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몇 달 전에 읽었지만 역시나 선뜻 무언가를 남기기가 망설여졌다. 쓰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 가장 극복하기 힘든 문제였다. (그래서 아주 짧게 나누어 글을 써보려고 한다.) 또한 이러한 종류의 고전을 온전히 이해하기에 부족한 나의 배경지식이 섣불리 무언가를 쓰기 망설여지도록 했다. 그러나 어떤 책을 읽고 다른 사람의 감상 몇 줄을 찾아 인터넷을 떠돌던 내 경험을 돌이켜 보면, 전체적 인상이 아닌 구체적 내용에 대한 다양한 감상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던 터라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부족한 나의 글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드디어 쓰기 시작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도스토예프스키.
이야기의 큰 줄기를 말하기에 앞서, 무척이나 두꺼운 책 세 권인 이 소설은 그 압도적인 길이에도 불구하고 아주 재미있다고 말하고 싶다. 살인, 재판, 아버지와 아들이 이룬 삼각 관계. 막장 드라마로 손색 없는 소재로 철학적인 문제를 아주 긴 대화나 심리 묘사로 처리한 부분이 생각보다 적어서 상대적으로 술술 읽히는 편이다. 또한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를 죽인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해 독자에게 명확히 밝히지 않고 전개하는 방식, 조시마 장로가 만난 살인자가 장로에게 품었던 살해 의도, 드미트리가 자살을 하려고 결심하였다가 극적으로 삶의 희망을 되찾은 시점에 파국을 맞게 된다는 설정 등이 주제의 가치와 별개로 흥미롭다.
모든 이야기의 발단은 세 아들의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로부터 시작된다.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책 속의 표현으로는 어릿광대(조롱을 일삼는 수치심 모르는 사람)인 그는 두 아내로부터 세 아들 드미트리, 이반, 알료사를 얻었으나 세 아들에 대한 일말의 책임 의식도 갖지 않은 채 그들을 내팽겨친다. 첫째 아들 드미트리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남긴 재산(유산)을 아버지가 모두 차지했다고 여기며 이를 돌려 받기 위해 그를 찾아 온다. 이반은 드미트리를 돕기 위해, 알료사는 근처의 수도원에 있게 됨으로써 장성한 세 형제는 모두 아버지의 곁에 오게 된 것이다. 약혼자가 있던 드미트리는 그곳에서 사랑하게 된 여인을 두고 아버지와 삼각관계가 됨으로써 극도의 갈등 관계에 빠지고 이반은 종교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점에서 일면 아버지와 비슷하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누르지 못한다. 오직 알료사만이 아무런 평가나 미움이 없이 아버지를 대하는데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1부이며 2부에서의 주인공이 알료사일 것임을 밝힌 바 있다. 2부는 알료사가 혁명에 가담하였다가 처형된다는 스토리로 계획되었으며 실제로 더욱 중요한 주제의식이 2부임을 강조하였는데 도스토예프스키가 사망함으로써 볼 수 없게 되었다. 드미트리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의혹으로 재판을 받게 되는 '친부살해 사건'은 사실 표도르 카라마조프의 사생아 스메르자코프가 범임이었음에도 진범이 밝혀지지 못하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게 되며 이 소설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아버지를 죽이지는 않았으나 충분히 의심받을 만한 행동(방탕한 생활)을 했던 드미트리, 또는 죽어 마땅한 아버지를 살해했을 뿐인 드미트리, 또는 약자에게 무자비하게 횡포를 저질러 그 아들을 깊은 슬픔에 빠지도록 만든 드미트리가 받은 유죄 선고는 정당한 것일까, 아닐까. 마지막 장면의 드미트리가 행패를 부리고 수치심을 주었던 2등 대위 스네기료프의 아들 일류사의 장례식은 2부의 예고편처럼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