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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fflo May 24. 2024

아직도 가야 할 길

삶은 고해다. 또한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목차 - [훈육]

'삶은 고해다. 또한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삶이 힘든 것은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워서이다. 하지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이 모든 과정 속에 삶의 의미가 있다.'  

우리는 삶이 고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삶을 고통스러워 하는것이다. 삶은 당연히 고통스러운 것이 맞다. 삶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모든 과정이 삶 그 자체이며 그 과정은 고통이다.

하지만, 우리가 고통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순간 고통은 고통이 아니게 된다.


또한 저자는 진실에 헌신하는 삶을 강조한다. 진실에 헌신하는 삶이란 우리가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영혼이 성장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진실은 우리를 스스로 성찰하게 한다. 성찰하는 삶은 곧 우리의 영혼이 성장할 수 있게 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인간에게는 생각하는 능력과 성찰하는 능력이 있다. 바로 이 사색의 과정과 자기 성찰을 저자는 강조한다. 사색과 성찰이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든다고 한다. 우리는 사색의 중요성을 잊고 살아간다. 영혼이 말라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사색의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만 해도 사색(생각)이나 성찰을 조금만 소홀히 하면 바로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바로 체감한다. 그만큼 인간답게 만드는 삶. 우리를 우리로 살아갈 수 있게끔 하는 힘은 사색과 성찰이다.


그리고 마지막. '포기'. 저자는 자기포기를 함으로써 인간은 가장 황홀하고, 영구적이고, 확고하며 무한한 인생의 기쁨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포기함으로써 더 많이 얻는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나를 포기한다. 가 아니다. 좀 더 불교적, 동양적인 표현으로 풀어내자면, 난 자기포기를 내려놓기, 놓아주기, 비워내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지금껏 쌓아온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모든 가치관과 고집을 내려놓음으로써 더 많이 보게 되고 그만큼 더 많이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자아의 탈중심화라고도 한다. 익숙한 것을 억제하고 낯선것을 환영하며 자아의 탈중심화(자기포기)를 함으로써 인간은 가장 황홀하고 무한한 인생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만, 포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유해야한다. 자아를 포기(확장,초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자아를 건강히 발달(확립)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포기할 수 있다. 보유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내려놓을 수 없다. 또한 자아를 먼저 확립하지 않는다면(순서를 어긴다면) 성자라기보다는 정신분열증 환자가 되기 쉽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자아경계는 부드러워지기 전에 먼저 굳어져야만 한다. 그리고 자아를 초월하기 전에 자아가 확립되어야 한다. 자아를 잃어버리기 전에 먼저 자아를 발견해야 한다."


목차 - [성장과 종 그리고 은총]

나는 불교에 가까운 무종교인이다. (불교마저도 종교의 방향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싯다르타 스스로도 자신을 신으로 추앙하지 말라고 하기도 했고 한국 불교의 많은 신들조차도 잘 알지 못한다. 나에게 불교는, 절은, 그저 쉬었다 갈 수 있는 쉼의 집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내가 기독교 색채가 짙은 두꺼운 서적을 읽었다. 사실 좋아하는 작가님 덕분에 알게 된 책이기도 하고 전부터 유명한 베스트셀러인 것은 알고 있기도 했고..뭔가 영적성장, 자아실현 등 내가 관심있는 분야의 서적임은 맞는 것 같아 선택했다. (나중에 책을 읽다가 기독교에 관한 부분이 점점 나와 뭔가 이상하다...싶어 뒷표지를 봤는데 '수천만 세계인이 성경과 나란히 하는 책' 이라는 소갯말을 늦게서야 확인하고 아..! 수긍한 것은 안비밀이다..^^)
초등학교 시절 몇번이나 전도하는 분들께 걸려 무교라고 하면 1시간 넘게 내가 교회에 다녀야 되는 이유와 너는 지옥에 갈것이다 라며 겁을 주던 경험이 한 번도 아닌 몇 번이나 되기 때문에 사실 기독교하면 거부감이 아예 없지는 않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완독했다.


