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전생에 무슨 죄를 그렇게 지었니?

발달장애인의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건 업보일까요?

by 무지자

얼마전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소위 말하는 죽마고우들로 40년도 넘은 친구들입니다.

그동안 코로나로 잘 못만나다가 정말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저희집 근처로 와주었습니다.

제가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기가 쉽지 않으니까 이쪽으로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중 담배를 피러 가게밖으로 나왔을때 같이 따라 나온 친구중 한명이 저에게 한 말입니다.

"넌 전생에 무슨 죄를 그렇게 지었니?"


친구는 저의 가족의 안부를 묻고 아이들의 안부를 묻다가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물론 친구는 저에게 고생한다고 위로하고 싶어서 한 말일겁니다.

저는 한명도 아닌 두명의 발달장애아이를 키우고 있으니까 친구가 보기엔 여간 안타까운 일인가 봅니다.

어깨도 두들겨 주었습니다...그래도 힘내라는거죠.

친구는 니가 무슨 업보로 이고생을 하니라고 말하고 싶은거겠죠. 모 답은 없죠.

전생에 제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으니까요...죄를 짓긴 지었겠죠.


처음에는 저도 친구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무슨 죄를 그리 지었길래 아이들이 이럴까...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나...

하늘을 원망하고 나를 원망하고 내팔자를 원망한 적도 있었습니다.

장애아부모들은 누구나 겪는 과정이죠...부인하고 좌절하고 원망하고...

그러나 아무리 하늘을 보고 원망해봐도 답이 없죠.

종교적으로 답을 찾으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달리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더군요.

그리고 굳이 원인을 알아서 어쩔까 싶었습니다.

그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또 그보다는 하루하루 살아가는게 먼저였습니다.


예전에 지리산근처에 살고 있던 지인의 집에 가족들과 같이 놀러간적이 있습니다.

발달장애아인 두딸도 함께 갔습니다.

그곳에서 지인의 소개로 용하다는 흔히 말하는 지리산 도사를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도사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러냐고...왜 아이들이 이러냐고...

그 도사가 대답하더군요.

"당신의 죄입니다."

전 다시 물었습니다.

"나의 죄라면 나에게 벌을 내려야 되지 않습니까? 아이들은 죄가 없잖아요. 왜 아이들이 고통받아야 하나요?"

도사가 대답했습니다.

"아이들은 고통받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고통스러워하지 않습니다. 고통스러운건 당신입니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느낌이라는 걸 처음 느껴보았습니다. 띵하면서 정신이 몽롱해졌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네...아이들은 고통받지 않은 걸수 있네. 그러고보니 아직 우리 얘들은 고통스러워 하지 않아.

고통스러운건 아내와 나. 부모님 등...'

그런데 나의 부모님이나 장인장모님도 결국 나와 아내를 보고 고통스러워 하시는겁니다.

우리들이 괜찮으면 나의 부모님이나 장인장모님도 괜찮을거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만 괜찮으면 아무도 고통스러워 할 사람이 없다는 것???


다시 찬찬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먼저 아이들은 어떠한지...아이들은 즐거워 보였습니다.

큰딸은 지적장애, 작은딸은 자폐이긴 하지만 다행히 아픈 곳은 없습니다.

둘 다 늘 힘이 남아 어쩔줄 모를 정도로 건강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딸들은 즐거워 보였습니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늘 시도때도 없이 웃고 까불고...

물론 원인도 알수없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고 떼를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빈도수를 보면 즐거워하는 때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아이들은 나름 행복해보입니다. 이런 부모와 환경속에서도 아이들은 즐거워보입니다.


제 아내는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겪고 있습니다.

우울증이라는게 그런거라더군요. 늘 잠재해있는데 표면밖으로 얼마나 나오느냐의 문제...

아내는 병원도 가보고 상담도 받고 다른 곳으로 생각을 돌리려 해보고 나름 노력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보기엔 괜찮아보입니다.

발달장애아부모의 70%정도는 우울증을 겪는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본듯합니다.

특히 대부분의 양육을 맡고 있는 엄마들의 우울증이 많습니다.

아빠들은 스텔스우울증을 겪습니다. 겉으로 표현을 안하거나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는 우울증입니다.

아빠들은 남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습니다. 혼자있을때 웁니다...


암튼 결론은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행복해보이는데 우리 부부만 우울한 것은 아닌가?

아이들이 괜찮으면 우리도 괜찮은거 아닌가?

갑자기 아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해지고 고마워졌습니다.

즐거워하는 아이들 앞에서 우린 우울했으니까 미안하고, 어쨌든 나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즐거워하니

또한 한없이 고마웠습니다.


저희들은 오늘, 지금, 이순간들을 즐겁게 살기로 했습니다.

물론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한낱 인간으로서 오늘을 즐기기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모 저축도 안하고 흥청망청 돈도 막 다쓰고 그러는것은 아닙니다.^^

그냥 아이들이랑 즐겁게 놀고 저녁먹고는 커피 한잔 사들고 산책이나 드라이브를 하고 그러는 겁니다.

전 아내에게 이런말을 합니다.

"말 못하면 어떻고, 아직 기저귀 차고 다니면 모 어때? 그래도 즐겁잖아.ㅎㅎㅎ"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라는 지금은 고전이 되버린 영화가 있습니다.

