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하는 시간도 내 인생
MBTI를 할 때마다 매번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
어느 한쪽에 편중됨 없이, 모든 성향이 고루 분포하는 가장 보통의 인간인 줄 알았지만, 사실 난 매우 애매모호한 인간인 건가?
직관(N)과 감각(S)
사고(T)와 감정(F)
판단(J)과 인식(P)의 스펙트럼 안에서 나는 이쪽일 때도, 때로는 저쪽일 때도 있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적인 영역은 고정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전 생애를 걸쳐 퇴행과 성숙, 단순과 복잡을 오가며, 타고난 환경과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를 통해, 직간접적 영향을 받으며,
누군가는 평생 할 지랄을 한 번에 하기도 하고, 누구는 평생에 걸쳐 나눠서 하기도 하는 등(*지랄 총량의 법칙: 인간은 누구나 평생 하는 지랄의 양이 같다)
그 자체로 복잡 다단한 영역이기에 제한된 질문을 통해 간단히 평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MBTI를 그닥 신뢰하지 않는단 소리를 참도 길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항상 변하지 않는 것은
I(introversion 내향형 타입)라는 사실이다.
혼술, 혼밥이 유행하기 훨씬 이전부터
혼자서도 심심하지 않고,
혼자 있을 때 진정한 휴식을 느끼며,
혼자 있을 때 가장 제정신이 된다는 것을 일찍이 깨우쳤던 나.
인생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운명이 아니라,
성격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결국 성격대로, 카페, 나 혼자 하고 있다.
카페 경영 지출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 부담은 물론, 대인 관계에서 오는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현상 유지조차 쉽지 않은 카페 경쟁에서 버틸 수 있으려면 1인 카페가 대안이기에,
‘카페, 나 혼자 해야 한다‘고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틈만 나면 혼자를 찾고, 혼자의 시간을 구하려고 노력하는 중,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고, 마침내
‘혼자가 경쟁력이다!'라고 부르짖게 된, 극 내향형 인간만이 얻을 수 있었던 인사이트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같은 것이지만,
개업 초기에는
손님이 오길 바라면서
손님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이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싶지만 실화다.
처음엔 손님에게 '어서 오세요'라고 말하는 것도 부끄러웠다. 그런 인간이 카페 사장을 했던 것이다.
어찌어찌 인사를 하고 나서도, 손님과 자연스럽게 스몰토크가 이어져야 하는데 그게 참 힘들었다.
원래가 난 으레 인사치레로 하는 ‘밥 먹었어? 같은 말들이 싫었다. 정말 밥을 먹었는지 여부가 궁금하지도 않은데 오직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서 하는 의미 없는 말들. '말의 낭비'같은 것이라 여겼다.
카톡방 안에서도 굳이 할 말이 없으면 읽씹 하는 부류, 그게 나였다.
하지만 카페는 카톡방이 아니다.
인사치레라도 정성을 드려서 해야 하는 것이다.
손님이 잠깐 와서 머물다 가더라도, 적절한 관심과 반응으로 대응해야 하는 소프트 기술이 필요한 것은 오프라인 서비스업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카페 매출 부진의 탓을 음료와 디저트로 돌리며, 새로운 메뉴 탄생에만 혈안이 된 나날들이 계속 됐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코로나의 길고 긴 터널을 지나면 봄날이 시작될 거라 생각했지만, 상황은 더 나빠져 있었다.
과거의 나의 어리석음으로, 현재의 나는 손님이 없어 울상이 되었다.
유동 인구가 많지 않은 을씨년스러운 골목에 자리 잡은 카페 위치 때문이 아니었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었다.
기분이 좋지 않아도 항상 최고의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손님은 그 얼굴 만을 기억한다는 것을 과거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얼굴이 문제였다. 그 얼굴의 주인이 문제였다.
그 뒷감당은 오롯이 현재의 나의 몫이었다.
카페, 나 혼자 해야 한다고 했는데,
점점 혼자의 시간이 차고 넘치자,
더 이상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혼자가 서글퍼졌다.
멋들어진 카페 인테리어, 가구도, 손님이 존재할 때, 빛을 발하는 법이다.
카페에 앉아있는 손님 그 자체가 가장 멋진 인테리어가 되어 또 다른 손님을 이끈다.
