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8주 차는 내게 단 한 번도 넘어 본 적 없는 큰 산이었다. 8주 차 진료를 가면 아기의 심장이 이미 멈춰 있거나, 심박수가 너무 낮아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한 번은 입덧이 약해졌을 때 유산된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임신만 하면 입덧에 집착했다. 지금 입덧이 있는지, 있다면 얼마나 심한지—그 걸로 뱃속 아기가 무사한지 확인하려 했다. 정확한 방법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런 거에나 매달렸다.
이번에도 임신 8주 차가 다가오자 전 주까지 극심했던 입덧이 약해졌고, 나는 ‘이번에도 틀렸구나’ 하며 지레 마음의 준비를 했다. 병원 가기 싫다. 알고 싶지 않다. 초음파 보기 싫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도살장 끌려가는 소마냥 죽상을 하고 병원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초음파실에 들어가서는 일부러 스크린을 보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질 상황을 조용히 예상했다. 아기 상태가 안 좋아도 초음파사 선생님은 의사가 아니니 아무 말도 하지 않겠지. 대신 사진은 안 뽑아주고 진료실에서 설명을 들으라고 할 거야—유산될 때는 으레 그랬으니까.
“여기, 심장이 잘 뛰고 있네요.”
그 소리에 반사적으로 화면을 올려다봤다. 선생님은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고 심박수를 재 주셨다.
174 bpm.
나는 임신 주수별 심박수 표를 하도 닳도록 봐서 어느 수준이 정상인지 이미 외우고 있었다.
아, 정상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고, 한 번 터진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흐느끼는 수준이 아니라 꺼이꺼이 오열을 했다.
사연 있는 사람처럼.
“제가… 유산을 네 번 했거든요. 늘 8주 차에서요."
그 말에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등을 토닥여 주셨다. 사진을 받아서 초음파실을 나왔지만 상기된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대기석에서 사진을 숨겨 보며 눈물을 훔치다가,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러워 병원 아래 카페로 내려갔다. 그러고는 테이블 위에 사진을 크게 펼쳐놓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정말 내 초음파 사진이 맞나? 실감이 날 때까지 바라보다가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애기가 살아있다. 자기야…”
이어서 엄마가 떠올랐다. 우리 모녀는 한참을 연락하지 않았다. 엄마가 주사는 잘 맞고 다니냐고 물었을 때부터. 내가 그런 것 좀 묻지 말라며 화를 냈을 때부터. 이제 내가 먼저 손을 내밀 때란 생각이 들었고 나는 고심끝에 전화를 걸었다.
“… 이제 전화할 수 있는 거야?”
젖은 목소리로, 우리는 반 울음/반 웃음이 섞인 통화를 했다. 굳이 과거 얘기를 꺼낼 필요는 없었다. 무슨 마음이었는지, 둘 다 잘 알고 있으니까.
엄마는 내가 8주 차의 산을 넘었다는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혹시 내가 또 상처받을까 봐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니 너무 마음을 놓지는 말라고 했다. 알고 있었다. 8주 차도 그래봤자 임신 초기, 이 산 하나 넘었다고 만출이 보장되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그날만큼은 그 하나의 산을 넘긴 사실이 너무 기뻤다. 그동안 ‘내 자궁은 아기들이 살 수 없는 척박한 곳인가 봐’ 하고 스스로를 짓눌렀는데, 사실은 그동안은 아팠던 아기들이 떠나간 거였다고 생각하니 길었던 시간을 조금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지만, 만약 또 유산을 겪더라도 전보다는 괜찮을 것 같았다. 다음 도전을, 한 번은 더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혼자 초음파 사진을 만지작거리며 세 시간 정도를 기다린 끝에 인기 많은 우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8주 차의 산을 넘긴 게 너무 신기했는데, 선생님은 당연하다는 듯 담담했다. 통배에 대한 믿음이 있으셨던 걸까.
“저 8주 차 돼서 입덧이 줄길래,
또 유산된 줄 알고 많이 걱정했어요.”
“입덧이랑 성장은 별로 상관없어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8주 트라우마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는데, 아가에게 영향이 갈까요?”
“스트레스를 좀 받는다고
건강한 아기가 죽고 그러진 않아요. 너무 걱정 마세요.”
FM 같은 답변이었지만 그땐 선생님의 그런 냉정함이 정신 차리기에 딱 좋았다. 선생님은 산전검사를 하고 2주 뒤에 보자고 하셨다. 너무 불안하면 또 미리 와도 된다고 덧붙이면서.
사실 난임 병원에 다니는 대부분의 산모들은 이정도 주수가 되면 졸업을 하고, 분만 병원으로 전원을 한다. 그러나 나는 내 염색체의 미세중복 때문에 임신 17주까지는 난임병원에 계속 다니며 양수검사까지 받기를 선생님께서 권유하셨고, 나 또한 선생님의 케어를 최대한 오래 받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2주 뒤, 10주 차 진료일. 또 잔뜩 긴장하고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아기는 주수대로 잘 자라고 있었다. 처음으로 두 자릿수 주수까지 왔다는 생각에 혼자 감격도 하고, 조금은 긴장된 어깨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임신 극초기가 지났으니 이제 집에 누워만 있지 말고 조금씩 움직여보자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날은 그래서 30분 정도만 동네를 걷다 왔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상당한 양의 하혈이 시작되었다.
“왜… 또! 또! 또!”
고작 그 정도 걸었다고, 도대체 왜?
넋이 반쯤 나간 채로 택시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