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진'과는 다른 가해자들.
돌이켜 보면 나는 그렇게 호기심이 많은 인간도 아니었건만 언제부터인가 많은 것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신문에 난 그 사건 속에서 엄마는 아이를 왜 죽여야만 했을까. 자동화의 편리성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이 젊은 청년들이었던 그 죽음과 그 죽음의 피해자들을 오히려 손가락질하는 사람의 잔인함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그리고
인간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따돌림의 원인은 무엇일까.
‘따돌림’은 ‘폭력’과 다르다. ‘폭력’은 상대방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괴롭히는 적극적 행위이고 ‘따돌림’은 상대를 괴롭히려는 의도 없이 그저 함께 어울리고 싶지 않다는 감정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니까 말이다.
친구를 방에 감금하고 하루가 넘도록 구타하고 그 사진을 찍은 일,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아이가 자살하기 전 타고 올라가던 엘리베이터 안에서 쭈그려 울던 모습이 cctv에 찍힌 일... 폭력의 비극은 너무나 선명하여 기사에 실린 몇 문장의 묘사로도 우리는 분노할 수밖에 없다. 가해자는 명백히 악하기 때문에 그런 악마가 되는 데에 있어서 자기 자신 고유의 특성과 환경적 영향이 모두 작용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책임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라고 우리는 대체로 동의한다.
그렇다면 ‘따돌림’은 왜 생겨나는 걸까? 따돌림을 당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따돌림으로 한 아이가 자살해 버렸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우아한 거짓말’을 들었다.
중학생 천지는 조용하고, 친구가 공격하면 되받아칠 줄도 모르고, 조롱하면 조롱하는 대로 당해주는 아이이다. 화연은 초등학교 때부터 그런 천지를 교묘하게 괴롭힌다.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소문도, 천지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교묘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아이들 마음속에서 천지를 무시하고, 비웃고, 밀어내게 만들었지만 화연이 ‘그 아이를 무시하자, 비웃자, 놀아 주지 말자.’라고 말한 적은 없다. 오히려 아이들 마음속에서 밀어내진 천지와 함께 다니며 노는 아이는 화연밖에 없다. 외로움을 느낀 천지는 결국 사랑하는 언니와 엄마를 두고 떠난다.
천지의 죽음은 누구의 책임일까. 천지는 ‘조용하고, 공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 했다. 그래서 천지와 화연의 관계, 천지가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던 ‘미라’는 천지의 언니 ‘만지’에게 말한다. ‘천지는 착한 것이 아니고 바보 같은 것이라고.’ 천지에게 친구가 없었던 것은 그 바보 같은 천지의 성격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은근한 방식으로 친한 친구인 것처럼 행동하고 천지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퍼뜨리며 다른 친구들의 접근을 막은 화연 때문일까. ;모든 친구와 다 놀지는 않기 때문에 천지와 놀지 않았을 뿐'인 미라에겐 책임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최근 아이들을 지도하며 가장 충격적으로 느낀 것은 교실 속의 문제에 대해서 누구도 책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여름이 되어서 선풍기를 분리하고 청소해야 한다. 누가 해야 하는가. 없다. 한 아이의 책상에서 여러 아이가 놀다가 물건이 분실되고 물품이 고장 났다. 누가 해결해야 하는가. 없다.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일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왜 그것이 우리 책임이에요? 전 안 했다니까요.’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거야!”
폭력을 바라보며 우리는 피해자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명백한 ‘악’처럼 보이는 가해자의 존재는 우리의 그런 의심을 잠재우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한 번도 그처럼 잔인한 가해자였던 적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한 그러한 사건 앞에서 명료하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천지가 따돌림 당하도록 주도한 교묘한 화연에게 책임이 있는 것일까. 화연은 천지에 대한 거짓 소문을 내면서도 ‘그러니까 쟤랑 놀지 말자.’와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쟤는 이상한 아이고 어울릴 만한 아이가 아니야.’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대화의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천지에 대한 나쁜 소문와 평가를 유통시킨다. 화연은 명백히 나쁘다. 화연이 어린 시절 바쁘고 무신경한 부모로 인해 방치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모든 아이들이 그러한 가정 환경에서 화연 처럼 교활해지지는 않으므로, 확실히 화연은 나쁘다.
그렇다면 천지는 따돌림을 당할 만한 '바보'일까. 천지는 말이 없고, 공격할 줄 모르고, 그래서 당한다.
