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네~ 몇 개 나왔나욕?“
기다리던 전화여서일까,
목이 메어서 목소리가 갈라졌다.
“5일 배양 4개, 6일 배양 5개 해서 총 9개 나왔어요. “
“네? 6일 배양이요?”
처음 듣는 단어였다.
알고 보니 느린 배아의 경우 6일에 걸쳐 5일 배양과 같은 세포분열을 이룬다고 한다. 5일 배양과 거-의 비슷하지만, 그래도 제때 분열한 5일 배양이 조금 더 좋기는 하다고.
내 채취 결과를 듣고 시험관을 하는 지인들이 나를 5일 배아 부자라며 부러워했다. 그게 뭐라고, 잠깐이나마 기분이 좋았다.
‘9개면 아홉 번 시도할 수 있다는 거잖아.
그 안에 충분히 임신하지 않겠어?
채취는 이제 안 해도 되겠다~!‘
이제 잘 될 일만 남은 것 같아서 기대가 부풀었다.
임신을 빨리 하는 것도 그렇지만, 나는 휴직을 빨리 끝내는 것이 목표였다. 휴직을 시작한 처음에는 10년 만에 쉰다는 것에 마냥 기분이 좋았는데 반년쯤 쉬니까 너무 무료했다. 우리 집은 회사가 많은 오피스단지에 있는데, 점심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직장인들을 볼 때면 나는 쓸모없는 사람인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고는 했다. 그때 알았다. 아 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교직을 대단히 사랑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일을 함으로써 존재의 이유를 찾는 사람이구나.
그런 나였기에 빨리 이 임신이라는 과제를 끝내고 복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기왕 쉬게 된 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자 싶어서 운동, 미술 등 평소 배워보지 못한 것들을 이것저것 배워 보았지만 갑자기 늘어나 버린 자유시간은 온갖 잡생각을 불러일으켰고 그런 잡생각의 끝은 늘 우울함이었다. 아, 진짜 빨리 임신해야지하는 조급함만 가득해졌다.
어느덧 다음 생리가 시작되었고 첫 배아 이식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이식 방법에는 인공주기와 자연주기가 있는데 자연주기가 자연스러운 내 배란 주기에 맞춰 이식을 하는 거라면, 인공주기는 인위적으로 약을 먹어 배란이 안되게 한 상황에서 이식을 한다는 차이가 있다. 둘 중에 편한 건 인공주기다. 자연주기는 자연스러운 배란 주기를 따라가다 보니 병원도 자주 가야 하고, 또 이식하기 전에 조기 배란이 돼버리는 등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첫 이식은 인공주기로 하기로 결정했다.
이식을 준비하며 다시 크녹산(헤파린) 주사와 아스피린 처방을 받았다. nk세포 수치를 낮춰주는 수액도 맞기로 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나는 착상이 원래 잘 되는 편이었고 이번엔 유산의 원인도 파악해 대비를 해뒀으니, 이번에는 진짜 성공할 거라 믿었다. 임신하면 난임휴직도 자동으로 끝나는 거라고 들어서, 그럼 그땐 육아휴직을 좀 땡겨 쓸까, 복직을 할까 하는 즐거운 상상까지 했더랬다.
난자 채취가 여러 통증을 가져왔던 것과 달리 배아 이식은 순식간에 끝났다. 너무 아무 통증도, 느낌도 없어서 ‘정말 배아가 들어간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집에 와서는 다른 시험관 경험자들처럼 보양식을 줄줄이 챙겨 먹었다. 추어탕, 곰탕, 삼계탕 등등…
“시험관 하면 살찐다”는 말의 절반은 호르몬 탓, 절반은 이런 보양식의 탓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식 일주일 뒤, 병원에 가기 전에 임신테스트기를 먼저 해보기로 했다. 늘 항상 희미하게나마 두 줄을 보았으므로, 이번에도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어라, 하지만 선명한 건 한 줄 뿐이었다.
눈을 비비고, 다른 각도에서 비춰 보고, 불량인가 싶어 몇 개를 더 뜯어서 해 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왜지?”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연임신도 잘 됐던 내가, 시험관까지 했는데 착상 실패라고? 시험관만 하면, 유산 방지만 하면, 다 잘 될 거라 생각했는데. 남 얘기인 줄만 알았던 “시험관 1차는 로또”라는 말이 내 얘기가 되었다. 헛웃음만 나왔다.
그래도 나는 늘 현실을 빨리 받아들이는 편이다.
이땐 마침 전국적으로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될 무렵이었고, 나는 ‘임신에 실패했으니 코로나 백신이나 미리 맞아두자’고 마음먹었다. 아이들을 마주하는 교사는 국가 지원으로 빨리 접종하게 해주었었지만 혹시나 임신에 영향이 갈까봐 무서웠던 난 접종을 거절했었다. 뒤늦게 “저 다시 백신 맞게해 주세요!“하고 교감 선생님께 읍소를 해봤지만, 번복은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잔여백신을 노리기로 했다. 휴직 중이라 시간이 많았으니 휴대폰을 붙잡고 새로고침을 계속했다. 워낙 백신 경쟁이 치열할 때라 병원의 위치를 보며 거리를 재고 따질 여유는 없었다. 잡히면, 가는거다. 그렇게 무한 새로고침을 하다가 잡게 된 병원은 서울이 아닌 하남에 있었다. 조금 아쉬웠지만 ‘뭐, 이 정도면 갈 만하지.’ 하는 생각에 바로 차를 몰았다.
병원에 들어가기 전, 혹-시 모르니 마지막으로 임테기를 해 보기로 했다. 병원 아래 약국에서 임테기를 산 뒤, 종이컵이 있으면 편하겠다 싶어 다시 들어가 종이컵을 부탁드렸다.
“어휴… 그러지 마세요.”
중년의 여약사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순간 당황했다. 아마 그분은 내가 임신을 중단하는 뭔가를 먹으려고 하는 줄 아셨던 것 같다.
“아니요! 저는 임신준비 중인 유부녀고,
시험관도 하고 있고,
근데 이번 이식은 실패해서 잔여백신 맞을 건데,
혹시 몰라 다시 체크하는…”
이런 구구절절 설명을 할 힘조차 없어서 그냥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라고만 말하고 나왔다.
임테기는 여전히 한 줄이었고 나는 바로 백신 1차를 접종했다. ‘그래, 뭐 차라리 잘됐다.’는 정신승리를 하면서.
1차 백신을 맞은 이상, 한 달 뒤 2차 백신도 맞아야 했다. 그 사이 배아 이식은 불가능했고 가을이나 되어야 다시 시도할 수 있었다. 너무 시기가 미뤄지는 것 같아 아쉬웠지만, 냉동해 둔 배아가 많다는 게 그나마 작은 위로가 됐다.
‘가을부터 차근차근 이식하면…
그래도 올해 안에는 임신하지 않을까?’
조바심 대신 긍정회로를 돌려보며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 2차 백신 접종일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