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쓰자면, 나는 내가 배란이 잘 안 된다고 생각해서 무배란으로 생리를 유도하는 약을 썼는데 알고 보니 내 난소는 제 할 일을 성실히 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 무배란 약과 배란 시도가 서로 충돌하면서 생리가 아직 안 나온 것이라고. 내 자궁에 떡하니 자리 잡은 물혹이 바로 자궁이 일을 시작한 증거였다.
물혹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사라지는거지만 임신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막연히 손놓고 기다릴 순 없으니 피임약으로 줄여 보기로 했다.
참 세 번이나 유산했는데도 자궁이 다시 스스로 일을 시작했다는 게… 이런 표현 웃기지만 기특하게(?) 느껴졌다. 아직 내 몸은 나를 포기하지 않았구나.
피임약을 먹으며 톡방 친구들과 매일 만보 걷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물혹은 줄어들고, 계절은 3차 이식을 준비할 수 있는 때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3차’라는 숫자가 주는 압박감이 은근했다. 뭔가 벌써 고차수에 접어든 느낌이랄까. 헛헛..한 기분.
이번 3차 이식도 변형자연주기로 진행하기로 했다. 지난 과정을 돌이켜보면 나는 내 배란 주기에 맞춰 이식하는 편이 결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유도제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자연 임신이 잘 되는 편이었기도 했고. 초음파를 자주 봐야 하는 귀찮음은 있겠지만 자연주기는 인공주기에 비해 약도 적게 먹으니 심적으로도 한결 가벼웠다.
냉동해 뒀던 5일 배양 4개, 6일 배양 5개 중에서 그동안 5일 배양 2개를 사용했으니 이번엔 남은 5일 배아 중 하나를 쓰게 될 차례였다. 맘 같아선 두 개를 한 번에 넣고 싶었지만, 만 35세 미만은 5일 배양이 한 개만 허용된다. 작은 병원에서는 원장님 재량으로 한 개 더 넣어주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FM인 우리 원장님은 그렇겐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셨다. 원장님과 그간 래포가 어느 정도 쌓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배아 한 개 더 넣어주실 정도로는 안 되었나 보다. 사실 불법이니까 원장님도 곤란하셨겠지. 그치만 그땐 그게 왜 그렇게 서운하던지.
이식 준비를 하며 페마라(베란유도제)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번처럼 배테기에서 양성이 뜨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는 미션을 받았다. 또 행여 내가 신호를 놓칠까 봐 화장실을 수십 번 들락거리다 마침내 YES 표시를 봤고 병원으로 달려가 이식일을 받았다.
이번 3차 이식을 준비하면서는 이식 준비 사실을 친정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평소 난 엄마에게 내 시험관 일정을 여과 없이 다 공유하는 편이었는데 말이다. 뭐랄까, 그동안 엄마가 내 유산 과정을 쭉 지켜보며 정신적으로 많이 피곤했을 것 같다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엄마는 그런 걸 감수하고서라도 내 이야길 듣고 싶겠지만, 내가 미안해서 그러기 싫었다. 나중에 결과가 좋으면 그때는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당장 눈앞의 이식 일정이나 피검일 같은 세세한 진행과정은 당분간 혼자 알고 싶었다. 나는 엄마 앞에선 아직 쉬고 있는 척했다. 아직 병원 갈 기분이 아니라 하면서.
이식은 채취처럼 몸이 힘든 게 아니라서 자주 만나는 엄마 몰래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순식간에 이식을 하고, 앞으로 먹을 약과 주사를 바리바리 싸들고 집으로 돌아와 날짜별로 빼곡히 정리했다. 와 이제는 진짜 모든 게 루틴화되어 몸에 배어있구나, 피식. 자조 섞인 헛웃음이 나왔다. 전날 주문해 둔 추어탕을 끓이며 이런 보양식이 진짜 도움이 되긴 하나 하는 회의감이 스쳤지만 그래도 마음의 안정을 위해 열심히 먹었다. 나중에 그때 그런 거 먹을걸! 하고 후회하기는 싫으니까.
이번에는 피검사하기 전에 임테기를 미리 써 볼 생각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몇 번 더, 몇십 번 더 안 좋은 일을 겪을지 모른다. 따라서 한 차수 한 차수에 일희일비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생각을 비우자. 매도 빨리 맞는 게 나으니 하루라도 빨리 임신 여부를 알고 다음 여정을 계획하자고 생각했다.
만약 이번에 두 줄이 떠도 아가의 태명도 짓지 않을 생각이었다. 복덩이, 튼튼이, 여름이… 세 명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태명을 짓게 되면 내가 더 임신에 집착하게 되고 유산 후에도 마음의 갈피를 잡기 어렵다는 걸 절감하게 되었다. 따라서 최대한 아무런 기대 없이 흐름에 맡기는 것이 이번 이식의 목표였다. 1차 때처럼 착상 자체가 안 돼도 "그럴 수 있다", 2차 때처럼 유산이 되더라도 "그럴 수 있다." 그렇게 담담하게 받아들이자고 생각했다. 이식날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리고 나의 걱정은 아무런 힘이 없다.
이식 후 이것저것 영양가 좋은 음식들을 먹다 보니 슬슬 임신테스트기에 반응이 오겠다 싶은 날짜가 되었다. 남편이 자러 들어간 밤. 서랍에 넣어둔 테스트기를 조심히 꺼내보았다. 마침 자정이 넘어 내 생일이 막 시작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