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후루에 대한 고찰

트렌드, 세상의 변화에 민감해지기

by 태지인

보통 7월 말에서 8월 초 즈음,

불볕더위와 함께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된다.


뉴스에서 연일 최고 기온을 주요 뉴스로 다루는 그런 시기. 썸머 시즌을 겨냥해 새로운 음료를 선보이려고, 베트남 작은 어촌 마을 무이네에서 먹었던 동남아의 이국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에이드를 레퍼런스 삼아, 청귤과 라임을 넣은 패션후르츠 에이드를 만들었으나, 대량으로 담근 라임청에서 곰팡이가 생기는 바람에 모조리 음식쓰레기행.


야심 차게 준비한 신메뉴는 시작도 전에 엎어지고,

그렇게 기운도 빠지고, 얼도 빠지고, 손님도 빠져서

힘들 때 힘내면 더 힘들어서 축 쳐져 있던 어느 여름날.


처음에 나는 내가 헛 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헛 것이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오늘 판매한 커피보다 내가 마신 커피의 숫자가 더 많다는 현실 앞에서, 휴가철이기도 하고, 연이은 불볕더위로 거리에 인적조차 드문 그런 날이라 어쩔 수 없었노라며, 나 자신을 애써 위안하며 마감을 했던 그날 저녁


퇴근길 제물포 역 앞에서 보게 된 광경이란!

신장개업한 탕후루 가게 앞으로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아, 휴가철이라 사람이 없는 게 아니었구나.

우리 카페에만 없었구나...


아, 폭염이라 사람이 없는 게 아니었구나,

우리 카페에만 없었구나...


동남아시아 나라에 도착했을 때, 비행기에서 한발 내딛는 순간, 특유의 숨이 턱 막혀오는 듯한 그런 더위의 날에도, 줄 서는 가게는 존재하더라.




귀신에 홀린 듯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이미 줄에 서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기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쾌지수가 올라갔다. 더위에 킹받고, 가게 이름에 킹받는다.

'왕가 탕후르'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주문을 했지만 바로 가져갈 수도 없었다. 다시 20분을 기다리라고 했다.

좁은 가게 안에 일하는 사람은 무려 8명. 각각 분업화하여 최대 속도로 탕후르를 생산하고 있었지만 대기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5분을 더 기다려


마. 침. 내


탕후르를 사갈 수 있었다.


그날, 우리 아이들은 올해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그들에겐 엄마가 만든 쿠키보다 탕후루, '꽃보다 탕후르'였다. 이미 탕후르는 십 대인 그들에게 마라탕을 먹고 버블티를 마시는 사이에 들어가는 필수코스가 된 지 오래였다


그날 이후, 아이들에게 탕후르를 사다 주기 위해, 열심히 카페에서 쿠키와 스콘을 만들었다. 내 디저트를 팔아서 남의 디저트를 사들이는 수모를 견뎌야 하는 웃픈 나날들의 연속.


그런데

나까지,

나마저,

탕후르를 먹는다면 완전히 지는 기분이었다.


자존심이 상해서 먹고 싶지 않아.

하지만 먹고 싶어!!!


양가감정이 미친년 널뛰듯 날뛰기 시작했다.

내적 갈등이 점점 깊어졌지만,

마. 침. 내

결심했다


“한 입만!”


아들에게도, 딸에게도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자식은, 내가 참 아무것도 아닌 존재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어 항상 한 인간으로서 겸손함을 유지하게 해주는 그런 존재들이다.


“제발 한 입만!!”


더욱 간절함을 담아 사정사정한 끝에 얻어낸 소중한 한 입을 맛보자,


아자작.


'아, 재미있다!'

백종원이 팔짱을 끼며 ‘하, 요것 봐라 요거 참 재미있네' 하는 재미가 바로 이 재미인가?


게다가, 극강의 겉바속촉!

얇은 유리 같은 설탕코팅이 깨지면서 쥬시한 과육이 입안에서 터지자 어깨춤이 절로 나왔다. 현재로서는 탕후르의 기세를 막을 수 있는 디저트는 없어 보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약과 때문에 난리였다.

언제부턴가 '약케팅'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인기가 높아진 약과 덕분에 손님들이 약과 디저트를 찾으니 만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버터바도 그랬다. 뉴올리언스에서 제빵사의 계량 실수로 만들어졌다는 버터바가 도대체 어떻게 한국까지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sns에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금세 대세 인기 디저트가 되어 나도 그 흐름에 편승하게 되었다.


K-버터바, 약과버터바 막차 탑승


굳이 온갖 수고스러움을 마다하고 동네 골목의 디저트 카페에 까지 찾아와서 디저트를 먹는 고객들의 내공은 만만치가 않다. 워낙 다양한 카페를 가보고, 맛보고, 즐기며, 재미있고 자랑할 수 있는 소확행의 공간으로서 카페를 소비하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박물관, 미술관도 이렇게 카페처럼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를 마치 놀이처럼 소비하는 것이다. 예술, 문화는 물론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모든 분야에서 이들의 니즈와 기호가 하나의 흐름이 되고, 소비로 이어지면, 그것이 곧 SNS를 점령한다


왜 사람들은 탕후루 가게에 줄을 서는가?

그 불볕더위에 줄을 서는 고생을 감수하면서라도 얻으려고 하는 것이 뭘까?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의 마음을 많이 움직이고 있는 것들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고민을 통해 인사이트를 얻고 나의 비즈니스에도 적용시켜야 한다.


사실 지금 카페는 많은 시행착오 끝에 처음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보단, 손님이 원하는 것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성이 줄고, 여느 카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보통의 모습을 가장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딴엔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것만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그렇게 만든 브랜뉴 디저트들은 오히려 외면받는 경우가 많았다. 친숙한 놀라움 정도면 충분했다. 이젠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트렌드한 것들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외면받은 아픈 손가락들, 손가락으로 모자라서 발가락까지 동원해야함



인기 드라마, 영화, 웹툰, 책을 감상하고, 인기 있는 장소, 핫플레이스에 가는 것은 시간낭비가 아니다.

그 속에 담긴 트렌드와 코드를 읽는 것은 왜 유명한 맛집에 줄을 서는가를 이해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자, 사람에 대한 관심,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며 이 세상에 동떨어지지 않기 위한 방법이다.


그래서

오늘은 디즈니플러스를 봐야겠다.

왜냐하면 '무빙'의 돌풍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무빙 할 수 있는 뭔가를 발견할 수 있기를...



넥스트 탕후루는 남산돈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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