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키즈 온 더 블럭

진상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by 태지인

커피는 맥심

이 아니라,

남이 타주는 커피가 제일이다.


그래서 나도 가끔 남의 카페를 간다. 카페 입구에서 그곳이 '노키즈존' 임을 알게 된다. 어차피 혼자 왔기 때문에 나랑 상관은 없지만 일리 있는 말이다. 아이가 있으면 커피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카페는 '노키즈'존은 아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도, 유모차에 탄 아이도, 초딩도 입장 가능하다. 하지만 꼬마 손님을 위한 음료는 팔지 않는다. 그래서 우유를 무료로 제공한다.


대개는 그런 경우, 엄마들은 너무 고마워하면서 생각에 없던 디저트를 사려고 노력한다. 괜찮다고,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해도 말이다.


십 대와 십 대를 코앞에 둔 두 남매의 엄마로서,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로 이어지는 그 격동의 시기를 겪어본 사람으로서, 전투육아로 온몸이 피폐해지고, 정신이 너덜너덜해지는 그 시기의 삶의 고단함을 너무 잘 아는 지라, 아이짐까지 바리바리 보부상처럼 외출준비를 해서 이곳 골목카페까지 커피 한잔하러 부단히 아이를 데리고 왔을 엄마 손님에게 그 정도 우유 한잔쯤은 전혀 아깝지가 않다. 이때의 커피 한잔은 단순히 카페인충전이 아닌, 수혈에 가까우니까...


아이들은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맘에 들면 그 자리에서 춤을 추고, 쿠키가 맛있으면 맛있다고 앵무새처럼 계속 얘기할 뿐이다. 게다가 엄마와 아이가 함께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다운 인테리어가 된다.



엄마와 아이가 있고 없고에 따라 카페 밀도가 천지차이



당연히 아이가 머물다 간 자리는 지저분하다. 흘리니까 키즈이다. 그런 것들도 물티슈로 다 닦고 자리 정리하려는 엄마들에게 빨리 아이부터 챙겨서 그냥 나가시라고 하면, 죄송하다고 하며 나간다.


그녀들에게 연극의 짧은 인터미션과 같은 카페에서의 티타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어지르면 치우고, 어지르면 치우고의 무한반복 제 2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카페에 있는 동안은 호사는 고사하더라도, 잠깐이라도 모 치우는 일없이 온전한 휴식시간으로, 편히 있다 갔으면 하는 맘이다.



항상 흔적을 남기는 키즈



그런데, 사실 카페에서는 키즈보다 올드키즈가 더 흔하다. 바로, 아이 같은 어른 말이다


음료를 받고 얼마 안돼 통째로 바닥에 쏟은 것은 죄다 어른이었다. 부산스럽고 조심성 없으며, 지저분하고 무례한 것도오히려 어른이었다.


그럴 땐 그냥 재빨리 치우면 되고, 음료를 쏟았으면 다시 새 음료를 만들어 갖다 드린다. 그 어떤 컴플레인에도 무조건 인정과 사과, 그리고 서비스가 답이다.


세상엔 정말 별의별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살 수도 없다. 애초에 저 사람이 왜 저러는지 납득할 필요도 없고, 시시비비를 가리는것 보단, 빠른 상황대처가 필요하다. 손님이 아닌 날 위해서 말이다. 자꾸 부정적 에너지에 나 자신을 소모하지 않아야 다른 손님에게 웃으며 맞이할 수 있다.



우리의 올드키즈들은

내 말이 다 맞고,

내 입맛이 제일 정확하며,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 자신도 모르게 진상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진상은 자기가 진상인줄 모른다 하지

않는가)


생각해 보건데, 카페를 시작한 지난 3년 동안 난 진상손님을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 진상을 만나지 않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됐는데,


첫째, 진상을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간다.

아무래도 이 구석진 골목까지 진상이 애써 찾아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여간 보통내기 진상이 아니어서 찾아왔다고 치자,

둘째, 진상취급하지 않는다. 진상을 진상이 아니라고 치면 된다.


세상에 남의 돈 벌기가 제일 힘들다는 건, 사장인 내가 나의 제품과 서비스에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제품과 서비스가 불만족스러운 건 손님이 유별나서가 아니라, 애초에 책임 자체가 대표인 나에게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나의 커리어의 궤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카페는 커피가 아니라 오직 서비스로 기억된다.




진상은 동화 속 파랑새와 같다.

저 멀리 어딘가 존재한다고 믿었지만 사실 제일 가까운 곳, 내 맘속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올드키즈이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누구나 맘 속에 어린아이를 품고 산다. 역시 마찬가지다. 내 카페에서야 내가 제품과 서비스의 생산자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곳에서 소비자로 존재한다. 나 역시 진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이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하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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