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
학생에게 상처 받은 일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 길어 다 서술하기 어렵지만 상처를 받았고 이후 그 학생이 2번 사과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고, 그러한 상처가 학교에서 또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를 가라앉게 만든다고 말이다. '일련의 과정'을 다 서술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어쩌면 '너무나 길어'서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학생과 관계가 그렇게 틀어진 과정과 그것이 왜 유독 나에게 아팠는지는 나에게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였다. 그 아이를 졸업시키고 방학 동안 이제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고민이 끝나기도 전에 개학해 버렸다.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두고 다가온 개학일은 갑작스럽고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 '일련의 과정'이란 무엇인가.
작년 2월은 개학 전부터 비상이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20만명을 향해 가고 있었고 몇 배씩 그 숫자를 늘려가는 중이었다. 정부에서는 교사에게 학생들이 감염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전면등교하도록 시켰다. 9개 학급이던 당시 3학년 중에서 2개 학급이 가장 확진자가 많았는데 그 2개 학급 중에 한 학급이 우리반이었다. 왜 이렇게도 '인싸'가 많냐며 투덜댔던 기억, 아이들의 감염경로까지 조사하라고 하는 통에 학부모님들과 통화하던 기억 속에 그 아이도 있다. 그 아이는 확진자 중에 하나로 문자로 나와 먼저 만났다.
전년도에 교과 담당으로 잠깐 본 적이 있었기에 나는 그 아이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다. 잠깐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은가. 잠깐 보았지만 나는 그 아이를 '경계해야 하는 학생'으로 놓아두었었다. 그런데 자신의 확진을 알리며 소개하는 문자 속에 그 아이는 너무나 예의가 바른 것이 아닌가. 생각보다 너무나 예의가 바르네, 라는것이 첫인상이었다.
개학을 하고 아이들을 만났다. 역시나, 우리반은 인싸들의 집합이었다. 우리반은 조용해 보이는 아이들조차 알고 보면 확실한 자신의 논리와 주관이 있고, 활발하고 목소리 큰 아이들이 많았으며, 교내 행사에도 의욕이 넘쳤다. 나는 담임을 맡은 이래 처음으로 '이 아이들과 졸업할 때 너무나 아쉬우면 어쩌나.'라는 생각을 했다. 까불까불한 남자 아이들은 능청스러움과 유머가 중학생 수준이 아니었다. 교무실에 나를 만나러 올 때면 '아름다운 00 선생님', '사랑하는 00선생님'이라고 큰 소리로 부르는 바람에 조용히 하라며 복도로 데리고 금방 나갔지만 그 모습들이 즐거웠다.
특히 '그 아이'의 유머는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학급 임원을 뽑는 날, 여학생 후보들과 남학생 후보들로 갈렸는데 남학생들 회장 후보인 아이의 이름을 따서 자기들끼리 '**의 힘'이라며 유세를 펼치고 여학생 회장 대표의 이름을 따서 또 '더불어 xx당'으로 이름을 붙여 경쟁 구도를 만들었다. 그 아이는 '**의 힘'의 부회장 후보로 나갔으나 '**의 힘' 후보 중 유일하게 낙선했다. 개표가 될 때마다 자기가 밀리고 있다는 사실에 큰 소리로 한탄하며 '저도 **의 힘입니다!'하던 모습이 선하다.
