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2차 접종도 별 탈 없이 마쳤다. 단순히 코로나 백신을 맞은 것뿐인데, 무슨 임신을 위한 준비를 다 끝낸 것 처럼 후련해졌다. 이제는 아주 모든 행동을 임신과 연관지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접종 사흘 뒤부터 몸이 급격히 나빠졌다. 열은 없었지만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심한 어지럼증이 밀려왔고, 머리는 무겁게 짓눌렸다. 이석증일까 싶어 이비인후과를 찾았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남편과 식사 중에 어지럼증이 한 층 더 심해져서 응급실을 찾았다. 거기에는 나처럼 백신 부작용으로 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내 옆 베드에서도 “백신 접종하고 어지러워서 왔어요.”라는 환자의 말이 커튼 너머로 들려왔다. 그 말에 아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하는 묘한 동지애를 느꼈다.
그날 응급실에서 CT, MRI등 여러 검사를 받았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다는 답과 함께 9시간 만에야 겨우 집에 갈 수 있었다. 나를 간호하느라 잠도 거의 못 자고 출근하게 된 남편에게 너무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지쳐서 베드에 얼굴을 살짝 묻고 조는 남편을 보며 ‘앞으로 열받는 일이 있어도 한 번은 참아줄게’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었더랬다.
스무날 가까이 이어지던 어지럼증은 어느 날,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동안 이 어지러움을 평생 달고 살아야 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들로 막막했는데 그거 하나 없어지자 세상 다 가진 사람마냥 행복했다. 그래. 따지고 보면 아프지 않은 무탈한 매일이 정말 행운이고 복인데 꼭 그런 일상을 잃어봐야 내가 행복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임신이 잘 안 된다고, 그간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인 것처럼 청승 떨어 온 게 조금 부끄러워졌다.
아무튼 백신으로 이래저래 고생하느라 10월이 되어서야 다시 난임병원을 찾았다. 3월부터 휴직을 시작했는데 내가 올해 한 건 고작 한 번의 이식/ 한 번의 실패가 다라니, 허무했다. 남은 3개월은 바짝 달려봐야겠다는 조급함이 밀려왔다.
이번 이식부터는 손을 바꾸기로 했다. 같은 병원 안에서 원장님만 바꾼다는 뜻이다. 기존 원장님은 워낙 인기가 많다보니 환자 한명한명 기억하기도 버거워하셨고 때문에 난 진료에 앞서 늘 내가 먼저 내 정보를 브리핑해야만 했다. 저는 이런 이런 특징이 있는 환자입니다 뭐 이런식의… 내가 뭐 의사의 인품을 대단히 중시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매 진료마다 내가 초진 환자가 된 것같은 기분이 드는 건 썩 유쾌하지 않았다. 따라서 인기는 비록 덜할지라도, 앞으로는 환자들의 정보를 미리 숙지하고 세심하게 진료해 주실 수 있는 분께 진료를 받기로 했다.
2차 이식은 변형자연주기로 진행하기로 했다. 배란유도제를 쓰되, 자연스러운 주기를 최대한 따르는 방식이다. 이 방법의 단점은 인공주기에 비해 예측이 어렵다는 거다. 나는 배란이 임박했을 때 난포 터뜨리는 주사를 맞아서 계획적으로 이식일을 잡고 싶었는데, 원장님께서는 자연주기로 가기로 한 이상 인위적인 건 최대한 지양하자고 하셨다. 원장님께선 배란이 임박했을 때 배란테스트기를 수시로 써보고 테스트기에 양성이 뜨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오라는 과제를 주셨다.
나는 내가 혹시 배란 신호를 놓칠까 봐 외출도 잘 못하고 며칠을 내내 화장실만 들락거렸다. 너무 신경을 써서일까, 무슨 꿈에서까지 내가 배테기를 들고 있더라. 여하튼 다행히 양성 신호가 병원이 영업 중일 때 떠 줘서, 곧바로 병원으로 가 이식 날짜를 잡을 수 있었다.
이식은 언제나처럼 금세 끝났다. 이번에는 병원에서 피검사를 하기 전에는 절대 혼자 임테기를 미리 해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시험관은 피검사를 하기 전에는 환자가 임의로 주사나 약을 끊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임테기는 한 줄인데, 피검사 날은 멀어서 주사는 계속 맞아야 하면 너무 비참하니까…그런 상황은 좀 피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이식에 앞서 임신 확률을 올려준다는 여러가지 노력들도 해보았다. 배를 따뜻하게 해 준다는 배워머도 사 보고, 발팩도 해 봤다. 절에 가서 기도도 꾸준히 했다. “한 명만, 건강한 아기만 오게 해 주세요.” 매일 같은 말을 되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누워만 있는 것에 질려서 집 앞을 가볍게 산책하고 돌아왔더니 속옷에 갈색혈이 묻어났다.
‘아 까불지 말고 집에 있을걸!’
패닉이 된 나는 임신 테스트기부터 찾았다. 이게 유산의 징조인지 아니면 말로만 듣던 착상혈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임테기가 무슨 초음파도 아니고 그런 걸 알려줄 리가 없는데, 그땐 꼭 그게 필요한 것 같았다.
‘아 이번엔 진짜 미리 안 해보려 했는데…’
다짐이 무색하게 임테기 봉투를 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