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두 줄

by 복코코



충동적으로 시도한 임테기는 한 줄이었다가 희미하게 앞 선이 뜨며 두 줄이 되었다. 혹시 시약선인가 싶어 다른 회사 임테기로 다시 확인했더니 확실하게 두 줄이 떴다.


아 착상 됐구나. 다섯 번째 보는 두 줄이었다.


'탈모 병원은 그럼 못 가겠네.'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그거였다. 탈모 스트레스가 극한에 달해 있었고, 두 줄이 뜬다고 끝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제는 두 줄을 봤다고 심장이 콩콩 뛰고 설레는- 그런 일은 없었다.


이제 곧 임신반응 피검사를 하게 될 테지. 첫 피검 이틀 뒤 두 번째 피검, 그리고 필요하다면 세네 번째까지. 문득 첫 임신 때 더블링이 잘 안 돼 울고불고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냥 작은 난임병원처럼… 피검사는 패스하고

초음파부터 봐주면 안 되나?'


그러나 대형 난임병원에선 모든 게 규율화 돼 있어서, 혼자 남들 다 하는 검사를 안 하겠다고 떼쓰는 단독 행동은 불가능했다. 예정된 날 1차 피검사를 하고 늦은 오후 결과를 들었다. 내 수치는 154. 1차 피검은 임신여부만 확인하는 거라 사실 큰 의미는 없었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과연 더블링이 잘 될까?


[축하합니다.]


우리 병원에서는 매일 임신이 확인된 환자 명단을 홈페이지에 올려두는데 그날은 내 이름도 올라가 있었다.


‘뭐야?

1차 피검이 만출로 이어지진 않는데,

왜 섣불리 축하할까? 알만한 사람들이 말이야. ‘


슬픈 일을 너무 많이 겪어서였을까.

쓸모없는 심술이 솟았다.



이틀 뒤 2차 피검일.

오늘을 떠올릴 때마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그럴수록 제발, 내가 여기서 뭘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 약이나 제 때 잘 먹고 주사 제 때 잘 맞자!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였다.

오후, 드디어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 제발 제발.'


전화기 너머 받은 수치는 284.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 또 두 배가 안되네. 이거 뭐 데자뷰인가?

첫 임신했을 때를 다시 겪고 있는 것 같았다.

네 차례 피검, 손톱만큼 오르는 수치, 끝내 버리지 못한 기대, 그리고 희망고문.


2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아직 그 자리구나.

그 생각에 마음속 감정의 탑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마침 친정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 얘기를 하다가 엄마가 주사는 잘 맞고 왔냐고 물어 왔다.



"아니, 안 맞았어..."

"왜? 오전마다 맞으러 간다고 했잖아."

"…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 것 좀 그만 물어봐!!!"

사실은 이미 맞고 왔지만, 속상한 마음에 엄마에게 화풀이했다. 엄마도 내 반응으로 알았겠지. 뭔가 또 잘 안 됐구나 하고. 엄마가 뭘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건 당연히 아니지만 평소 손주를 늘 바라왔던 엄마가, 그리고 그 때문만은 아니지만 엄마의 기대에 맞춰보려고 노력해 온 내가, 다 싫어졌다. 나 고생하는 거 봐 왔으면서 엄마는 손주가 아직 아쉬워? 나의 비난의 화살은 애꿎은 엄마에게 향했다. 결국 모든 선택은 내가 한 거면서.



그날 저녁, 남편에게 더 이상은 시험관 못 하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산뜻하게 그러라고 했다. 애초에 남편은 자식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희생보단 우리의 삶에 더 집중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남편 입에선 그만두라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왔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말이, 너무 고마우면서 또 서운했다.


'고마워.

근데 자긴 그렇게 바로 포기가 돼?'

입안에서 맴돌던 말은 끝내 삼켰다.




때로는 도전보다 포기가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시험관이 나에겐 그랬다. 도전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지만 여러 차수동안 망가진 내 몸을 보면 이대로 시험관을 계속하는 게 어렵겠다는 판단이 섰다. 세상엔 노력으로 안 되는 것들이, 슬프게도 있으니까.


그러나 내가 포기할 수 있을까. 나는 지난 3년을 없던 시간처럼 다 잊고 길에서 아기들을 봐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지나갈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답은 명쾌하게 할 수 없었다.



병원은 더블링 수치가 애매하니 3차 피검을 하자고 했다. 역시나. 그래 뭐 포기할 때 포기하더라도 이번 이식의 결과는 봐야 했다. 3차 피검일이 되었고, 채혈 후 초음파실에 들어가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유산될 거라면 차라리… 아기집도 없기를. 수술 좀 그만하고 싶으니까. 그런데 스크린 속에 너무나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다섯 번째로 보는 하얀 동그라미…아기집.


’ 생겼구나…‘


심란한 마음에 초음파 사진을 가방에 쑤셔 넣고 진료실로 향했다. 담당 원장님이 출장 중이라 다른 원장님께 진료를 받았는데, 그분은 내 상황을 잘 모르다보니 그냥 아기집이 생겼다는 말만 전해주고 진료는 끝이났다. 나는 그것보단 오늘 한 피검사 결과가 더 궁금했다. 1-2-3차 수치로 앞으로의 예후를 대충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날 오후 피검 수치를 알려주는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답답해진 나는 병원에 먼저 연락을 했다.



"저기, 3차 피검 결과 연락이 안 와서요. “

"초음파에서 아기집이 보이면 피검 결과는

알려드리지 않는 게 원칙이에요"


"아~~ 그래도 전 너무 알고 싶은데

제발 3차 결과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

"병원 원칙상 알려드릴 수 없어요. “


끝끝내 병원은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다.

이럴 거면 피는 쓸 데없이 왜 뽑은 거야?


병원 지침에 어이가 없어 씩씩댔지만 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차피 시험관 곧 그만할지도 모르는데 결과를 조금 미리 아는 게 뭐 그리 중요할까? 이 또한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자는 생각이 들어 차분해졌다.



그날 저녁. 남편은 야근을 해서 혼자 인근 파스타집을 찾았다. 원래 혼자 외식을 자주 하진 않는데 그날은 왠지 그러고 싶었다. 내가 해 온 지난 3년의 노력이 뭐가 될지는 몰라도, 매 순간 최선을 다 했으니 후회하지 말자, 고생했다 나. 그런 생각을 하며 까르보나라 한 그릇을 , 뚝딱 해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