그러나 역시 그 아이는 '경계해야 하는'의 목록에 두어야 했던 것일까. 그 아이의 행동에 진심으로 그토록 웃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을까. 나는 1년 동안 그 아이를 가장 많이 지도해야 했다. 지도해야 했다는 것은 야단칠 일이 많았다는 의미이다.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를 괴롭힌다는 이유로 학부모님 2분이 도움을 요청하셨고, 수업 시간에 떠들고 지도에 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2분이 여러차례 말씀하셨다. 교내에서 다른 학년 학생에게 험한 말을 쏟아내거나 조롱하는 듯한 말을 한다는 이유로도 지도해야 했다. 이러한 사건 속에 그 아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그 아이는 보통 그 사건의 중심이 아니라 그 중심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이였다. 정작 주도하거나 사연이 있는 아이는 다른 아이인데 그 아이는 친구 옆에 있다가 그 친구보다 더 나가서 (선을 넘어서) 야단을 맞는 것이 반복되는 패턴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와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문제는 그 아이가 저지른 '잘못'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잘못을 지도하는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아이의 태도에 있었다. 나는 학생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미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잘못이 반복되어도 실은 그렇게 화가 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리고 어른들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당연히 그 잘못은 쉽게 개선되지 않으며 어쩌면 영원히 개선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변화를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을 변화를 믿고 꾸준히 지도하는 데에 있지만 그 변화는 당장 나타나지 않을 수도, 또 내가 지도하는 1년 안에 나타나지 않을 수도, 어쩌면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가 아무리 잘못을 반복해 저질렀어도 나는 그 아이를 보는 마음에 실망이 없었을 것이다. 반성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앞으로는 잘하겠다는 다짐을 들으면, 그것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의 진심만큼을 믿어주고 그걸로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잘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그리고 돌이켜 보니어쩌면 자신이 잘못을 지도하는 나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사적인 거리가 가까워질 수록 담임으로서 자신을 지도해야 하는 공적인 거리를 받아들이지 못했을지도. 여러 차례 그 아이를 지도하면서 그 아이는 때론 불만을 표현했지만 또 곧 장문의 문자로 반성을 표현했다. 그 아이는 나의 지도에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간 날에도 '즉시 잘못을 인정하지 못한 것이 죄송하다.'라고 '좋은 제자로 남도록 지금부터라도 노력하겠다'고 긴 글을 보냈다.
내가 코로나 확진에 걸려 학교에 나가지 못한 기간에도 선생님이 학교에 안 오시니 너무 보고 싶다고 다정한 인사를 건넨 것도 가장 많이 야단 맞은 그 아이였다.
그렇게 12월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 아이는 또 같은 패턴의 잘못을 하고 있었다. 또 중심이 아닌 중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다시 친구를 향해 험한 말을 하면서. 그 아이는 다시 지도를 받아야 했고, 나의 말에 중심에 있던 아이도 불만이 있어도 입을 다물고 있는데 한 발 더 나아간 그 아이가 지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만을 (선을 넘긴 태도로)표현한 순간 여러 친구들 앞에서 나는 말하고 말았다.
'너 나랑 친하냐? 왜 니 감정 얘기를 하고 있어?'
그 말의 진짜 뜻은
너 나랑 친해서 이렇게 예의 없게 행동하는 거야? 니 감정을 다 받아줄 수는 없어.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였다.
이후부터였을까. 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중간에 그 아이는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고 나도 그 아이를 살살 달래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틀어지고 있었고 졸업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아이 주변 아이들과는 더 틀어졌다. 아무리 말해도 바뀌지 않은 것들이 모두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그 아이 주변 아이 중에는 아무리 학생이지만 예쁘게 봐줄 수 없는 아이도 있었다. (내 수업은 아니었지만) 수업 시간 중 영어 단어장을 들고 가서 공부를 하려고 하기에 '너 이거 보려고 하는 건 아니지?'라고 하자, '왜 하면 안 돼요?'라고 묻는 아이였다. 그 아이를 포함한 몇몇은 학기말에 꾸준히 야단을 맞고 있었다. 학습 능력이 안 되는 것도 아닌데 학교 수업을 우습게 여기는 태도를 학기말이라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 아이들 속에서 '그 아이'가 나를 어떻게 뒤에서 욕할지 상상 못할 바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것에 나는 별로 상처받지 않는 편이다. 뒤에서 무슨 욕이야 못할까.
