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에서 배아 이식을 하고 나면, 90%는 환자의 몫이다. 환자가 뭘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후의 결과는 병원보다는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여러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너무나…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담당 선생님의 오랜 출장은 마음을 부산스럽게 했다.
‘일단 혼자서라도 앞 일을 생각해 두자.‘
아기집은 생겼지만, 피검 더블링이 시원치 않았기에 여느 때처럼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지난 3년간 진료 결과가 별로일 때마다 ’ 다음번엔 좋아질 거다!‘하며 희망회로를 돌렸지만, 기적은 단 한 번도 오지 않았으니까.
착상이 아예 안 됐다면 바로 다음 달에 다시 이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내 경우는 아기집까지 생겨버려서, 혹시 유산이 되면 또 수술을 해야 했다. 다섯 번째 소파술이라니… 그땐 정말 더는 못 버틸 것 같았다.
‘여기까지만 해야 할까.
아니면 남은 배아 한 개를 마저 이식할까?
근데 걔는 7일 배양이라 더 불안한데…’
내가 다니는 대형 난임병원은 마치 거대한 공장 같아서, 선생님과 환자가 친밀하게 라포를 쌓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거기다 나는 선생님께 그저 한두 차례 시술을 받은 환자일 뿐이었다. 그래도 내 속마음이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담당 선생님뿐이었기에 선생님이 출장에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듣자 불안이 조금이나마 가라앉았다.
"임신 6주 차 주수에 맞게 잘 크고 있어요.
심장이 반짝거리는 걸 보니 심장이 뛰기 시작했네요.
그치만 아직은 너무 이르니,
심박수를 재거나 하지는 않을 거예요."
이식 후 오랜만에 뵙는 선생님은 좋은 말씀만 해주셨다. 그러나 지난 임신들도 늘 6주까진 순조로웠다가 8-9주쯤 종결되곤 했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길 들어도 크게 안심되진 않았다.
“그럼 2주 뒤에 봅시다.”
진료를 마치려는 선생님을 다급히 붙잡았다.
“선생님, 저 근데 피검이 잘 안 올랐어요.”
“피검요? “
“네, 1-2차 때 2배도 안 올라서.”
“아."
선생님은 내 차트를 훑어보셨다.
“음 근데 3차 때 많이 올라서 괜찮아요~"
“3차요? 3차 기록이 있어요?”
“네 2795네요.”
놀랐다.
임신반응 수치는 이틀에 두 배, 일주일에 10배 오르면
잘 오른 거라고 보는데 내 경우 일주일에 10 배 이상이나올라가 있었다.
‘피검 초반에 더블링이 안 좋으면 보통 예후도 안 좋은데 이렇게 갑자기 확 오르기도 하나?
아니 그보다 그게 내 이야기일 수도 있는 거야?’
어리둥절하면서도 마음이 살짝 놓였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스쳤다.
‘아니, 이렇게 쉽게 알 수 있는 피검 수치를
왜 그땐 끝까지 안 알려준 거야?’
병원 정책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불안하면 다음 주에 또 와도 된다고 하셨다.
어떻게 할까.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내니 답장이 바로 왔다.
“그냥 2주 뒤에 가.
임신에 신경 끄고 살아.
잘 될 건 우리가 뭔 짓을 해도 잘 되고,
안 될 건 뭔 짓을 해도 안돼. “
맞는 말이었다.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그대로 2주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마침 남편이 친구 결혼식 때문에 부산에 갈 일이 생겨서 나도 따라나섰다. 임신 초기인데 여행을 간다니, 전 같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그렇지만 더는 임신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콧바람 좀 쐬어야하지 않겠는가!
부산을 마지막으로 찾은 건 작년 봄, 4번째 소파술을 하고 엄마랑 기분 전환을 위해 갔었다. 날씨 좋던 그날, 엄마가 요트 위에서 소녀처럼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바닷바람, 노을, 불꽃놀이… 내 상실감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줬던 그곳에 다시 가보면 참 좋지 않을까.
그렇지만 이번 부산여행은 여행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잠깐의 머묾이었다. 일단은 임신 초기다 보니 무리하게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도 짬짬이 바다도 보고, 맛집도 들렀다. 남편이 친구 결혼식에 갔을 때는 따라가지 않고 혼자 임산부 배지를 달랑거리면서 부산의 유명한 떡볶이집과 빵집을 찾았다. 입덧이 시작되어서 밥 먹기가 어려웠지만 또 떡볶이는 어떻게 들어가졌다. 신기하지.
서울로 돌아오자 입덧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원래 이즈음 늘 입덧으로 고생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이번 입덧은 하루는 심했다가, 또 하루는 아예 사라졌다가 하면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했다. 늘 8주 무렵 유산을 겪었던 나는 평정심을 찾기 힘들었다. 입덧이 있으면 있는 대로 힘들고, 없으면 없는 대로 ‘아가가 잘못된 건 아니겠지?’하는 생각에 불안했다.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아서 빨리 병원 가는 날이 왔으면 좋겠는데, 또 빨리 가고 싶지 않았다. 어쩌라는 건지. 불안과 기대가 뒤섞인 채, 8주 차 진료일이 다가왔다. 병원으로 가는 길, 긴장 때문에 헛구역질을 수없이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