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함을 쫓기 위한 방법

워킹맘의 육아 노하우

by 쉼표


나는 다른 사람들은 이미 처음부터 깨달았을지도 모르는, 그런 인생의 지혜를 늦게 알게 되는 면이 좀 있다. 내가 기분이 우울한 이유를 잘 알지 못하고 내가 화가 난 이유도 잘 알지 못하고, 또 그 이유가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판단하기를 망설이는 그런 유형. 질려버려서 헤어지자고 이별 선언을 했다가 막상 헤어지고 나자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그런 유형.(어쩌면 헤어져서 사랑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도, 이유를 붙이는 것도 망설이는 그런 유형 말이다.) 사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인생의 지혜'라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거라서 무척 거창한 표현이기는 하다.


다시 직장으로 가는 길에, 용기를 낼 수 있을까.


퇴근하고 나면 이미 피로함이 컵 가득 쌓인 상태에서 넘칠 듯 말 듯 위태롭게 버티다 쓰러지듯 눕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되었음을 느낀 순간부터였을까. 그리고 그 피로함의 일상을, 바닥에 쏟을 듯 말 듯한 피로함의 반복을 '착하고 성실하게 살자는' 다짐으로 극복해내기란 사실상 나라는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임을 깨닫게 된 순간부터였을까. 직장으로 복귀한다는 것이 두렵고 우울하고 회의감이 들어 어느 출근 길에는 '가기 싫어 눈물이 나는' 시점에 이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의 원인이 이 피로함 때문만은 아니다. 모든 이유는 한꺼번에 왔다. 아이를 잘 보살피고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업무를 잘 처리하리라는 자신감을 잃은 이유는 언제나 곁에 도사리고 있었으나 이 '자신감 상실' 앞에서 나를 둘러싼 온갖 이유들은 마치 처음 얼굴을 드러낸 것처럼 한 순간에 나를 압박해 오고 있었다.


그래, 하나씩 생각해 보자. 나는 왜 이렇게 힘든걸까. 피로함이다. 이 피로함을 매일 만나느냐, 하면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 '그렇지 않은 것 같은 날'이 문제다.


번아웃일까


나는 육아 휴직을 정말 오래 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행복했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그 시간이 아쉬워서 오늘 하루 동안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몇 시간인가, 계산해 보곤 했다. 첫째 아이는 34개월까지 데리고 있다가 어린이집을 보내기 시작했고(이미 둘째가 태어난 시점이었다.) 둘째는 복직을 앞둔 해 3월부터 보냈기 때문에 내 육아휴직 기간은 정말 온전한 '육아'휴직 기간으로 채워졌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도 오후에 아이들이 오면 공원에 가서 놀 생각으로 저녁 메뉴 요리까지 해 두는 경우가 많았고 외출 계획이 없을 때에도 나는 돈을 벌지 않고 육아휴직을 하니까, 남편은 돈을 벌고 있으니까 놀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해 뭐든 일을 찾아 했던 것 같다. 특히 책육아, 엄마표 영어에 꽂혀 있던 터라 책을 사고, 영어 그림책을 사고, 세이펜을 구입해 음원 작업을 하고 아이들이 오면 신나게 계획을 실행해 봤다. 그땐 그게 재미있기도 했던 것 같다. 재미없으면 어떻게 했겠는가. 그러나 재미로만 하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쉬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휴직 중에, 남편은 일하느라 고생하는데 나만 쉰다는 것은 불공평한 것이다. 라는 도덕이 언제나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아이를 키우며 놀아봤자 노는 거라 할 수도 없다. 안 보면 모를까 집안은 정리되지 않은 장난감이 사방에 널려 있고, 당장 아이들 반찬도 없고, 설거지와 빨래가 밀려 있는데 뭘 어떻게 쉬냔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더 쉬었어야 했다고 후회하고 있다.


그때 나는 저녁을 배달시켜 먹었어야 했다. 아이 둘을 돌보며 저녁 준비를 허겁지겁했다. 남편은 8시에 오고 아이들은 그 전에 저녁을 먹어야 해서 저녁을 두 번 차리는 경우가 많았고 피로한 남편이 빨리 먹고 일어나야 하루가 마감될텐데, 하면서도 너무나 피곤해 보이는 그가 핸드폰을 보며 저녁 먹는 모습을 보자면 불쌍해서 재촉을 하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면 식사가 끝나고 9시를 향해가는 수가 많았다.


