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말라기서를 떠올릴 때면,
늘 한 구절이 먼저 마음에 자리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10)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는 파격적인 초청,
그리고 하늘 문을 여시겠다는 약속은
지금도 믿음의 도전을 주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읽으며,
그저 물질의 축복만을 말하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내 시선을 붙잡은 말씀은 3장 1절이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직접 세례 요한에게 적용하셨다.
첫 번째 사자는 주 앞서 길을 예비한 요한이었고,
“언약의 사자”는 바로 성전에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셨다.
말라기서는 단순히 당시 유다의 제사장과 백성을 꾸짖는 책이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아와 그 길을 준비할 사자에 대해 예언하는 책이었다.
말라기의 메시지는 불순물을 제거하는 정련의 불처럼,
회개 없는 신앙을 흔들어 깨운다.
의로운 해가 떠올라 치료의 광선을 비추고(말 4:2),
아버지의 마음과 자녀의 마음을 다시 돌이키게 하신다(말 4:6).
단순한 교훈을 넘어,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만드는 말씀이다.
무엇보다도, 말라기는 구약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다.
이후 약 400년 동안 하늘은 침묵했다.
그러나 이 침묵은 끝이 아니라 준비였다.
그 끝에서 세례 요한이 등장했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나는 이제야 알겠다.
말라기서가 단순히 십일조와 축복의 공식만을 전하는 책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 안에는 언약의 성취를 향한 하나님의 기다림과,
메시아를 통한
회복의 약속이 감추어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고백한다.
나의 좁은 이해로 여호와를 괴롭혔던 지난 날을.
그러나 이제는 이 말씀 안에 숨겨진 더 큰 뜻을 보게 되었다.
말라기서는 결국,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다리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