그리고 이 책은 기독교에 대한 나의 편견을 조금은 깨뜨리는 아주 인상 깊은 책으로 다가왔다.
저자가 말하는 하님은 이상하게 거부감이 덜했다. 뒷장으로 가면 갈수록 하님을 만나보고 싶고 얘기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느낌은 참 낯설었다. 나에게 하님은 개신교의 하님이 딱 뇌리에 깊 박혀있는 하님인데, 다른 차원의 하님같았다.

저자는 하님을 이렇게 표현한다. "사랑하는 능력, 성장하고 진화하려는 열망을, 하느님이 어떻든 우리에게 '불어넣어 준' 것이라고 상정한다면, 곧이어 우리는 그 목적을 물어야 한다. 왜 하느님은 우리가 성장하기를 바라는가? 우리는 무엇을 향해 성장하는 걸까? 진화의 목적, 종착지는 어디일까?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신학적인 세부사항을 다루는 것은 이 책의 목적이 아니다. 내가 올바른 추측에 근거한 신학의 모든 자격 요건을 지나치더라도 용서하시길 바란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접근하더라도, 사랑을 베푸는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가정하고 그것을 진지하게 탐구하다 보면 결국은 한 가지 무서운 결론에 이른다. 하느님이 바라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과 같아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경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하느님이 곧 진화의 목적이다. 하느님이 바로 진화시키는 힘의 원천이자 도착지인 것이다. 하느님은 시작이자 끝이다." 388p  

(신과 같아진다니, 무서운 말같고 이단?같지만 그런 의미로 저자가 저술한건 아니라는 것을 알 것 같다. 저자의 하님은, 마냥 인간이 성장하기만을 바라고 바라는 그런 부모의 마음과 아가페 그 자체인 하님인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다. 마치 열반과 해탈에 이르는 수많은 부처와 상통하는 표현이랄까.)

나는 평생을, 종교는 의지 약한 사람들만이 갖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신이 없다고 생각했다. 신이 있다면 왜 이렇게 사람들은 아프고 힘드냐고.
그러나 그러한 생각 또한 그냥 인간이 생각하는 신의 관념일 뿐. 신의 뜻은 아무도 모른다. 신의 관한 모든 관념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비록 그 중 맞는 것이 있다 할지라도)
아무튼 그랬던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뒤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하님이 편해지는 느낌이랄까? 내가 알던 하님이 아닌 것 같은 느낌.
그냥 뭔가 알 수 없는 느낌. 이 책을 읽고 난 뒤 울컥했다.
나 은총받은건가? (농담...인듯 아닌 듯)

아마 저자의 하님에게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저자의 '회의하기 이전의 하님은 회의를 거친 후의 하님과 전혀 다르다'라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일까. 지금의 난 (기독교에 대한)회의를 거친 후의 상태이니 말이다.
님이 나를 성장하고 진화하기를 바라는 존재라.. 나를 진화시키는 힘의 원천이자 도착지라.. 하님이 내가 당신과 같아지기를 바란다니.
새로운 차원의 하님이다. 내가 지금까지 알던 하님이 아니다. 난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저자의 하님이라면 정말 믿고 의지하고 영적성장, 자아확장을 굳건히 마땅히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하님의 경지를 향해 나아간다는 말이 참 충격적이었. 모두가 그 경지를 향해 나아가며 스스로를 성찰하며 통찰하면 이 세상이 얼마나 고차원의 세상이 될까? 과연 그 세상은 얼마나 고요하고 평화로운 무릉도원일까. 그 경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사랑'에 경지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 마음들이 가득한 세상일지 절로 그려진다.

그동안 내가 살며 누렸던 운 좋은 경험들. 그 얼마나 많은 경험들을 은총이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았다며 넘어갔던가. 적어도 감사할 줄은 알았어야했는데. 앞으로는 무종교인으로 산다 할지라도 사소한 것에 감사하고 모든것을 최대한 사랑해보려 마음을 먹었다. 그 경지에 감히 닿을 순 없더라도 적어도 나는 영적으로 성장하고 자아실현에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겠지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해보며 조용히 하님을 발음해본다.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난 기독교인은 아니다. 오히려 불교에 가까운 무종교인으로서 이 책을 읽고 느낀점을 적어보았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그토록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언급하며 마무리하자면, 그것은 아마 진실, 영적성장, 자아확장, 자아실현, 사랑, 하님이 아닐까 싶다. (하나님인가 하느님인가 무엇이 맞는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다.)

