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혼자 있을 때 제정신이 된다

나의 정체성이 카페의 정체성

by 태지인

지금의 혼술, 혼밥이 유행하기 이전,

일찍이 ‘혼자 극장가기’

혼.극이 있었다.


멀티 플렉스 따위 존재하지 않았던 라떼 시절.

그때만 해도 인천 극장엔 좌석 번호가 없어서 같은 돈을 주고도, 극장 대목 명절이 되면, 상영관 안은 발디딜틈없이 포화상태로 좌석은 고사하고, 계단에라도앉아 영화를 봐야 했지만, 반면에 한 회차 상영이 끝난 후에도 궁뎅이만 떼지 않으면, 그대로 무제한 N차 감상이 가능했던 때, 17세부터 혼극했던 20세기 소년 소녀였던 나.


이토록 완벽한 수미상관이란! 최초 혼극영화, 첨밀밀의 처음과 끝



그리고

22년이 흘렀다.


전쟁 같은 두 아이 등원을 마치고, 집안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집에 다시 들어가기가 싫어, 몸도 맘도 방황하다 조조 영화를 보러 홀로 청라 CGV에 갔다.


유난히 사람이 없던 상영관. 이내, 불이 꺼지며 영화가 시작되고, 아무 생각 없이 음료를 마시다 순간! 지금 이곳에 나 혼자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순식간에 엄청난 공포감에 휩싸였다. 설령 살인이 일어난다 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지만 무섭다고 뛰쳐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설마... 뒤늦게 영화 시작을 놓친 누군가가 들어오겠지'


하지만 영화가 시작한 지 십 분이 지났으나 더 이상의 관객은 들어오지 않았다.

비상구의 문이 닫혔다.


커다란 상영관. 빼곡하게 놓인 빈 좌석들이 망망대해처럼 끝도 없이 펼쳐졌다.

이제 온전한 혼자가 되었다.

완전한 혼극이었다.


그렇게 '애드 아스트라'를 보게 되었다.




커다란 화면 위로 천체투영관처럼 우주가 펼쳐졌다.

화면도, 빈 객석도 모두 어둠으로 뒤덮이자, 화면과 객석의 경계가 사라지며, 시공간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그것은 내가 체험한 최초의,

물아일체.


우주비행을 위해 주인공의 심박수가 늘 80을 유지해야 했던 것처럼, 느릿하고 잔잔하게 전개되는 '애드 아스트라'는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와는 결을 달리하는 SF영화이다. 우주로 떠난 심리드라마?


근 미래, 태양계 바깥에 지적 생명체를 찾아 떠난 후 돌아오지 못한 위대한 우주비행사였던 아버지를 찾아, 해왕성으로 향하는 우주 비행사 로이(브래드 피트)

무한한 세계를 놔두고 지구에 처박혀 인생을 왜 낭비하냐며 어린 로이를 두고 떠난 아버지이지만, 죽었다고 생각한 그가 살아있음을 알게 되고, 무한한 어둠의 우주 속에서 그 긴 긴 세월을 혼자 살아왔을 아버지를 향해, 자신 역시 똑같은 어둠 속으로 끌러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구와 43억 킬로 떨어진, 가장 머나먼 행성, 해왕성으로 떠난다.



'우리들 대부분은 평생을 숨어 살지 ‘

-로이의 대사-


늘 의식적으로 웃고, 연기하고 남의 시선으로 나를 보며, 눈은 항상 출구를 향해 있던 그는 혼자 있을 때 비로소 솔직해지며, 평온해진다.

홀로 무중력 상태의 긴 여행 속에서, 지독한 고독과 허무함 속애서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자각한다. 우주여행은 어느새 로이 내면의 여행이 된다.


영화크레딧이 올라가면 허무한 브래드 피트의 표정만이 남는다


그리고 그 망망대해의 우주에서 홀로 된 로이를 지켜보는 이 쪽 반대편에,

현실 세계의 '내'가 홀로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홀로 해왕성을 향해 가는 로이처럼외로움의 시간이 아니었다.

서른이 되자마자, 결혼과 출산, 육아를 쉼 없이 내달리며 살아온 내가 처음으로 맞이한 나만을 위한 시간이자, 온전한 휴식이었다.


나 홀로 뿐인 텅 빈 영화관에서 로이의 우주선이 마침내, 해왕성에 도달했을 때, 스크린은 온통 아름답고 장엄한 파란빛과 검은빛으로 가득했다. 한동안 대사 없는 화면이 계속됐지만, 아무런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영화가 고요해질수록 나는 평온함을 느꼈다.



점점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지만,

나의 내면은 나 자신에게로 향해 가고 있었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가 한 데로 모아졌다.

나의 세계, 나의 우주가 스크린 밖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나는 ‘나’를 생각했다.


그렇게 오롯이 혼자 있는 동안,

나는 비로소 제정신이 되는 기분이었다.




10대 사춘기 때는 내가 지금 왜 화가 나는지 나도 몰라 화가 나지만, 자아정체성을 운운하며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우기며 지나갔다.


스무 살이 되니, 법적으로 술도 마실 수 있고, 투표권도 생기니, 이게 어른의 맛이구나 싶었지만 그런데 난 지금 뭐 하고 있나 싶어 화가 났다.


29살이 되자, 이제 내년이면 서른이구나 '서른 즈음에'가 달리 들린다 드니 이게 그 기분이구나 싶었지만 그런데 난 여태 뭐 했지 싶어 화가 났다.


30대가 되자, 부모가 돼야 진짜 어른이 된다드니 그런데 내 인생은 무엇인가 싶었지만, 금세 덤덤해졌다. 체념이 빨라진 탓이다.


정신 차려보니 마흔이 되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예전에 안다고 믿었던 것조차 이제는 모르겠고, 점점 더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그나마 다행인건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잘 감출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흔셋, 카페를 개업한 지 3년 차에 왜 매출이 점점 떨어지는지 고민하다, 우리 카페에 정체성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페의 정체성이란, 우리 카페 하면 떠오르는 인상 같은 것이자, 손님이 우리 카페에 오는 이유, 카페와의 관계, 즉 브랜딩이라는 것을, 그것이야말로 작은 가게일수록 꼭 필요한 것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창업 이후에야 비로소 카페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면서, 카페의 정체성은 결국 나의 정체성이며, 나의 삶의 방식, 삶의 자세와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사춘기는 '삶의 반칙선 위에 점일 뿐이야~' 같은 것이라 생각했지만, 인생은 그 점들의 연속임을,

하물며 카페사장이 되었어도 끊임없이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 제정신이 된다’


세상 모든 I (MBTI 내향형)를 위한 응원가와도 같은 이 말은 드라마 ’ 나의 해방일지‘에 나온 말이다.

시종일관 명대사의 향연이 펼쳐지는 드라마에서도 내가 뽑은 최고의 명대사.



혼자 있는 시간은

외로움의 시간이 아니다.

나를 가꿀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내가 나를 온전하게 바라봄으로써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아름답고 장엄한 별,

해왕성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현실에서만이,

사랑과 미움, 빛과 어둠이 존재했다.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지만

현재의 소중한 것들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


홀로, 지독한 심연의 고독 속에서 로이가 발견한 것들이었다.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을 잘 살아야 한다.


나 역시

디저트, 카페가 아닌

혼자, 하는 카페에

방점을 찍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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