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유산

by 복코코


내 생일로 넘어가는 12시. 남편을 먼저 재우고 혼자 몰래 사용해 보았던 임신테스트기는 선명한 두 줄을 보여주었다. 세 번의 임신과 유산을 반복한 나로선 두 줄을 본 것 자체로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둥, 아이가 찾아온 앞으로의 삶의 변화 등을 떠올리며 감격에 젖을 여유는 없었다. 그보다 앞으로 산부인과를 다니면서 클리어해야 할 각 주수별 과제가 머리 속에 자동으로 떠올랐을 뿐이다.



‘생일에 확인한 아이니까 이번에는 조금 다를지도 몰라.’,‘에이 설마 세 번 유산도 드문데 네 번까지 유산이 되겠어?’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품어보기도 하고. ‘그치만 나 같은 습관성 유산인 사람들은 네 번 유산도 쉬운데..’하는 비관적인 생각을 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들과 함께 5주엔 아기집, 6주엔 난황, 7주엔 심박수.. 각 주수별 과제를 여느 때처럼 착실하게 이행하였다. 각 주수별로 세세하게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는 이제 와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심장이 멎었네요.” 의사선생님의 선고. “아,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아이가 떠나간 순간에 진료실에서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만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다.



세 번째 유산을 했을 때까진 떠나보낸 아이들을 향한 슬픔과 미안함이 점철된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지만 이번엔 그런 건 없었다. ‘아 감정 소모도 반복되면 무뎌지는 구나.’, ‘아 이런 거에 무뎌질 수가 있구나!’ ‘무뎌지는 건 좋은 걸까? 안 슬프니 편하긴 하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건조한 목소리로 선생님께 말씀 드렸다. “수술 날짜 빠르게 잡아주세요.” 그렇게 나는 네 번째 아이를 떠나보냈다.



전보다 슬프지 않다고 후유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의 내가 아이를 향한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면 이번에는 스스로를 향한 자괴감에 휩싸였다. ‘아이를 낳겠다고 난임 휴직을 2년 냈는데 결국 성공하지 못했구나.’ ‘아, 나는 ‘실적’을 내지 못했구나!’ 마치 아이를 낳는 것을 업무상 나의 의무처럼 받아들이고, 결과를 판단하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친구들이 이야기했다. 나도 누군가가 같은 고민을 겪고 있다면 그런 말을 해줄 것도 같다. 하지만 타고나길 이런 성정의 내가 자연스레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스스로도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나 자신을 갉아먹으며 자책하는 와중에 시나브로 습기 가득한 여름이 왔다.



계절이 뚜렷한 나라에 산다는 건 내 선택으로 이뤄진 일은 아니고, 가끔 불편하지만, 때로는 좋은 점도 있다. 순식간에 바뀌어 버리는 계절에 맞추고 대비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재정비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름이 왔으니 여름 옷을 꺼내야지, 그리고 에어컨 청소 업자 분을 불러야지, 벌레를 죽일 수 있는 전기 파리채를 하나쯤 장만해야하지 않을까?, 아 휴가는 어디로 가지? 그러한 계절의 변화를 대비하고 맞이하는 과정에서 내 개인적인 슬픔이나 고통은 어느 정도 희미해졌던 것 같다.




어느새 여름의 끝으로 향해가고 있고 그 사이 난 시술을 하는 병원을 바꾸었다. 이전 병원에 큰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아이의 떠남을 선고받았던 그 날 진료실의 공기를 또 아무렇지 않게 맞이하기엔 내가 그렇게 무디지 못했다. 바꾼 병원은 이전 병원보다 집에서 두 배는 멀어졌고, 진료 대기 시간도 전보다 훨씬 길어졌지만 기다리는 것에 소질이 있는 나는 그냥 잘 기다리는 중이다. 버텨내고 있다.




더 이상 자책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나 자신은 소중하니까요-하는 교과서적인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라 그냥 자책에도 무뎌졌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나 자신을 힐난하는 행동을 그만두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니, 최대한 아무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다음 단계를 향한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 와서 조금 후회가 되는 것은 첫 번째 유산 이후로 아이가 찾아왔을 때마다 의심을 하느라 단 한 번도 찾아온 아이들을 진심으로 환영해주고 기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금세 떠나가 버릴지도 모르는 아이들이니까 맘껏 기뻐해서는 안 돼!’ 와 같은 방어기제로 내 감정을 꾹꾹 눌렀다. 기쁘지 말자. 아직 기뻐하면 안 돼.




다음에도 또 혼자 조용히 테스트기를 사용하는 날이 오겠지.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처럼 행동하는 건 어렵겠지만, 그래도 다음 번 두 줄을 보는 날에는 내가 조금 다른 마음가짐으로 있었으면 좋겠다. 더 기뻐하거나 덜 기뻐한다고 해서 아이가 떠나간 후의 슬픔이 더 커지거나 작아지는 건 아니니까. 찾아올 아이가 나에게 머무르는 시간의 길고 짧음을 생각하기 전에, 조금 더 순수한 마음으로 내 기다림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싶다.




이 글은 다른 글들이랑 어투나 분위기가 급 다르지요? 제가 브런치에 처음 가입 할 때, 작가 신청을 할 때 썼던 글이에요. 제 브런치북 글들 중에서 가장 먼저 쓰여진 글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다른 글들이랑 어울리게 다시 쓸까~하다가 또 그때의 생각이나 그런건 그 때 글에만 묻어나는 것 같아서… 그대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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