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을 시작할 무렵, 오픈 채팅에서 같은 길을 걷는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는 매일같이 시험관 얘기로 수다를 떨었고, 실제로 만나 밥을 먹기도 했다.
우리가 시험관을 하는 이유는 각자 달랐다. 누구는 남편 문제, 누구는 다낭성, 누구는 난저…. 그런데 착상이 잘 안 되는 친구들이 농담 삼아 “제발 두 줄만이라도 보고 싶다”는 말을 할 때마다 마음이 씁쓸했다.
나는 두 줄은 여러 번 봤지만 결국 다 유산이 됐으니까. 받았다 빼앗기는 그 기분이 얼마나 비참한지 알기에 차라리 착상이 안 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두 줄 한 번 보지 못했던 그 친구들의 절망도 깊었을 거다. 무슨 맘으로 그런 말을 했겠어. 하지만 그때 나는 내 상처만 들여다보기도 벅차, 남의 고통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세 번째 소파술 예약을 잡았다. 태아 염색체 검사도 같이 하기로 했다. 원장님은 여름이는 아마 심장 기형이거나 염색체 이상일 거라고 하셨다. 차라리 염색체 이상이 있다고 나오길 바랐다. “아, 아픈 아기라서 그랬구나."하고, 이유라도 붙잡고 싶었으니까.
수술일. 마취 기운이 사라지자 이전번처럼 아득한 통증이 밀려왔다. 수술 후 뒤 처리를 해 주시는 원장님께 “선생님 너무 아파요 엉엉."하며 흐느꼈다. 그래. 지난번에도 딱 이렇게 아팠었지. 애써 꼭꼭 닫아 놓았던 지난 기억의 페이지들이 억지로 다시 열렸다.
그렇게 여름이를 보내고 친정에 2주간 머물렀다. 몸과 마음의 상처는 엄마 밥을 먹고 가족들과 생활하면서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다.
‘너무 임신이라는 목표에만 몰두해서
소중한 걸 잊고 살지 말자.'
친정에 머무는 동안 그 다짐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겼다.
2주를 푹 쉬고 집으로 돌아와 달력을 보니 어느덧 한 해의 마지막 페이지였다. 내가 올해 한 게 뭘까? 하고 생각해 보니 유산, 이식 실패, 유산이 끝이었다.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일 년이 끝나다니 너무 허무했다. 올해 초에는 뭐라도 다 해 낼 것처럼 희망에 가득 부풀었었는데 말이다.
밀려오는 상실감을 참지 못하고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나는 sns를 무심코 둘러보다 동기 언니의 프로필이 아기사진으로 바뀐 것을 발견했다. 언니도 나처럼 쭉 난임 병원을 다니던 사람이었다. 우린 가끔 서로의 근황을 공유했지만 혹시 상대방이 슬픈 상황에 있을지도 몰라 자주 연락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언니의 프로필이 아기 얼굴로 바뀐 걸 보니 내가 다 기쁘고 반가워서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복코코야!”
언니가 내 문자를 보고 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언니는 전원 없이 다니던 병원에서 계속 도전하며 끝내 귀여운 딸아이를 만났다고 했다. 언니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며 그동안 어떤 처방을 받았는지 비결 좀 알려달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자 언니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 채취 19번, 이식 9번 해서 얘 만난 거다?”
언니의 그 말에 잠깐 할 말을 잃었다. 맘카페에서 수많은 성공 후기를 읽었지만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횟수였다. 언니가 병원 오래 다닌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노력했을 줄은 몰랐다. 나는 유산을 여러 번 겪은 다른 종류의 아픔이 있긴 했지만, 노력이라는 걸로 따지면 내가 과연 언니만큼 했다고 볼 수 있을까?
사실 알고 있었다. 세상엔 나보다 더 긴 싸움을 버틴 사람들이 많다는 걸. 그리고 나 역시 아직은 좀 더 도전할 여력이 있다는 것도.
학기말이 되자 학교에서 복직 여부를 물어왔다. 집에 있으니 자꾸 안 좋은 생각만 하는 것 같아 복직을 고민했지만 결국 1년 더 휴직하기로 했다. 임신도 다 때가 있으니, 앞으로 살아갈 날 중 가장 젊은 지금 이때 최선을 다해 보고 싶었다. 그런 결심과 함께 휴직계를 제출했고, 곧 병원에서 여름이의 염색체 검사 결과를 들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태아 염색체는 정상이에요.”
띵.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튼튼이도 정상이었는데 여름이도 정상이라고? 억울하고 답답했다. 결국 원인은 심장 기형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걸로 결론이났다. 하지만 태아의 심장은 임신 중기에나 정확히 볼 수 있는 거라서 이또한 확실한 건 아니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내가 모르는, 의학적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문제가 나에게 있는 걸까? 하지만 의사도 모르는, 답이 나오지 않는 일에 매달리는 건 시간 낭비였다. 그럴 시간에 무너진 내 몸이나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게 먼저였다.
그동안 맞은 주사 탓에 몸무게는 부쩍 늘었고 체력도 바닥을 쳤다. 얼마전엔 버스를 잡겠다고 살짝 뛰었다가 심장이 터질듯이 쿵쾅거려 깜짝 놀랐다. 세 번의 유산이 몸을 이렇게도 무너뜨렸구나 싶어 조금 처량했지만, 아직 멈출 수 없었다. 다시 도전하려면 체력을 끌어올려야만 했다.
이 무렵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시험관 톡방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운동 동기를 만들기 위해 ‘만보 챌린지’를 기획했다. 일정 기간 동안 만보 걷기를 가장 열심히 한 사람에게 돈을 모아 상을 주는 소소한~ 이벤트였다. 그런데 이게 뭐라고 엄청 동기 부여가 돼서, 매일같이 칼바람을 맞으며 한강으로 걸으러 나갔다.
겨울 걷기는 겨울 걷기만의 맛이 있다. 매서운 바람, 모락모락 입김, 살을 에는듯한 냉기에 볼이 얼얼해지지는 가운데 역설적으로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우울이 조금씩 걷히고 희망이 슬며시 차오르곤 했다.
그나저나 소파술을 한 지 꽤 지났는데도 첫 생리가 찾아 오질 않았다. 너무 늦어진다 싶어서 동네 병원에서 생리 유도 주사를 맞았는데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걱정이 되어 난임 병원에 갔더니 원장님께선 내 자궁이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이게 무슨 소리지…?
일을 하면 생리가 나와야하는 거 아닌가?‘
머리 속이 물음표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