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잃은 사회는 기술을 감당할 수 있는가

촉의 시대 에서 인공지능 시대 제6회

by Sun Lee

지금까지 나는 고대의 축의 시대를 지나 종교와 철학, 근대를 거쳐 마침내 인공지능 시대의 문턱에 선 오늘의 인류를 바라보며 하나의 질문을 붙들어 왔다.


이 거대한 전환 앞에서 인간은 무엇 위에 서 있어야 하는가.


오늘의 세계는 허무주의와 다원주의가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시대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상대화되었고, 정의는 힘의 크기와 이해관계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인류는 인공지능이라는 전례 없는 힘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사용하는 사회의 상태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일관되게 하나의 결론을 말해 왔다.


인류는 불변의 진리, 곧 정의와 양심의 기준 위에 서서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각자의 시대를 해석해 왔다.
그러나 그 모든 사유는 제한된 인간의 시야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지며 각자가 만진 부분이 전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창조주가 아니며, 문명의 전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사유를 넘어서는 불변의 기준이 필요하다.


나는 그 기준을 불변의 진리 곧 창조주의 말씀에서 찾고자 했다

.

이제 시선을 우리 사회로 돌려보자.


오늘의 대한민국은 외형적으로는 선진국의 모습을 갖추었지만, 사회 깊숙한 곳에서는 정의가 체감되지 않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법과 제도는 존재하나, 그 법과 제도가 과연 모두에게 동일하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이 깊은 의문을 품고 있다.


특히 이 나라를 악의 소굴로 만들었던 전 정권의 대통령 부부가 저지른 악행 들에 대해 이 나라의 법조 카르텔은 그들의 모든 악행을 정당화하는 연이은 무죄 판결로 정의는 무참히 짓밟히고 현실은 점점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동물 사회로 변하여 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 신문에 보도된 사건들을 보면


대장동 부정 사건의 주체들인 50억 클럽 멤버가 뇌물 50억을 아들의 퇴직금으로 둔갑시켜 받은 건을 부자 공히 무죄 판결을 내려 상식 밖의 죄임에도 천연덕스럽게 무죄로 저들을 풀어 준 사건… …


또한 온 국민이 다 아는 전 대통령 부인이 저지른 부정과 관계되는 사건들이 연달아 무죄 판결이 내려지고 있는 사태… …


주가 조작으로 거금을 벌어 들인 범죄에 대한 무죄 판결… …


소위 집사라는 사람이 온갖 특혜를 받고 저지른 범죄, 각종 뇌물을 받은 사건들에 대한 무죄 판결… …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전정권에서 저질러졌던 수많은 악행들이

전정권의 법조 카르텔에 의해 천연덕스럽게 지워지고 있다.


전정권의 법조 카르텔 무리들이 자행하고 있는 파렴치한 행위 들은 앞으로 인공 지능 사회를 마주하게 될 때 이 사회에 닥칠 재앙을 미리 보는 것 같아 두려움이 앞선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총체적으로 이러한 힘 있는 기득권자들이 사회 곳곳에서 똬리를 틀고 앉아 힘없는 서민들을 괴롭히고 사회를 혼란케 하는 참담한 사테가 빚어지고 있는 동물의 세계와 닮아 가고 있다.


이것은 특정 개인이나 몇몇 사건의 문제가 아니다.


기준을 상실한 사회의 구조 문제다.


절대적 정의의 기준이 사라진 사회에서 법은 쉽게 도구가 되고, 권력은 쉽게 카르텔로 굳어진다.


이러한 상태의 사회에서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힘이 더해진다면 그 위험은 더욱 커진다.
정의로운 기준 없이 강력한 기술이 결합될 때, 그 기술은 약자를 보호하기보다
강자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설계한 기준을 따를 뿐이다.
따라서 정의가 무너진 사회의 인공지능은 정의를 회복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불의를 더 정교하게 만들어 이 땅에 재앙만 가져올 뿐이다.


문제는 인공지능이 아니다. 문제는 그 기술을 사용할 사회가 이미 정의를 잃고 있다는 데 있다.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인공지능 시대는 단순한 기술 혁명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스스로의 도덕적 토대를 어디까지 유지하고 있는지를 시험하는 시대다.


불변의 진리는 과거로 돌아가자는 구호가 아니다.
기술을 거부하자는 주장도 아니다.
그것은 정의가 힘보다 앞서야 한다는 최소한의 선언이며,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한 마지막 기준이다.


정의가 무너진 사회는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져도 밝은 미래를 가질 수 없다.


반대로, 정의가 살아 있는 사회만이 기술을 도구로 삼아 인류의 삶을 확장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선택의 문턱에 서 있다.

정의 없는 사회 위에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힘을 얹을 것인가,
아니면 불변의 진리 위에 사회를 바로 세운 후 그 위에서 기술을 사용할 것인가.


이 글로써 축의 시대에서 인공지능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나의 사유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결론은 분명하다. 정의가 회복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 역시 밝을 수 없다,


그리고 정의의 회복은 불변의 진리인 창조주의 말씀을 다시 기준으로 삼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위에서만 인공지능 시대는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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