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문제에 갇힌 신앙

by 작은목소리 큰울림

구원 문제에 갇힌 신앙


많은 신앙인들이 마음 한편에 구원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배를 드리지만, 문득 “나는 과연 구원받았을까? 내 믿음이 부족해서 하나님께 버림받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남들 보기에는 신앙 생활을 잘하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구원의 확신이 없어 두려워하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 3장 16~21절 말씀을 통해 이런 불안을 해소하고자 합니다. 이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놀라운 사랑과 은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확실한 구원의 길, 그리고 심판과 구원의 차이, 빛과 어둠의 비유가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더 이상 구원의 문제에 갇혀 불안해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확신과 자비를 마음에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선물


요한복음 3장 16절은 성경 전체의 복음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가장 유명하고도 위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라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구절을 통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완전한 분이시지만, 사랑하신 대상인 ‘세상’은 결코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한 세상은 하나님께 반역하고 죄로 물든 세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바로 그 죄 많고 어두운 세상을 구원하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거역하는 죄인들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셨다는 사실은 그 사랑의 깊이와 놀라움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위해 최고의 것을 아끼지 않고 주듯이,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가장 귀한 외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의 선물이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은 우리의 삶에 엄청난 힘과 위로를 줍니다. 사람들은 종종 사랑의 결핍으로 상처를 입고 방황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독생자를 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을 마음에 받아들일 때, 우리는 “과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까?” 하는 의심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구원의 출발점은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붙잡아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의 사랑은 조건부가 아니며, 세상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고도 넘치는 사랑입니다.


심판이 아닌 구원을 위한 예수님


이어지는 요한복음 3장 17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을 분명히 밝혀 주십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사람을 향해 구조대원이 뛰어들 때, 그 목적이 그 사람을 꾸짖거나 시험하려는 게 아니라 살려내는 것인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죄 가운데 빠져 허덕이는 우리를 구하시려고 영적 구조대원으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이 나의 잘못을 찾으시고 책망하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신 건 아닐까 두려워했다면,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진심 어린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궁극적인 관심은 우리의 허물을 들춰 심판대에 세우는 데 있지 않고, 어떻게든 우리를 살려내어 자녀로 삼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자동으로 구원을 받는 것일까요?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 앞에서도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결국 예수님을 믿는지 여부에 따라 구원과 심판이 갈라집니다. 우리의 행위나 노력 여하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운명을 갈르는 것이지요. 성경은 이 세상 사람들을 결국 두 부류로 설명합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는 사람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죄사함과 영생을 얻은 이들입니다. 이들은 더 이상 정죄함이 없이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아 스스로 심판 아래 남는 사람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구원의 손길을 외면한 이들입니다. 이들은 사실상 이미 심판을 받은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점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부족한데 하나님이 날 버리시면 어쩌나” 염려하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순간 심판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붙드셔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언젠가 세상의 죄악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그 심판의 날에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책망이나 정죄가 아니라 구원의 완성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를 심판하려는 뜻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죄로부터 건져내어 영원한 생명을 주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고 이 구원의 약속을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빛과 어둠: 진리 안에서 살아가기


요한복음 3장 19~21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빛과 어둠의 비유를 통해, 사람들이 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길을 택하게 되는지를 설명해 주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늘로부터 온 빛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그 행위가 악함이라” 하셨습니다. 곧 자신의 악한 행위가 드러날까 두려워서 사람들은 빛 대신 어둠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부모님께 혼날까 봐 숨어 버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부끄럽고 두렵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가기보다 도리어 피하고 숨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어쩌면 구원의 확신이 없는 많은 분들의 내면에도, 자신의 죄와 연약함에 대한 두려움과 수치심이 자리잡고 있을지 모릅니다. “나는 이렇게 부족한데 하나님께 나아가도 될까… 내 추한 모습이 드러나면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그런 두려움 때문에 어둠 속에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은 분명히 “악을 행하는 자는 빛으로 오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이어서 진리를 행하는 자는 빛으로 나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진리를 행한다”는 것은 완벽하게 죄 없이 산다는 뜻이 아니라,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어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용서의 빛 앞에 나아오는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나게 합니다. 이는 자기의 의로움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삶입니다. 빛이신 예수님께 나오면 우리의 숨기고 싶던 죄악도 드러나겠지만, 동시에 주님께서 그 죄를 용서하시고 깨끗이 씻어 주십니다. 어둠 속에서 혼자 벌벌 떨고 있는 아이를 부모가 불빛 아래로 불러내어 “괜찮다, 다 용서한다” 하고 안아주는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주님께 나아올 때 받는 책망보다, 죄 사함과 회복의 은혜가 훨씬 크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빛 가운데 산다는 것은 이제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3장 21절은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고 난 후의 우리의 선한 삶은 더 이상 내 힘이나 의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세상에 드러내는 증거가 됩니다. 이제 우리는 두려움 속에 숨어 죄의 종으로 살 필요가 없습니다. 빛 대신 어둠을 사랑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빛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주님의 빛은 우리의 허물을 밝히 드러내어 아프게만 하는 정죄의 빛이 아니라,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고 어둠을 몰아내는 생명의 빛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며 나오는 자를 결코 내쫓지 않으시고, 오히려 품에 안고 기쁨으로 맞아 주십니다. 이제 더 이상 숨지 말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마음을 열 때 참된 평안과 확신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사랑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복음 3장 16~21절의 말씀은 구원의 확신이 없어 불안에 떠는 우리에게 분명한 복음의 진리를 선포합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이나 자격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완전한 구원의 길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영접하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결코 빈말이 아닙니다. 혹시 아직도 “내가 구원받기에 충분히 착한 사람일까? 충분히 열심히 믿고 있을까?” 스스로를 정죄하고 있다면, 이제 그 시선을 나 자신이 아닌 예수님께로 돌리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확신은 나의 자격을 바라볼 때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생겨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구주이십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우리를 시험에 통과시키지 못하면 탈락시키려 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해주는 어떤 인간을 의지하여 사는 존재가 아니라,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사는 존재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두려움에 사로잡혀 ‘구원 문제’에 갇혀있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실 정도로 사랑하신 바로 그 대상이 나 자신임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면, 이미 당신은 멸망해서 생명으로 옮겨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 은혜를 받아들이고, 담대한 발걸음으로 빛 가운데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 안에서 참된 평안과 구원의 확신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작가의 이전글사랑하는 친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