저자의 이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영적성장이란 작은 우주에서 출발해 보다 더 큰 우주로 들어가는 여행이다."
나는 삶을 고해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함으로서 오히려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나는 지금 나라는 작은 우주에서 출발해 더 큰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 영적 성장을 하기 위해 진실(스스로에게도 진실된)에 헌신하는 삶을 추구할 것이며 자아의 탈 중심화를 위해 나의 자아를 먼저 찾을 것이다. 그것부터 시작해보자. 그럼 적어도 어둠 속에서 번쩍 불빛이 빛나는 것 같은 깨달음으로 오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천천히 조금씩 나에게 다가올 것임이 확실하니 말이다.











삶은 고해다.



삶은 고해다. 또한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삶이 힘든 것은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워서이다. 하지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이 모든 과정 속에 삶의 의미가 있다.
문제란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부딪쳐서 해결하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영혼의 성장과 발전에 영원히 장애가 된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대신해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라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행동에 책임지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그 행동의 결과로 따라오는 고통을 피하고 싶어서다. 책임이 주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이 매일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한다. 삶이란 온통 개인적 선택과 결정의 연속임을 알아야 한다. 완전히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자유로워진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각자는 영원히 희생자로 남을 뿐이다.

그녀(내담자)는 자신이 하찮은 존재이며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느끼며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아끼지 않았다.
... 그녀는 자기 절제에 관한 한 가장 기초적인 학습이 필요했다. 자기 가치와 자기 시간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시간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게 되면, 시간을 절약하고 계획을 세우고 최대한 활용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33p 훈육

문제를 해결하는 고통을 다루는 데 필요한 훈육의 세 번째 요소는 진실에 충실한 것이다.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영혼이 성장하려면 이것이 항상 필요하다. 62p 훈육

전적으로 진실에 헌신하는 삶이란 지속적으로 쉼없이 철저하게 자신을 성찰하는 삶을 의미한다. 71p 훈육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는 능력 자신을 성찰하는 능력이 바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부단한 자기 성찰과 사색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또한 진실을 전적으로 헌신하는 생활이란 자진해서 다가오는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생활로 말한다. 우리가 가진 현실에 대한 지도가 정말 유효한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지도 제작자들의 비판과 도전을 받을 수 있게 자기 지도를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꽉 막힌 세계 안에서 살게 된다. 시인 실비아 플러스의 비유를 사용하자면 진공의 병 안에서처럼 우리는 자신의 악취가 풍기는 공기를 거듭 들이마시면서 점점 더 깊은 자아도취에 빠지는 셈이다.  현실에 대한 지도를 수정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괴로움이 따른다. 그래서 우리는 지도의 신빙성이 위태로워질 것 가으면 대개는 멀리 도망가고 피해버린다. 72p 훈육

자신을 포기함으로써 인간 존재는 가장 황홀하고, 영구적이고, 확고하며 무한한 인생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101p 훈육

(영적성장을 위해서는) 직접적인 경험에 대한 특이하고도 자기중심적인 인식을 뛰어넘어야 한다. 성숙한 깨달음이란 개인적 경험의 잔재인 선입견과 편견을 이해하고 보완할 때만 가능해진다....즉, 익숙한 것을 억제하고 낯선 것을 환영하는 것이다. ... 내 인식 세계에 새롭고 신기한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야 한다. ... 자아의 탈중심화를 겪어야만 한다. 102p 훈육

모든 것을 포기함으로써 보다 많이 얻는다. 자기 훈육이란 자기 확장의 과정이다. 포기의 고통이란 죽음의 고통이고, 옛것의 죽음이란 새것의 탄생이다. 죽음의 고통이란 탄생의 고통이고, 탄생의 고통이란 죽음의 고통이다. 103p 훈육

그렇다면 이 삶의 정신적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될 가능성은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적어도 생존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단계까지 영적으로 의식 수준을 진화시킬 수 있을까? 답은 그렇다와 아니다 둘 다이다. 그렇다는 이유는 고통을 완전히 받아들이면 더 이상 고통은 고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훈육은 정통함에 이르게 하고, 그리하여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어른이 아이를 다루듯 고통에 숙달된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남을 무한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며, 그 사랑이 자신에게 무한한 기쁨을 되돌려주기 때문이다. 105p 훈육