발달장애아이들도 말을 할줄 안다거나, 대소변을 가린다거나, 혼자서 밥을 먹는다거나 모 그런 기능적인 것이

행복을 정하는 기준이 되지는 않는것 같습니다.


제 둘째딸은 자폐1급입니다.

가끔 저와 아내는 둘째딸은 자폐아인데 자폐아답지 않다고 말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스킨십을 좋아하고 안기고 눈을 꼭 마주하고 깔깔대고 웃고 그럽니다.

몸도 자신을 향해 돌리고, 얼굴도 반드시 자기를 보고, 눈도 꼭 마주하고 그렇게 뽀뽀도 해주고 웃어주고 그래야 됩니다. 둘째딸은 그리고는 좋아서 어쩔줄 모르겠다는 듯이 계속 웃어댑니다. 아주 큰소리로, 온몸으로 웃어댑니다. 그러고 있으면 저도 안웃을수가 없습니다.^^

물론 누구나한테 그러는것은 아닙니다.

언니가 안아달라고 하면 절대 안 안아주고, 얼굴도 마주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언니를 피해 도망갑니다.

그냥 저희가 느끼기에는 언니는 좀 귀찮고, 경쟁자로 보는 듯합니다. 언니의 물건을 탐내고 시시탐탐 노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언니가 막 싫지는 않은, 좀 미묘한 자매관계입니다.

그런 둘째딸인 저희 막내는 가장 심한 장애에 속하나 가장 행복해보입니다. 보고있으면 세상 제일 행복해보일때가 많습니다.


자식 키우는데 안 힘든 사람은 없겠죠.

풍문으로 들은적은 있습니다...누군가 집의 자식은 혼자서 다 잘하고, 손하나 안가고, 속도 안썩이고 그렇게 큰다고...현실감 제로에 전설적인 얘기라 누군가에게서 들었는지도 잊어버렸습니다.

일단 내자신의 성장과정을 돌이켜봐도 알수 있습니다. 아~~우리 부모님도 고생이 많으셨겠구나 하고...

그래서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희 부모님은 형제 2명을 키우신겁니다.

과연 부모님과 나와 누가 더 자식 키우기 힘들었을까?

제 큰딸이 현재 22살이니까 제가 22살까지의 시점에서 비교해보았습니다.

발달장애가 있는 두딸과 저희 형제를 바꿔놓고 대입시켜 보고 이래저래 비교해봤습니다.

결론은 저희 부모님이 더 고생하셨겠구나라고 나더군요.^^

중요한 포인트 중의 하나는 22살까지의 즉, 미래가 아닌 현재까지의 시점에서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발달장애아의 부모들은 현재도 현재지만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더 크죠.

모 지금도 저희 부모님이 보시기엔 저나 제동생이나 생각하면 아직도 한없이 걱정거리가 많으시겠죠.

암튼 되도록 객관적으로 비교해본 결과 그래도 저보단 저희 부모님이 자식키우는데 더 고생하신것 같습니다.


아까 얘기한 제어깨를 두들겨준 친구 얘기인데요...

이친구도 사는게 녹녹하지는 않습니다. 친구 아내는 암에 걸려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투병생활을 했습니다.

가끔 들여다봐야 하는 노모도 계시고, 무엇보다 아들때문에 최근에는 고생이 많았습니다.

친구 아들이 히끼고모리, 지금은 은둔형외톨이라고 하죠. 방안에 쳐박혀서 전혀 밖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년을 자기방안에서 틀어박혀 있다가 최근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3년이라...생각만해도 까마득하고 힘들죠...

예전에는 딸때문에 친구가 마음 고생을 했죠.

그런데 얘기들어보면 다들 사는게 모 이렇더군요...

어느 집안이건, 집구석이라는 표현이 좀더 찰질듯 합니다.ㅎ

어느 집구석치고 문제없는 집구석이 없다고 하죠. 다 문제가 있고 그걸 넘어서고 평온기를 갖다가 다시 또 문제가 오고...

그러니까 파도가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높이 오느냐의 문제이지 파도는 오거든요.


친구는 제가 안되보였겠죠...그래서 그런말을 하고, 제어깨를 토닥인거겠죠.

그런데 제가 보기엔 전 친구가 안되보였습니다. 많이 지쳐보였고 머리카락도 많이 빠졌어요.

그런 친구를 보면서 전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너보단 내가 낫다...'

'너보단 내가 자식땜에 맘고생 덜한다...'

'전생에 죄를 지었다면 나보다 너가 더 큰 죄를 지은거 같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전 전생에 죄를 남들보다는 아주 크게 지은거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남들보다 지금 제삶이 크게 불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이 낮춰 생각해도 평균이상으로는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부모들이 그럴지도 모르지만 전 저희 아이들로 인해 힘들고 맘아팠던거 보다, 저희 아이들로 인해

웃음짓고 행복했던 기억이 더 많습니다. 지금도 매일 깨물어주고 싶을정도로 사랑스럽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친구들과 헤어지던 때 전 아까 그친구에게 말했습니다.

"ㅇㅇ야, 엉아걱정말고 너나 잘살아 임마"

그리고 친구의 어깨를 토닥여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