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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fflo Feb 25. 2024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넋두리와 짧은 책소개




나는 소설을 자주 읽지는 않는 편이다. 아직 인생 소설이라고 할 책을 찾지 못한 이유도 있고..최근 난해한 고전문학을 몇 번 읽다 데인 경험을 한 뒤로는 의식적으로 내 정신건강을 위하여 더 피하는 것 같다. (이상하게 난 해외소설이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소설을 읽으며 깊이 몰입해 일체감을 느끼거나 위로 또는 깨달음을 얻고 싶은 마음에 소설에 미련을 놓지 못한다.

그 날도 어김없이 문고에서 책을 사면서도 다른 책들을 한 쪽 팔에 들고서는 소설 코너를 힐끔힐끔 훔쳐보곤 했는데, 그러던 중 우연히 눈에 들어오는 책을 발견했다

요즘 소설 표지라기보단 에세이 표지같은데 소설이란다. 심지어 베스트 셀러네? 아..나 베스트셀러랑 잘 안 맞는데..

아무튼 나는, 평소 책을 고르던대로 목차를 확인하고 소개글을 읽었고, 그 다음 아무 페이지나 랜덤으로 펼쳐서 4장을 읽었다.

문체가 쑥쑥 잘 읽히고 편안하다.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일지도 아닐지도)같은데 또 참신하다.

뭔가 실패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에 n년 만에 소설을 구입했다.


아, 사실 나는 감정적인 호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호소가 될 만한 인물이자 상황이라면, 굳이 감정적인 표현 없이도 독자들이 자연스레 인물또는 상황에 몰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딱히 납득이 가는 인물/상황이 아닌데 감정적으로 호소를 한다? 그건 주입식 몰입이다.

"너 몰입해! 이거 지금 감동적인 상황이야. 방금 인물이 아팠고 성장했어. 이 책의 하이라이트야. 알고있지?"라고 주입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담백하고 담담한 문체를 편안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제는, 담백하고 담담하며 참신까지 한 책을 찾기란 여간 힘든일이 아니다..

반 설렘 반 의심의 마음가짐으로 집어든 소설을 읽어 넘겨갔다.


책<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총 7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있다. 옴니버스의 형식처럼 하나의 주제와 긴밀한 관련이 있는 이야기들이 아닌, 각기 아주 다른 모양새의 삶을 그려낸 소설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연령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하다.

책을 읽으며 감탄했던 건 짧은 단편소설 속 깊고 탄탄한 구성력과 인물들 표현력에 있어 넓은 스펙트럼이었다.

특히 인물들의 성격에는 작가가 마치 여러번의 인생을 살아본 건 아닐까 의심갈 정도로 생생하고 굉장히 구체적인 서사가 담겨있다.

그래. 소설에는 원래 다양하고 입체적인 성격의 캐릭터가 나온다. 하지만 이렇게 실제 인물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건 정말 처음이었다. (너무 편애적으로 극찬하나...? 근데 정말 이 책을 덮고 난 직후의 인상은 딱 그러했다.) 엄청난 대작의 자극적인 스토리와 캐릭터는 아니지만, 정말 딱 일상적인 담백한 현실 속에서 볼 법한 캐릭터들. 그런데 그 캐릭터들 마다마다 내가 직접 직면하고 있다고 착각할 법한 수준의 몰입력을 느끼게 한 건 이 소설이 10년들어 처음이었다.  작가의 스토리 구현력은 정말 대단했다. 그렇다고 실제 경험담이라고 하기에는 가족단위의 아주 작은 공동체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깊은 관계들이 각기 너무 다르고 광범위한 삶의 결이라 그렇지는 않을 것 같고..

책 속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 또한 참신하다.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스토리. 대학강사와 늦깎이 편입생의 이야기, 대학 동아리 선후배의 이야기, 직장 선후배, 오빠와 여동생, 이모와 조카, 두 자매, 엄마와 두 딸. 우리가 일상속에서 지극히 평범히 받아들이는 이 관계를, 작가는 고도의 심리묘사를 통해 특별한 이야기로 엮어냈다. 조금만 말해도 스포가 될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밉다가도 따뜻하고 포근했던 그 품이 생각나는 아이러니한 관계라니.