카페 창업 전, 나는 유튜브로 개인 카페들의 일상 브이 로그를 많이 보았는데 그들이 종종 카페 일상을 창살 없는 감옥으로 묘사하는 것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제야 그 말이 이해 가기 시작했다.
카페 경영을 인건비 운운하며, 슈퍼맨처럼 모든 걸 다 혼자 해내야 지만 버틸 수 있다고 말했지만,
결국 또 누군가(손님)과 관계를 맺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이 곧 브랜딩이기도 했다.
작은 동네카페일수록 그런 관계 맺기가 더 필요한 법이었다.
혼자 해야 하지만,
혼자 할 수 없다.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모든 것은 훈련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제빵제과 자격증도 바리스타 자격증도 없지만, 모든 디저트를 만들고, 에스프레소 음료를 만든다.
자격증 없이 카페, 나 혼자 할 수 있었던 것은 반복과 연습, 훈련이었다. 관련 서적, 지식 검색, 유튜브 등등 세상에 선생님은 지천에 깔려있다.
그 유명한 만 시간의 법칙까지 필요도 없다. 만 시간은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일 뿐, 뭐든 2~3 주면 몸에 감각이 배고, 익숙해지기에 충분하다.
인생은 기저귀를 떼어내는 연습을 하던 그 순간부터 훈련의 연속이었다.
관계를 맺는 것도 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내향형 인간은 훈련량이 더 필요로 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특별할 게 없는 훈련이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라 같은 단순한 것들이다.
나는 목소리의 톤을 높이고,
손님마다의 기호를 잊지 않으려 메모했고,
그들의 대소사를 알게 되면 디저트를 선물하며 축하해 주었다. 퍼주는데 장사 없다고, 갖은 이유를 대며 서비스를 드렸다.
그렇게 한 계절이 지나갔다...
매번 제주레모네이드를 사러 오시는 연세가 지긋한 단골 분이 계시다. 보통 우리 카페에 자주 오시는 연령층은 아니다.
딸이 마실 거라면서 항상 꼬깃한 현금 5천 원을 내고, 레모네이드만 사가신다. 내 딴에는 흔하지 않은 할머니 손님이 고마워 직접 담근 제주레몬청도 듬뿍 넣고, ‘청을 듬뿍 넣어서 진할 테니 탄산수 계속 부어가면서 드세요’ 하며 항상 탄산수 한 병을 같이 넣어드렸다.
어느 날은 문을 열어드리고 조심히 내려가시라고 배웅을 하는데 그분이 다리를 절뚝이며 가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멀어지는 그 모습을 보는데 맘이 아려 왔다. '그냥 가까운 데서 사 드시지 왜 여기까지 걸어오실까 다리도 안 좋으시면서'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처음으로 또 오지 않기를 바란 손님이다.
하지만 내 염원과 달리 그분은 그 후에도 계속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카페로 오셨다.
5천 원을 내시면 500원을 거슬러드렸지만 어느 순간 그것도 받지 않으신다. 그렇게 장사하면 남는 것도 없다고 기필코 잔돈을 사양하신다.
그런 분께서 오늘은 만원을 내시며 디저트까지 구매하셨다. 내심 딸 입맛에 맞을까 걱정하면서.
왜 딸이 직접 안 오냐고 묻고 싶지만, 행여나 더 가슴 아픈 사연을 듣게 될까 봐 참기로 했다. 아마도 영원히 물어보지 않을 것이다.
금전과 재화가 오고 가는 상황이지만, 그런 손님 앞에서 가격은 무의미해진다. 이윤이나 원가도 마찬가지다.
그분이 생각보다 더 꽤나 먼 곳에서 오신 것을 알게 되고 내가 놀라자,
이젠 내 얼굴이 생각나서 오게 된다고 하셨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고 가는 인사말처럼 '감사합니다'를 입에 붙이고 살지만, 그 순간, 오히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고마운 맘 앞에서는
마음이 먹먹해진다.
그 감정이, 그 순간이, 너무 귀한 것임을 알게 될 정도로 나이를 먹게 된 것이다.
분명 돈 때문에 하는 일이지만,
돈 말고도 얻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내가 내일을 잘하고 있구나, 하는 안심 같은 것이다.
일 하는 시간도 내 인생이기에 더 나아가 내 인생의 시간을 잘 보내고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내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다시 그러한 기분으로 손님을 대하게 된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미소가 번진다.
카페 혼자 하고 있지만
혼자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