책은 또 얼마나 읽어줬던가. 책을 읽어 주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재미로만 하지는 않았다. 그 덕에 첫째 아이는 특히 책을 좋아하고 영어 유치원을 보내지 않았음에도 긴 영어 책을 술술 읽기는 하지만 아이 성향만 맞는다면 그냥 영어 유치원을 보내는 것이 나았을지도 몰랐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많은 공이 들어갔다.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아이는 책을 좋아하고 영어를 좋아하지만 거기에 들어간 나의 수고와 시간이 준 피로함은 고스란히 다시 아이에게 짜증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그건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있었을까.


육아휴직 중에도 결코 덜 피로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그때는 정말 아이들이 어렸기 때문이다. 뒤늦게 깨달은 것은 그때 나의 공평함의 잣대가 너무나 잘못됐다는 거다. 아이들이 어려서 정말 힘들 때에만 휴직을 하고 있는 건데, 노동의 강도가 이렇게 센 상태였는데 왜 그렇게 나에게 휴식을 주는 것을 망설였던 걸까.


이렇게 구구절절 옛날 이야기까지 들먹이는 이유는 내가 어쩌면 번아웃이 왔나, 하는 생각이 최근 떠올랐기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번아웃이 왔다는 핑계를 대야만 여전히 나에게 휴식을 주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떨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배달 음식이 주는 죄책감


그래서 이제 저녁을 시켜 먹기로 했다. 그리고 하루, 이틀이 지나자 놀랍게도 별로 피곤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퇴근하고 왔는데 몸이 괜찮다. 그래서 저녁 준비를 해 볼까, 하고 아이들에게 오랜만에 엄마 음식을 해 먹였다. 우리 집 둘째는 배달 음식보다는 솜씨가 모자라도 집밥을 좋아하여 맛있게 그릇을 싹싹 비운다. 흐뭇하다. 밥상을 치우고 오늘 숙제를 봐주고, 아이들 정리 정돈과 샤워와 양치를 지시하고 싸움을 중재하고 몸놀이를 주시하다 보니 아.... 아직 하루 일과가 끝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눈이 감긴다.


그리고 다음날 집에 왔는데 어제 맛있게 밥을 먹던 둘째가 생각난다. 더구나 어제 장을 봐둔 것이 있어서 오늘 또 저녁을 하긴 해야겠다. 그리고 비교적 몸도 팔팔하다. 첫째가 학원 보강을 가서 둘째와 둘이 2시간쯤을 보낸다. 콩나물을 다듬는 나를 보고 얼굴 표정이 밝아진 둘째 꽁꽁이가 '엄마 내가 도와줄까요?'한다. 꽁꽁이가 그럴 줄 알았지 하하.. 하며 '응! 도와줘, 이렇게 하는 거야.' 말하자 식탁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재잘재잘대기 시작한다. '엄마, 나 잘하지요. 이렇게 하는 거죠?' '응, 우리 꽁꽁이 잘한다. 우리 꽁꽁이 오늘 학교에서는 잘 놀았어? 또 누가 우리 꽁꽁이 좋아한다고 했어?' '나 오늘 엄청 물 많이 먹었어요. 엄마가 떠 준 물 안 먹은 줄 알았죠? 아니에요! 다 먹고 두 번이나 더 먹었어요.'와 같은 이야기가 오간다. 사소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는 꽁꽁이를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보들이의 등장

그리고 아파서 못 간 학원 보강을 다녀 오느라 지친 보들이가 집에 도착한다.

"우리 보들이~ 우리 보들이 왔어?"

역시나 보들이는 대답이 없다. (원래 대답이 없는데 피곤하면 더 대답이 없다.) 이때부터 시작이었을까. 나의 생기가 급속도로 소진되고 있음을 느낀다.

"보들아, 핸드폰 꺼내놔." (대답 없다.)


그리고 아이들이 밥을 먹는다. 보들이와 꽁꽁이에게 샤워를 하라고 하고 나는 빨래를 갠다. (빨래 개는 일이 의외로 피곤하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야 알았다. 빨래를 개고 나선 늘 피곤했는데도 그 피곤의 원인이 빨래임을 몰랐던 것이다.) 아, 나는 이제 갑자기 너무나 샤워를 하고 싶다. 아직 빨래 정리가 끝나지 않았고 아이들 숙제를 챙기지 못했는데. 안 되겠다 싶어서 샤워를 끝낸 보들이에게 말한다.


"보들아 내복 입고 와, 머리 말리게."

내복을 입고 머리를 말리는 정도는 확인해야 씻으러 갈 수 있다. (벌벌 떨면서도 옷을 입지 않거나 머리를 말리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제 정말로 피곤해서 샤워를 하고 싶은데 한참이 지나도 보들이가 오지 않는다. 아, 너무나 피곤하다.

