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MYSELF

카페 경영과 자기 경영

by 태지인

그날은, 이제 곧 여름이 오겠구나 했던,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첫 번 째 손님은 20대 초반의 긴 머리 여자 손님, 아메리카노 2잔, 버터바 하나, 스콘 하나를 테이크 아웃하셨고, 두 번째 손님은 단발머리에 안경을 쓴 30대 여성으로 카페 단골손님인데, 아이에게 준다며 쿠키 두 개를 사 가지고 가셨다.


손님의 인상착의, 구매하신 목록, 모든 게 선명하게 남아있다.

두 분이 그날의 유일한 손님이었기 때문이다.

이 날 총매출은 22000원.




첫 오픈 이후 2년이 지나갔다.

코로나 창궐 속에서 카페를 개업했고, 집합 금지, 인원 제한을 거쳐 이제 막 팬데믹 터널을 빠져나온 참이었다. 그동안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연히 코로나가 끝나면 더 잘 되겠지 했는데...


오늘 내 손에 놓인 처참한 나의 성적표 22000원.

오늘 나의 노동의 가치, 22000원.


그래, 이게 나의 가치는 아니니까.

그러면 내일은? 내일이라고 달라질까?

오늘이 내일이 되고, 내일이 모레가 되고, 모레는 다시, 다음날이 되고, 또 그다음, 다음날이 되어도...

출산 직후 갑자기 오한이 찾아오듯이, 뼈 마디마디마다 냉기가 스며드는 것처럼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저녁을 먹으면서 남편에게 오늘 손님이 둘 뿐이었다는 얘기를 하다가 눈물이 났다. 카페를 하면서 눈물이 난 건 처음이었다. 서러워서가 아니다.

그 두 손님이 정말이지, 너무나 고마웠기 때문이다.

그분들마저 없었더라면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바닥을 향해 깊이 꺼져가는 것 같았다.




개업 이래로 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있었다.

그날들이 모여 결국, 오늘에 다다랐다.


상권이 안 좋아서,

코로나 때문에,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술 마시고, 날이 좋으면 좋다고 술 마시는 주정뱅이처럼

날씨가 궂으면 궂어서,

날씨가 좋으면 좋아 다들 놀러 나가서,

연휴의 끝자락이라서,

손님이 없는 이유를 그렇게 밖으로 돌리고,

체념이 만성이 된 상태로 말이다.



가혹한 현실 운운하기엔, 아프니까 사장인 걸 몰랐던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게 아닌, 내가 좋아서 차린 카페였다. 아무도 안 써주니 내가 나를 고용한 결과인 것만 같았다.


이게 무슨 데자뷔인가 싶었더니, 전문가의 도움으로 쪽박에서 대박가게로 거듭나고 싶은 컨설팅프로에 나오는 망한 식당, 망한 카페 사장들의 전형적인 사연이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는 1인 카페의 사장이었다.

나를 이끌 사람 역시 나 자신 밖에 없었다.

매일 아침 오늘 하루에 설레도록 만들 수 있는 사람도, 나 자신을 정비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도록 동기부여 해야 할 사람도 오직 나뿐이었다.


이제부터의 하루는 이전과 달라야만 한다는 생각이 가슴속에서 들불처럼 번지자, 더 이상 이러한 상태로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신기하게도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 돌리니,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대대적인 카페 리뉴얼이 시작되었다.




당장 무엇부터 손봐야 하는 걸까 감이 오지 않았다. 오직 기세로 밀어붙일 일은 아니었다.

일단, 닥치는 대로 경영, 경제, 마케팅, 자기 계발, 심리학 책들을 읽어나갔다. 읽어야 할 것들이 점점 늘어났다. ‘왜 이제야 이걸 알게 됐을까?'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어떻게 그렇게 무지한 상태로 카페를 열었던 걸까 하는 자책과 회한으로 가득한 날들이 이어졌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흐릿하던 나의 문제들이 비로소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오랜 시간 단순히 스스로의 경험과 감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운영해 왔던 것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나는 무슨 근자감으로, 감 떨어지기 짝이없는 감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했을까?