난 그 중 이해가 잘 되지 않으면서도 마음이 가는 단편작 <이모에게> 가 기억에 남는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조카와 이모. 조카에게는 부모가 있지만 실질적 양육자는 이모이다. 이모는 개인사정상 자신의 여동생의 집에서 삶을 함께하고 있다. 배움이 길지 못해 초등학교만을 졸업해 그 후로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을 마치고 여동생의 집에 몸을 위탁하고 있는 신세이다.

그래서 그런걸까 조카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듯 조카의 공부, 성격형성 등 모든 면에서 더 엄격하게 양육한다. 마치 자신에게 못됐었던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전수해주듯이, 자신이 그랬듯 어떻게 하면 쓸데없는 기력소진을 안하며 세상을 쉽게 살아갈 수 있는지 더 거칠게 혹독히 가르친다.

어린 날, 달래주어도 되는 상황에 눈물 한번 받아주질 않고 아픔에 공감하려는 노력조차 보이질 않는다. 조카가 말랑말랑한 감성을 조금이라도 내보이는 순간에는 칼로 잘라버리듯 싹을 끊어낸다. 그런 것 따위는 세상을 살아가는데에 조금의 도움도 되질 않는다며. 이모는 나름 조카를 생각한 마음에서 더 독하게 대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교육방식은 사실 아이에게는 훈육 수준이 아닌 정서적 학대이다. 조카는 그렇게 감정을 감추는 법을 배우고 자신이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이모의 모습을 닮은 어른이 되어간다. 러면서도 이모를 증오하는 마음과 동시에 밤이 되면 이불속에서 말없이 등을 토닥거려준 그 품을 버리지 못해 말 그대로 애증의 관계성을 가지게 된다.


나에게 엄하게 차갑게 굴었고 떠나갈 때마저 속이 다 얼어버릴 것처럼 냉하던 그 사람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밉다가도 따뜻하고 포근했던 그 품이 생각나는 아이러니한 관계라니. 미우면서 눈물나는 사람이란 바로 이런까?니, 조카에게 이모는 '엄마'였기에 가능한 감정일까? 이모의 냉담함 속에서도 자신을 향한 사랑을 느꼈던걸까?

상반되는 감정이 동시에 공존하는 관계성이 낯설면서도, 우리 삶에 적어도 한번은 스쳐갔을 법한 감정이기 때문에 이해가 잘 되지 않으면서도 마음이 울렸던 이야기였던 것 같다. 삶을 더 수월히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되었을 수는 있어도 마음껏 우는 법을 잊어버린 조카와 자신의 인생의 아쉬움과 아픔을 조카는 겪지 않기를 바랬으면서도 결국 마음 속 깊이 상처를 내버린 이모.

이모가 나이가 들어 아기같은 얼굴로 세상을 떠났을 때도 조카는 목 놓아 울지를 못한다.

이 둘의 삶이 짠하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마무리 한 후 나는 그들의 아픔을 읽었고 서로를 향한 사랑을 보았다. 





책의 끝부분에 실려있는 양경언 문학평론가의 문장을 빌려 표현하자면 이 소설은 '수동적이라고 여겨졌던 행위들이 가진 역동성을, 강한 성향이 품고 있는 연한 속성을, 기쁨이 숨기고 있는 슬픔을, 평화로운 풍경 속에 도사리고 있는 폭력'을 담담하고도 슬프지 않게 깨닫게 는 소설이다.

이 암울하면서도 삶을 살아갈 힘이 담겨있고, 저릿하고도 길게 남는 스토리가 어떻게 나왔을지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을지 참 궁금하다. 몇 번을 읽어야 그들의 인생을 겨우 감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복잡한 심리. 어쩌면 우리 모두 살아가며 적어도 한번쯤은 만나봤을 또 다른 우리의 모습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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