문제는 내가 시키지도 않은 '롤링페이퍼'였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친구들에게 할 이야기를 적어서 돌리는 롤링페이퍼를 하고 있었고 나는 하는 줄도 몰랐는데 나에게도 몇몇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고 있었다. 그런데 한 아이가 가져온 롤링 페이퍼에 '그 아이'의 글이 있었다. 지웠지만 지운 사이로 보인 메시지는 충격적이었다. '내 인생에 선생님은 최악이다. 이런 선생님은 처음이다.'
그런데 그 메시지가 왜 충격적이었을까? 나는 한동안 생각했다. 뒤에서 욕을 하든 말든 나는 가볍게 무시하는 사람이었다. 동료 교사는 뒤에서야 욕할 수 있지만 보라고 쓴 거라 나쁜거라고 했다. 글쎄. 지운 틈으로 본 거니 뒤에서 한 욕과 비슷한 거 아닐까? 그래서 든 생각이, 이상하게도 나는 '글은 진심'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글'이 진심이라고 느끼는 사람이었나보다. 화가 나면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지만 진심이 아닌 글을 쓰지는 못하리라고.
나는 그 아이를 다시 불렀다. 그리고 '나는 지금 너를 지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개인적인 감정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그 일련의 사건이 끝났다.
그리고 그 사건은 의외의 후유증을 남겼다. '그 아이'외의 여러 아이들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그것이 가장 큰 상처였다. 사실 그것이 '의외의 후유증'인 이유는 따뜻한 감사를 건넨 학생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잠깐 담임을 했을 뿐인데도 전년도에 담임을 했던 학급의 학생들의 대부분이 찾아와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갔고, 직접 만든 쿠키를 선물하기도 하고, 내가 가장 예쁘게 보던 학생 중 하나는 '선생님이 가장 좋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내가 준 것보다 과분한 사랑을 준 아이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도 회의감을 느꼈으니 '의외의 휴유증'이라고 말해야 정당하리라.
'그 아이'는 나의 그 '개인적인 감정'의 호소로부터 길지 않은 시일 내에 긴 사과의 글로 응답했다. 이틀쯤 걸렸을까. 그러나 나는 그 긴 사과의 글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다시 배신당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사과의 글이 도착했다. 그럼에도 나는 '생활기록부에 뭐라고 쓸까봐 두려워서' 보낸 거라고 그렇게 나를 설득하여 다시 배신당할 위험에서 도망쳤다. 졸업식에 보낸 그 사과의 메시지가 정말 '생활기록부에 뭐라고 쓸까봐 두려워서' 보낸 것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래도 나는 그렇게 믿어야 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났다. 다시 몸은 피곤해지고 작년엔 어떻게 살았나 싶은 저녁에,
문자가 왔다. 이제는 정말 나와 화해를 반드시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그 아이로부터.
고등학교가 자퇴하고 싶을 만큼 힘들고 끔찍하다. 선생님이 자신을 보며 웃던 모습이 많이 생각난다. 한 번은 뵙고 싶다.
그 아이의 사과를 무시하며 나는 내가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러 번 돌이켜 생각해 보았었다. 나는 무엇을 잘못했을까, 그때 나는 그 아이를 지도하지 않았어야 했나.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그 아이가 나를 배신했다고 느낀 것처럼 그 아이도 내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고. '너 나랑 친하냐'는 그 말이, 꼭 그 말이 아니더라도 지도의 과정 중에서 내뱉은 어떤 말이 '너를 전혀 좋아하지 않아.'라고 들렸을지도 모른다고. 그랬다면, 그것은 오해였다. 나는 명확하게 그 아이와 정말, '친했다.' '너 나랑 친하냐?'라고 했지만 우린 정말 '친했다.' 교사와 학생 사이가 너무나 가까워선 안 된다고 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를 야단치면서, 그리고 반성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가까워져 버렸다.
우리는 많은 착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배신당했다는 착각.' 그 배신당했다는 착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는지도. 그런데 당신이 하는 그 생각, '배신당했다는 믿음'이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착각이라는 사실은 어쩌면 의외로 다시 힘을 줄지도 모른다.
그 저녁 내가 다시 얻었던 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