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가 좋아할 거라 믿었던 걸까. 그러고선 왜 스스로가 열심히 했다고 믿은 걸까.



모든 업무의 구조화

척척박사처럼 모든 걸 혼자 해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카페 운영의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컨트롤하고 매일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만 했다. 1인카페는 나 자신이 곧 시스템이었다.


내 머릿속에, 감각 속에 체화되어 있다고 믿었던 일들을 끄집어내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카페 오픈부터 마감까지의 모든 과정들을 구조화시키고, 매뉴얼화했다.


그렇게 부끄러운 민낯을 마주하고 보니, 주먹구구식으로 어설프게 대처했던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외면하고 싶었던 불편한 진실이 마구 쏟아졌다.


명색이 카페 경영을, 보디프로필을 앞둔 다이어터가 하루 식단을 탄단지, 칼로리에 맞춰 꼼꼼히 계획하고, 각 신체 부위별로 정해진 운동량을 실천하는 것보다도 체계적이지 못했다. 다이어트 일지처럼 경영 일지를 써 나가기 시작했다.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

아무리 잘 나가는 기업일지언정 하나의 성공 아이템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은 2년이 넘지 않는다고 한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도 언제나 완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비즈니스 상황이 좋다고 해도 2년 정도 지나면 시대의 흐름과 고객의 니즈가 맞지 않을 수 있기에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거치고 고객의 관점에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우리처럼 작은 카페가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적자상태로 운영하다가, 자연스럽게 폐업 수순을 밟는 카페들이 부지기수다. 나의 관점이 아닌, 고객의 관점에서의 변화는 이제, 카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한꺼번에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차근차근 해 나기로 한다.



자기 경영

매출 22000원의 충격으로 인한 각성과 그에 따른 결과로 카페의 리뉴얼을 시작했지만, 그것보다 우선적으로 선행해야 되는 것은 나 자신을 리뉴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1인카페인 나의 경우 나의 정체성이 곧 카페의 정체성이기에 더욱 중요한 문제였다. 카페 경영 이전에 '자기 경영'이 먼저였다.

self management. ‘자기 인생의 CEO'가 되어 자신을 하나의 회사처럼 관리하는 것이다. 1인카페를 운영하는 나에게는 사실, 익숙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관리가 오로지 휴식, 재충전에만 포커스가 맞춰 있었다.


나의 목표가 설정되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효과적인 목표 완수를 위해 점점 그 차이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나를 포지셔닝해 나가는 것이 ‘자기경영’이다. 이때, 새로운 계획 앞에서 자아 성찰은 절대 빠질 수 없는 과정으로서, 나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 때만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가 있다.




중학교 1학년, 첫 도덕시간이 떠오른다. 나는 누구인가? 자아정체성,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 어렴풋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마음의 소용돌이의 정체를 교과서 텍스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여전히 나는 중1 도덕교과서 첫번째 단원에 머물러 있다. 이제 난 더 이상 단발머리 여중생이 아니라, 단발머리 카페사장이 되었는데 말이다.

자영업자, 소상공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 자신을 돌보고, 끊임없이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숙제처럼 느껴진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싶고, 설사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인생의 하등, 크게 달라질 것이 있을까 싶은 것이다. 하지만 자아 성찰은 중1도덕 교과서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경영학에도, 행동경제학에도, 심리학에도, 브랜딩전략서에도, 자기 계발서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열네 살, 그때가 마음의 소용돌이였다면 지금은 마음 안에서 폭풍이 휘몰아치며, 한여름이 아니어도 계절을 막론하고 북상한다. 내가 곧 어딘가에 지랄을 하겠구나 드릉드릉하는 것이다.


그 휘몰아치는 폭풍을 소강상태로 잦아들게 하는 것 역시,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이게 비단, 1인카페 사장인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직업은 인생의 척추, 아마도 교정이 시급한 누구에게나 해당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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