"보들아 뭐해?"

대답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보들이를 찾아 일어선다. 보들이는 내복을 바지만 입은 채로 머리는 흥건하게 젖은 채로 한 손에 내복을 쥐고, 쭈구려 앉아 바닥에 책을 펼쳐 두고 읽고 있다. 나는 욱, 한다.


1차 욱.


이제 8시가 넘었다. 보들이에게 가방 정리를 하라고 했지만 또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이제 더 피곤해졌다. 피로의 물이 가득 차고 있음을 느낀다. 어서 하루 일과를 끝내고 싶은데 보들이는 말이 없다.

"보들아, 핸드폰 어디 있어? 꺼내놔."

"가방에 있어요."

보들이는 찾아 꺼낼 생각은 안 하고 손으로 다른 것을 만지작 거리며 대답한다. 보다 못해 내가 찾기 시작한다.

"없는데?"

"있는데?"

"니가 찾아봐."

핸드폰이 없다. 핸드폰은 결국 학원 차량에 있었고, 학원 차량에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잃어버린 건지 몰라 한참 헤메다 결국 학원 차량에 있음을 알게되었다. 정말 이런 일이 10번도 넘는다. 문제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아 핸드폰 목걸이를 사 주고 핸드폰이 있는지 집에 오면 바로 확인하려 해도 보들이는 목걸이를 이틀만에 박살내고 핸드폰을 꺼내 두라는 말을 사뿐히 무시한다는 것이다.


2차 욱.


2차 욱 후에 보들이에게 쏟은 화가 미안해서 장난감을 하나 사 주기로 했다. 이제 보들이는 단어를 외우고 자야 한다. 보통 보들이가 집에 오는 시간은 5시니까 요즘 아이들의 일과치고 바쁜 건 아니다. 보들이가 공부를 하는 일에 피로를 많이 느낀다는 것을 아니까 영어 도서관을 끊고 그 자리에 피아노를 넣고 집에 오는 시간과 내 퇴근 시간을 거의 딱 맞췄다. 그래서 영어 단어를 외우긴 해야 한다. 매일 외우는 것 아니고 오늘 공부라고는 워크북 한 장 푸는 거랑 단어 15개(아는 단어가 반 이상)외우기라서 많지 않게 조정했다. (욕심을 버리고 아이의 성향을 존중하기로 했다.) 집중하면 10분도 안 걸릴 걸, 풍선껌을 입에 넣고 풍선을 만드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공부를 못 한다. 나는 너무나 잠이 와서 이 아이의 공부를 빨리 끝낼 요량으로 아이 책상 옆에 앉았다. 내가 읽을 책이 손에 들려 있지만 들어오지 않는다. (책을 읽는 데 쓸 에너지가 없다. 그래서 유튜브를 보고 인터넷을 했던 거였다는 것을 또 깨닫는다.) 풍선껌을 뱉고 공부하자는 내 말에 그냥 공부할 수 있다고 대답하곤 다시 풍선을 부는데 온 신경을 집중한다. 이제 내 피로함이 쏟아지기 직전이다. 눈치 없는 보들이가 이를 눈치챘을 리 없다. 약간 화를 내며 껌을 뱉으라고 하자 껌을 뱉은 보들이는 이제 자기가 화가 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보들이는 학원 보강을 다녀와 피로함이 나만큼이나 쏟아질 듯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단어 외울 차례가 되자 보들이는 씩씩 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계속 보고 있자니 역시나 참지 못한 나는


3차 욱.



아, 무엇이 잘못이었을까. 아이에겐 죄가 없다. 아이이지 않은가. 그걸 견디지 못한 내가 죄이지. 이런 자책감이 또 너무나 힘들어지고 다시 자신감이 없어지고 우울해진다.



그리고 하나씩 돌이켜 보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가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쓴 글을 읽다 보면 나는 바보처럼 몰랐던 감정의 정체와 이유를 찾을 때가 있다. 나는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몰랐던 육아 노하우


하나. 나는 꽁꽁이가 아닌 보들이와 있을 때 훨씬 많이 스트레스 받고 그래서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어진다. 그것은 보들이의 죄가 아니지만 나에게 보들이를 품을 그릇이 없다.


둘. 그래서 그 그릇이라는 것은 타고난 품성도 있지만 현재 내 마음 상태, 몸 상태가 결정하기도 한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몸 상태. 내 몸이 팔팔하더라도, 오늘 집안일 다 할 수 있겠는데, 오늘 맛있는 거 해줄 수 있겠는데 하더라도 보들이를 위해 컵 카득 피로함을 채우지 말자.


앞으로 나는 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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