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유산

by 복코코


“네? 입원이요?”

“아기 심박수가 너무 떨어져 있어요.

입원해서 최대한 안정을 취하는 게 좋겠습니다. “



임신 초기에는 아기의 심박수가 120 bpm이 넘게 나와줘야 하는데 여름이의 심박수는 거기에 한참 못 미치는 90 bpm이었다. 나는 당황해서 “네?? 며칠 전 동네병원에선 120이 넘게 나왔었는데요??”라고 말해봤지만 그런다고 현 상황이 달라지는 건 없었다. 선생님께선 일시적으로 심박수가 떨어진 것일 수도 있으니 입원을 통해 최대한 안정을 취해보자고 하셨다.



사실 임신 초기에는 산부인과에서 임산부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만약 내가 다른 병원에 다니는 환자였다면 거기선 초기 임산부인 내게 입원까지는 권하지 않았을 텐데 우리 선생님은 내 과거를 다 아시다 보니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집에 있으면 집안일한다고 자꾸 움직일게 뻔해서 최대한 안정을 취하려면 입원하는 게 좋기는 했다.



당일 바로 연계된 분만병원에 입원했다. 병실은 오래되고 허름한 여관 같은 곳이었다. 딱딱한 싱글 침대, 오래된 티비, 낡은 화장실이 있는 2평 남짓한 방. 창문도 매우 작고 거기서 보이는 전망이라곤 앞 빌딩밖에 없는 그런 곳. 나는 한동안 여기서 수액을 맞으며 종일 누워있게 될 것이었다. 괴롭겠지만 이런 걸 통해 여름이를 지킬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하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다시 초음파를 봤으나 여름이의 심박수는 여전히 90대를 맴돌았다. 실망스러웠지만 아직 하루도 안 지났으니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선생님께서 이제는 이틀에 한번 꼴로 초음파를 보자고 하셨다. 자주 본다고 좋을 게 없다고. 제발 모레에는 심박수가 올라가 있길 간절히 바라며 열심히 누워있어 보기로 했다.


입원 기간 동안 밤에는 남편이 퇴근 후에 같이 있어줘서 우울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지만, 낮에는 혼자 병실에 우두커니 앉아서 여름이의 안위만 생각하고 있자니 돌아버릴 것 같았다. 티비를 보며 까르르 웃다가도 다시 오열하며 여름아 미안해를 되뇌고는 했다. 미친 사람처럼.


‘여름아 미안해.

뭔진 몰라도 엄마가 잘못한 것 같아 미안해. ’



그러다가 가장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여름이를 보내는 연습을 해보기도 했다.



‘여름아 부족한 엄마에게 와 줘서 고마웠어.

너를 보내자니 엄만 너무 너에 대해 아는 게 없네.

너의 성별조차도….’




이틀 뒤, 떨리는 마음으로 초음파 의자에 다시 앉았다. 야속하게도 여름이의 심박수는 그대로였다. 다만 긍정적인 소식은 여름이의 몸 크기가 주수에 맞게 커졌다는 것!


입원했던 분만병원 원장님께서는 “이거 희망적인데?”라고 하셨고 그 말에 내 안에 자그마한 기대의 싹이 자라났다. 하지만 곧이어 그런 마음을 누르려고 했다. 혹시나 나중에 잘 안 돼서 실망하면 슬프니까.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실망하면 실망하는 거지, 미래에 실망할 나를 걱정하는 마음은 얼마나 하찮은 방어기제인지.




며칠 뒤, 사용하던 약과 주사가 다 떨어져 분만병원에서 퇴원하고 다시 난임 병원으로 돌아갔다. 여름이의 몸 크기는 계속 커지고 있었지만, 심박수는 여전히 낮았다.

원장님은 “정말 보기 힘든 케이스”라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당신도 예측이 어렵다고 하셨다. 원래 태아의 몸 크기랑 심박수는 비례하는데, 여름이는 전혀 따로 놀았으니까.



이렇듯 늘 비슷한 내용의 진료 속에서 언제부터일까, 난 여름이와 이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슬픈 상황을 몇 번 겪어서일까. 이 힘든 케이스가 갑자기 좋아지는, 희박한 확률의 그런 기적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여름아 미안해.

그런데, 결국 갈 거라면... 희망고문하지 말아 줘.’



참 몹쓸 생각이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고는 ‘미안해 이런 생각해서.’하고 오열하기를 반복했지. 나는 엄마 자격이 없다. 그러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다-하고 스스로를 난도질하고 책망하고…



그리고 다음 진료일. 화면 속 여름이는 또 제법 커져 있었다. 하지만 원장님의 말은 담담했다.


“심장이 멈췄네요.”

“네….”


마지막까지 열심히 자라 준 우리 아기. 그런 여름이의 떠남을 확인한 날. 슬펐지만 한편으론 끝없는 희망고문에서 벗어나서 다행이라 안도하는 추한 엄마인 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