아니다. 천지는 사실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과 수다스럽게 이야기하고, 자신에 대한 화연의 이중적인 행동과 의미를 모두 파악하고 있으며, 복수하고자 글을 써 표현할 줄도 안다. 천지가 따돌림을 당할 만한 아이처럼 보였던 것은 천지가 또래와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또래는 아무도 천지에게 응답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교실 속에서 다른 아이를 만났더라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미라에게 책임이 있을까. 미라는 교묘하게 천지를 소외시키는 화연을 공격하고, 화연이 내는 잘못된 소문을 바로잡아주기도 하며 친구들이 적어도 천지를 싫어하게까지는 않도록 만드는 아이이다. 어찌 보면 정의롭기도 한 미라에게 천지는 자살하기 전 ‘너를 용서한다’고 편지를 남긴다. 미라는 억울하고 당황스럽다.
천지가 자살하고 난 후 화연은 교실 속에서 소외당한다. 화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밝은 척 천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이제 화연은 천지가 된다. 아니, 그 이상이 된다. 천지처럼 단지 다른 친구들 관심 밖으로 밀려난 아이가 아니라 천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악한 아이로 친구들에게 노골적으로 거부당한다. 미라는 화연을 경멸하고 천지 죽음에 대한 책임이 화연에게 있음을 분명히 한다.
화연이 당하는 따돌림도 천지가 당한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다른 점이 있다면 화연의 성격에 문제가 있고 그 성격이 생길 만한 원인도 있었으며 화연이 따돌림을 당하는 것에 화연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고 느낀 것은 화연도 따돌림에 상처 입고 그것에 대응하는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자신을 등진 사실을 모르는 척하고 아프다고 조퇴하고 집에 가는 것이 어떻게 제대로 된 대응 방법이겠는가. 그러나 어쩌면 그 교실을 떠나 다른 곳,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다른 곳으로 가는 방법이 유일할지도 모른다. 다르지 않은 것은 또 있다. 아이들이다. 천지를 대한 것과 같이 화연을 대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전혀 다르지 않다.
미라와 같은 아이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 천지와 어울릴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놀지 않았으므로 책임이 없고, 마땅히 싫을 만한 행동을 했던 화연과 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놀지 않았으므로 책임이 없다. 그 아이들이 마음속에 상처를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몰랐기 때문에 책임이 없고, 그 아이에 대한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단지 놀아주지만 않았을 뿐 괴롭힌 것은 아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 자신들의 행동이 그 아이를 외롭게 만들었다 하더라도, 상처를 주었다 하더라도 나에게 그 아이와 어울려야 하는 의무는 없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 그러나 어쩌면, 화연보다 화연의 말을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믿고 거부감을 마음속에 품은 채 자신을 멀리한 다수의 태도가 천지를 외롭게 했을 것이다. 또한 그런 소문이 거짓이고 화연의 태도가 교활함을 간파한 미라와 같은 누군가가 돌려버린 고개가 천지를 외롭게 했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 지극히 무관심하고 복지 제도에 회의적이며, 심지어 거기에 들어가는 주머니 속의 내 돈을 아까워하면서도 우리는 생각한다.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어떻게 나의 책임이겠는가.
그러나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은 사실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문득 미라는 깨닫는다. 왜 천지는 반에서 왕따인 어떤 아이처럼 혐오의 대상은 되지 않았는가. 그것은 반에서 가장 입김이 센 아이가 천지를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돌림의 과정은 우연이었고, 그 대상이 내가 될 수도 있었다. 왕따가 된 그 아이는 사소한 행동 하나로 센 아이에게 공격당했으며 다수는 그 아이와 절대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 영향력이 센 아이의 눈 밖에 나는 것은 나에게도 위협이 될 수 있으며 또 굳이 그 아이와 어울리려는 노력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타인의 외로움을 외면하는 행동은 뉴스에 나오는 가해자의 모습처럼 강렬하지 않다. 적극적으로 누군가를 괴롭히는 행동이 아닐 뿐더러 나의 자유와 선택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살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에게 자살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한다면 적극적이고 노골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아무 책임이 없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가까이는 내 가족부터 멀리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지구 먼 곳에 있는 모든 약자들에게 우리는 책임이 있다. 따돌림의 과정이 우연이었듯, 부유하든 빈곤하든, 타고난 재능이 크든 작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이러한 처지는 모두 어떤 '잘못'에 기인한 것이 아닌 '우연'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에게 그런 책임이 없다고 한다면 누구에게 책임이 있겠는가. 그래서 천지에게, 또 천지와는 다른 의미의 또 다른 약자에게 우리 모두는 책임이 있다
자살 직전까지 천지는 살고 싶어 했다. 운이 좋았다면 살 수도 있었다. 단 한명이라도 손을 내밀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