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 할 수 있는 모든 것

by 복코코



6월에 새 병원으로 옮겼을 때는 “아 또 어느 세월에 채취하고 이식하냐~~!!“ 싶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 계절은 가을에 접어들었다.



9월에는 원장님의 추천으로 자궁경(자궁내시경)을 했다. 나 같이 난임 병원 고인물인 사람들은 한 번씩은 자궁경을 받았다던데, 나는 왜 이제야 하는 걸까? 예전 병원에서는 왜 아무 말도 안했지? 잠깐 억울했지만, ‘내 자궁이 건강하다고 생각해서 안 권한 걸 수도 있지’라며 좋은 쪽으로 해석해 봤다. 검사 결과는 의외였지만 말이다. 글쎄, 자궁 안에 꽤 유착이 있었다. 놀라움과 동시에 ‘하긴 4번이나 유산했는데 자궁이 깨끗한 게 더 이상하지’ 싶은 마음이 들었다. 뒤늦게라도 자궁경을 권해 주신 원장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10월, 드디어 이식하는 달이 되었다! 내년에 복직하면 이렇게 여유롭게 임신 준비를 하지는 못할 거라서 이번에는 그동안 못해봤던 여러 가지 것들, 임신에 좋다는 여러 미신들(?)을 죄다 해보고 싶었다.


첫 번째로 한 건 난임 환자들의 성지(?)라는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은 거다. “거기서 수액 맞은 사람은 죄다 착상에 성공했대! “라며 친구들이 떠들어댔던 어떤 병원이 있었다. 솔직히 처음엔 ‘수액을 병원이 만드는 것도 아닌데 무슨 차이가 있다고…’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성공담의 유혹은 생각보다 강력하더라.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인 나는 반신반의하며 광명행 버스에 올라탔다.


도착한 병원은 의외로 평범한 가정의학과였다. 수액도 사실 특별해 보이진 않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성공 기운이라도 받아가자 싶어 맞고 나왔다. 수액은 콩주사랑 아미노산, 글루타치온 등 여러 가지가 적은 양씩 합쳐진 것으로, 가격은 서울보다는 저렴했다.



두 번째로 시도해 본 건 마사지받기였다. 시험관 카페에서 착상에 좋다고 소문난 곳이 있어서 고액의 관리권을 끊고 부지런히 다녔다. 운이 좋았는지 관리사분도 잘 만나서 갈 때마다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치유받는 기분으로 다녀왔다. 이식 전날엔 “코코님 처음 오셨을 땐 몸이 얼음장 같았는데 지금은 훨씬 따뜻해지셨어요!”라는 말도 들어서 괜히 더 잘될 것 같아 감사했다.

세 번째로 새롭게 시도해 본 건 아르기닌 먹기였다. 그간 DHEA, 이노시톨 등 별별 영양제를 다 먹어봤지만 아르기닌은 처음이었다. 선생님께 여쭤보니 이건 채취보다 이식할 때가 좋다고 해서 이식 직전부터 챙겨 먹기 시작했다. 원래도 먹는 약이 많았는데 아르기닌까지 추가되니 영양제만으로도 한 끼식사가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물론 농담이고 밥 배는 따로 있다.


그리고 맞이한 이식일.

원장님은 이식 전 방광에 물을 가득 채우고 오라는 숙제를 주셨다. 그렇다고 너무 일찍부터 물을 마시면 소변을 참기 힘들 수 있으니 병원에 1시간 전에 가서 물을 많이 마시려 했는데, 도착하자마자 간호사분이 바로 시술실로 안내해 버리는 게 아닌가.



‘네? 저는 아직 오줌이 안 만들어졌는데요?‘

차마 그런 말은 뱉지 못하고 어영부영 시술실로 끌려들어 갔다. 내 몸을 살펴보신 선생님은 바로 내 방광이 텅 비어있다는 걸 아셨다. 선생님의 실망스러운 표정에 “지금이라도 물 마시고 이따 할까요...?”하고 조심스레 여쭤봤지만 이식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난 잊어버린 게 아니라, 제시간에 맞춰서 마시려고 한 건데!! 순간 내 태도가 성의 없어 보였을까 괜히 민망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뭐라고 해명할 용기도 없었지만 말이다.


"이게 오늘 이식할 배아예요."


선생님께선 내 배아를 크게 모니터로 보여주셨다. 여태까지 여러 번 이식을 해봤지만 이렇게 내 배아를 확대해서 본 건 처음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하나의 행성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심장 같기도 하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이 밀려와 마음이 뭉클해졌다. 너무나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배아 촬영은 안된다고 하셔서 눈으로만 꼭꼭 열심히 담았고, 무사히 이식을 마쳤다.


이번 4차 이식에서는 내가 늘 받던 처방이랑 달라진 게 두 가지 있었다.


먼저 크녹산 주사를 하루 두 번 맞게 되었다. 사실 이건 내가 직접 요청한 부분이다. 내 혈전 성향이 임신에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랐던 난 대학병원 류마티스내과에 가서 크녹산을 하루 두 번까지 맞아도 상관없는지 미리 여쭤보았다. 그래도 괜찮다는 교수님의 답변을 근거로, 원장님께 크녹산을 하루 두 개씩 맞게 해 달라고 강하게 부탁드렸다. 그 아픈 주사를 하루 두 번 자진해서 맞겠다는 사람은 없었을 거다. 원장님은 좀 놀라신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내 부탁대로 처방해 주셨다.


또 이번부턴 프로게스테론(호르몬) 주사를 프롤루텍스가 아닌, 타이유로 맞기로 했다. 늘 맞아왔던 프롤루텍스는 자가주사이지만 타이유는 엉덩이 주사라 내가 스스로 놓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매일같이 근처 병원에 가서 주사를 부탁드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뭐라도 이전과는 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었으니까!



이식 후에는 일부러 평소처럼 지내려고 했다. 누워만 있으면 잡생각들로 더 힘들다는 걸 지난 3년 동안 충분히 겪었으니, 미술, 요리 같은 취미생활들도 누려가며,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선생님이 그림 그리는 내 모습을 찍어 보내주셨다. “잘 나왔어요~”라는 말과 함께. 근데 사진을 본 순간, 내 눈엔 얼굴이 아니라 정수리가 먼저 들어왔다. 훤했다.



'시험관 때문인가...???‘




시험관의 영향으로 탈모를 겪는 사람들 얘길 종종 듣긴 했다. 정말 별 부작용이 다 있구나 생각하면서도 은근 그런 부작용을 나는 당연히 피해 갈 것처럼 생각했다. 내가 뭐라고. 아무튼 정수리를 보자마자 바로 탈모 병원을 알아봤지만 임신 준비 때문에 나는 탈모약을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우울해졌다. 머리카락이 뭐라고, 기분이 이렇게 휘청거릴까.


이튿날에도 열심히 휑한 정수리를 살펴보다가 그만 욱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 빈 곳을 빨리, 메꿔버리고 싶다. 당장 탈모 병원에 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고 그 충동은 결국 임테기를 찾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지금쯤이면 임신 여부가 나오겠지.

한 줄이면 내일 바로 탈모 병원 가자.'


뭔가 내 안의 우선순위가 바뀌어버린 느낌이었지만

그때는, 참 정상적인 생각을 하기가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