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 더 도어

커피, 디저트보다 중요한 것

by 태지인

1. 작은 문


나에겐 불치병이 있다. ‘단발병’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슴 깨까지 머리를 길러, 태어나서 가장 긴 머리를 한동안 고수했던 탓에 완치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최신 유행 태슬컷 단발을 한 여자 연예인 이미지를 보자 바로 재발했다.


미용실에 가기 전까지, 미용실 의자에 앉는 그 순간까지, 갈팡질팡, 왔다 갔다, 롱헤어와 단발머리 그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마침내 오래 길러왔던 긴 머리를 청산하고, 일명 여배우 단발, 태슬컷하고 상큼해지기로 결심했다. 스스로도 쓸데없이 비장함이 넘쳤다.


태슬컷에 태슬펌까지 아름다워지기 위한 각고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마무리 스타일링이 끝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순간, 어디에도 여배우는 없었다.

그곳엔, 그냥 단발머리를 한 여자 사람이 있었다


단발세상의 문으로 들어가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 문을 왜 열었을까

허나, 단발머리는 죄가 없다.


연예인 단발 사진을 들이밀며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난 어떤 기대를 한 걸까?

도대체 무슨 가능성에 매달렸던 걸까?

그 애매한 가능성에 매달린 결과는 처참했고,

이 꼴을 보자고, 그렇게 고민했던 수많은 잠 못 이뤘던 밤들이 아까웠다.



expectation


reality





2. 커다란 문


내 친구의 친구인지, 그 친구의 친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는 십 년째 연애 중으로, 동시에 끊임없이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 있다고 한다.

분명 기존의 연인과의 관계는 소원해져 있을 테고, 그 사실이 때로는 서글프기도 하겠지만,

새로운 사람은 더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고, 그래서 점점 새로운 관계에 열정을 쏟겠지만,

그렇다고 오래된 연인 또한 포기하지 못하는 상황.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싶지만, 먼 훗날 오래 만났던 연인을 더 사랑했다는 생각이 들까 봐 하는 그 애매한 가능성 때문인 걸까?

어느 쪽도 쥐고 놓지 않은 채로 두 사람 사이, 두 문을 왔다 갔다 하며 고민하는 흔한 고구마 러브스토리.


애정 없는 사람과 시들어가는 관계를 지속하면서, 왜 새로 피어나는 현재의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까


이것이 안타까운 이유는 바로 정작 중요한 순간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데, 그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야근하는 동안 자녀의 어린 시절이 끝나가는 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문들은 너무 천천히 닫혀서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누구에게나 크든 작든 단호하게 닫아야 할 문이 있다


상대적으로 머리를 자르는 것처럼 작은 문을 닫기는 쉽다. 하지만, 큰 문을 닫기란 쉽지 않다. 우리의 꿈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여겨지는 문,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와 같은 인생의 커다란 문 말이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에 따르면,


현대사회에서 사람은 기회의 상실도 괴로워하지만, 기회가 많아도 괴로워한다고 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모든 할 수 있고, 모든 될 수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 그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을뿐더러, 이 문에서 저 문으로 우왕좌왕할 뿐만 아니라 별 가치가 없는 문 마저 열어 보려 하는 충동을 제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다양한 가능성이라는 허울 아래, 모든 문을 항상 열어 보고자 하는 쓸모없는 가능성을 쫓는 비 이성적인 강박관념이 누구에게나 존재하기에, 정작 중요한 문으로 나아갈 우리의 열정과 의지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는 단호하게 문을 닫아야 한다.


주 2일 휴무, 영업시간은 11:00~18:00, 그렇게 일찍 닫아서 무슨 장사를 하냐고 타박하시는 손님도 있었지만, 아이들과의 함께하는 저녁식사가 더 중요하다





3. '디저트'의 문


지금까지 디저트 카페를 개업한 이래로 쿠키, 케이크, 스콘, 블론디, 브라우니, 휘낭시에, 버터바 등등 약 2백여 가지가 넘는 디저트를 만들었다.

작금의 카페 경쟁 속에서 치열하게 고군분투한 흔적이라 우기고 싶지만, 사실 그동안 난 카페 사장이 아니라 디저트 연구소장으로 살았던 것이다.


다른 카페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카페를 꿈꿨다. 그러한 경험이 고객의 가슴속에 깊은 인상을 남기면 저절로 입 소문이 생기리라 믿었다. '홍보가 별거 있냐 그게 홍보지' 배짱도 그런 배짱이 없었다.


그렇게 강박관념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디저트를 시도했다. 하지만, 새롭다는 이유로 리드하는 세상이 아니다.

손님들은 새로운 디저트를 흥미로워할 뿐, 구매하지 않았다. 항상 내가 아는 맛, 익숙한 디저트를 찾았다. 고객이 잘 모르는 생소한 것을 굳이 시도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여느 맛집처럼 단일 품목으로 승부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수많은 디저트의 문을 다 열어보려고 우왕좌왕했다.

쥐꼬리만 한 매출의 가능성에도 연연하는 자영업자, 여름이면 냉면도 팔고, 콩국수도 팔고, 돈가스도 파는 장사 안 되는 감자탕 집처럼 말이다.


점점 김밥천국의 카페버전인 디저트천국이 된 것처럼 가짓수가 늘어났지만, 비례하여 매출이 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손님 입장에서 도대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매번 아리송했을 것이다. 무조건 메뉴는 복잡하지 않아야 한다.

어리석게도, 그 단순한 장사 원칙을, 깨달은 것은 그해 가장 낮은 매출을 기록한 날이었다.


결국 스스로를 그토록 힘들게 만든, 그 애매한 가능성 때문에, 가능한 많은 문을 열어두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쳐왔던 것일까?


어떤 디저트를 파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을 팔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어떻게 팔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었다.


마지막 세일이라 다시는 그 물건을 살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언젠가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애매한 가능성을 품고선,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게 되는 것처럼,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던 디저트를 다시, 하나 둘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마추어는 맛에 집중하고,

프로는 맛있게 먹도록 하는 것에 집중한다.

결국 서비스의 문제인 것이다.


질 좋은 재료를 쓰면서도 원가를 낮추고,

누구나 아는 메뉴를 일부러 찾게끔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쉽지만 남들이 함부로 따라 하지 못하는 것에 신경 써야 한다.



들락날락거렸던 문들을 차단하자 비로소 하나의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손님의 얼굴을 보고 진심으로 인사하는 것에 더욱 집중하기로 마음먹은 것이 그것이었다.





*참고문헌 <상식 밖의 경제학> 댄 애리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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