도 오만가지 하이브리드 펑크가 범람하는 지금 신선함의 요인 중 하나가 된다. 


앨범 자체를 세 파트의 거대한 플롯으로 구성해 '앨범'으로서의 완결성에 보다 공을 들였다 하는 게 또 다른 장점으로 포인트화 될 수 있다고 하는데, 펑크 에픽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 아이러니이기도 하고,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The Black Parade]도 그런 점에서 '펑크'의 궤를 넘었다고 평가되는 마당에 그린 데이라고 딱히 다른 거창한 완결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컨셉 앨범을 둘러싼 운운은 떡밥 물기에 가깝다. 


애매한 평을 하자면 확 끌리는 곡이 없고, 잘라 말하면 곡 자체의 훅이 뭉툭한 게 [21st Century Breakdown]의 단점이 된다. 물론 선명한 히트 예상곡 'Know your enemy', 'East Jesus Nowhere'들은 여전한 활력을 자랑한다. 묵혀둔 세월만 4년이 넘었으니 당연한 건가. 하지만 이 앨범을 둘러싼 분노는 펑크라고 하기엔 너무 지적(知的)이다. 3인칭으로 그와 그녀를 불러 세우고 그들이 떠도는 은유의 세계에서 빚어지는 폭력을 일일이 현재 미국 사회와 대칭하며 듣고 이해하기에 3분간 펼쳐지는 펑크의 에너지는 너무 짧고, 이는 그것을 물리적으로 열댓 곡 연결한다고 보완되는 성격의 것은 아니다. 애초에 분노나 슬픔이란 그 순간에 벌거벗은 채로 터졌을 때 가장 적나라한 법인데, 이 앨범은 너무 많은 장치들로 이를 연출하려 한다. 그것도 펑크의 틀에서 말이다. 이는 핑크 플로이드가 The Wall을 읊조릴 때 가장 적합한 연출법이었지만, 그린 데이가 21세기 담론을 꺼내들 때에는 어지간히 젠 체 하지 않으면 '즐기라고' 듣기엔 껄끄럽다. 


본디 펑크는 직설화법의 음악이다. 더 강한 에너지와 더 강한 전달을 원한다면 의식과 이성의 은유를 때로는 치워둘 필요가 있다. [American Idiot]은 그런 의미에서 참 줄을 잘 탄 음반이었다. 개별 곡 단위로 담아낼 수 있는 에피소드들을 묶어 일종의 옴니버스처럼 구성한 다음, 기저가 되는 분노와 상실의 정서는 밑으로 깔아둠으로써, 그린데이는 펑크로 이야기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적인 허용선을 건드렸다. 허나 여기, '미제 바보'들을 조롱하는 네오 펑크 키드들의 시대의식은 지나치게 확장되었다. 이 앨범은 펑크 앨범으로 존재하려 하는 거대한 에픽이다. 어느 장단에 줄을 타야 할지는 이제 그린 데이가 아닌 청자의 몫으로 돌아왔다.


3/5


https://www.youtube.com/watch?v=9IclmVdWN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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