포기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먼저 소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진 것 없이는 아무것도 포기할 수 없다. ... 자아를 잃기 전에 당신의 자아를 발달시켜놓아야 한다. 107p 훈육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재라고 잘못 알고 있는 환상의 세계를 힌두교와 불교도는 마야라고 일컫는다. 이들은 참된 실재는 자아 경계를 포기한 합일의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양상이든 자신을 우주의 다른 부분에서 분리되고 구별되는 독립된 개체로 보는 한, 인간은 우주의 통일성을 깨달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힌두교도와 불교도는 때때로 주장하기를, 자아 경계가 발달되기 전의 영아는 실재를 바로 알고 있지만, 오히려 성인들은 모른다고 말한다. 136p 사랑

자아경계는 부드러워지기 전에 먼저 굳어져야만 한다. 그리고 자아를 초월하기 전에 자아가 확립되어야 한다. 자아를 잃어버리기 전에 먼저 자아를 발견해야 한다. 137p 사랑

영적성장이란 작은 우주에서 출발해 보다 더 큰 우주로 들어가는 여행이다. 278p 성장과 종교

성스러움으로 가는 길은 '모든 것'을 회의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279p 성장과 종교

"당신은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심오한 종교입니다. 당신은 진리를 숭배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성장 가능성을 믿고 있습니다. 즉, 정신적인 성장 가능성을 믿습니다. 당신의 종교는 아주 강력하므로, 도전에 따르는 괴로움과 무지를 극복하는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치료라는 모험을 선택했고, 당신이 행하는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종교로 인한 것입니다. ... 실은 당신이야 말로 부모보다 더 영적으로 진화했고 당신의 영성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훨씬 더 위대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281p 성장과 종교

회의하기 이전의 하나님은 회의를 거친 후의 하나님과 전혀 다르다. 325p 성장과 종교

우리는 모두 개별적 존재지만, 또한 더 큰 전체의 부분들이고, 설명할 수 없이 광대하고 아름다운 어떤 것으로 통합된다. 기적적인 것을 인식하는 것은 자아실현의 정수이며, 그것을 뿌리로 삼아 인간의 지고한 인격과 경험은 자란다. 334p 성장과 종교

우리는 사랑을 통해 자신을 드높인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함으로써 그들 또한 드높인다. 자아의 확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사랑은 바로 진화의 행위이다. 그것도 진행중인 진화이다. 모든 생명체에 존재하는 진화의 힘은, 인간의 사랑이라는 모습으로 인류 앞에 자신을 드러낸다. 인간애 중에서 사랑은, 엔트로피의 자연법칙을 무산시키는 기적적인 힘이다. 385p 은총
✅️(진화는 열역학 제2법칙(그 끝은 엔트로피)의 대표적인 반대이다. 영적성장(사랑)은 엔트로피(자연법칙)을 거스른다.)->기적

(엔트로피: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우주는 수백만 년의 세월동안 아래로 흘러내리다 모양도 질서도 없는 미분화된 '물방울'이 되어 더 이상은 어떤 운동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완전 해체와 미분화의 상태를 '엔트로피'라고 하며, 엔트로피 상태를 향해 에너지가 저절로 흘러내리는 것을 '엔트로피의 힘' 이라 부른다.)

영적성장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이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데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영적성장의 목표는 의식적 자아가 신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우리 개개인이 모두 전적으로 완전히 하나님이 되는 것 말이다. ... 의식을 지닌 채로 하느님의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무의식의 하느님이라는 뿌리에서 자라난 의식의 새싹이 하느님 그 자체로 성장할 수 있다면, 하느님이 전혀 새로운 삶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이것이 인간 개체의 존재 이유다. 우리는 의식을 지닌 개인으로서 새로운 방식의 삶을 사는 신이 되고자 태어난 것이다. 406p 은총

앎의 경지란, 어둠 속에서 번쩍 불빛이 빛나는 것 같은 깨달음으로 오는 게 아니다. 그것은 천천히 조금씩 오며, 그 조금이라는 것도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물을 관찰하고 참구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진다. 411p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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