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몽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태몽이 있어야 건강한 아기가 태어난다고 믿는것도 같던데. 내 지난 임신을 돌아보면 태몽이 있었던 적도 없었던 적도 결과는 늘 같았어서, ’아 이런 건 그냥 미신이구나~’ 하는 생각이 더 굳어졌다.
그런데 이번 임신 소식을 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묘한 꿈을 꿨다. 내가 침대에 누워 축구공만 한, 커다~랗고 동그란 똥을 낳는 꿈이었다. 생전 처음 꾸어본 꿈이라 깨어난 뒤에도 한참 멍하게 있었다. 똥꿈이라니, 이게 뭐지? 태몽? 아니면 복권이라도 사야 하나? 잠깐 별별 생각을 다 하다가 이내 잊고 지냈다. 나중에 아빠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엄마랑 너가 한동안 냉전이라서
말을 못했는데 말이야. “
아빠가 어느 날 꿈을 꿨는데 꿈속에 아주 뽀얗고 하얀 토끼가 나왔더랬다. 그 모습이 꿈에서 깬 뒤에도 너무나 생생해서 아빠는 엄마에게 한참을 꿈이야기를 했다고. 그때는 내가 임신한지도 몰랐을 때라 이상한 꿈이네~하고 말았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아빠는 그게 태몽인 것 같단다.
“토끼? 어 내년이 토끼띠잖아.”
“그래. 그것도 그때는 몰랐어. 한참 뒤에 알았어.”
아빠는 내년이 무슨 띠인지도 모른 채 토끼 꿈을 꾼 거다. 우연이라기엔 묘해서 태몽을 별로 믿지 않는 나지만 아빠의 꿈은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그제야 미루고 미뤄왔던 다섯 번째 아기의 태명을 지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내 꿈과 아빠의 꿈을 합친, 똥과 토끼를 합쳐서 똥끼! 좀 직관적이지만 뭐, 귀여우니 된 거 아닌가!
난임 병원을 졸업하고 똥끼를 분만할 곳을 정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난임병원 선생님 소견대로 대학병원으로 갈 생각이긴 했는데 서울엔 큰 병원이 워-낙 많다 보니 선택이 쉽지 않았다. 무지한 상태로 정보의 바다를 한참 유영하고나니 아산병원 산부인과에 정말 유명한 교수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거기로 갈지 안갈진 몰라도 일단 예약부터 하자는 생각에 부리나케 전화를 걸었지만, 교수님이 지금 외국에 가셔서 돌아오실 때까진 다른 분께 대진을 받아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처음부터 주욱 같은 분께 진료받고 싶었기 때문에 아쉽지만 그분은 포기하기로 했다.
한편 나는 항인지질항체증후군 임산부라 크녹산과 아스피린 처방을 임신 중에도 꾸준히 받아야 했다. 그런데 이 두 약을 언제까지 쓰는지에 대한 생각은 교수님마다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필요 없다고 빨리 끊게 하는 분도 있고, 분만 직전까지 쓰게 하는 분도 계셨다. 나는 아기에게 지장만 없다면 최대한 늦게까지 처방을 받고 싶었기 때문에, 수소문 끝에 그렇게 처방한다는 삼성병원의 어느 교수님을 찾아가게 되었다.
대학병원 산부인과 진료는 어… 확실히 쉽지 않다. 특별한 사정이 있는게 아니라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일단 1층 로비에서 숨이 턱 막히는 인파를 뚫고 산부인과 외래진료실까지 가는 과정부터가 임산부에겐 버겁다. 채혈이나 주사를 맞는 경우에도 다른 과 환자들과 같이 대기해야 해서 시간도 오래 걸리며, 진료비도 비싸다. 더구나 대학병원 직원들은 로컬병원 직원들만큼 친절하지 않고 사무적인 편이라 보통의 사람들에겐 당황스러울 수 있다. 나처럼 난임병원의 문턱을 넘은 사람들이라면 '오 이 정도면 친절한데?‘하고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12주, 1차 기형아 검사 시기와 맞물려 삼성병원 초진을 봤다. 검사라는 말만 들어도 긴장되는데 ‘기형아 검사’라는 단어는 더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나는 pgt통과배아를 이식했지만 pgt는 염색체 이상을 잡아낼 뿐, 신체적 기형까지 잡아내지는 못한다. 따라서 검사 중에 생각지도 못했던 아기의 신체적 이상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고 상상하니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초음파 의자에 앉은 지 수여분 후, 모든 게 정상이고 주수에 맞게 잘 크고 있다는 전공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불규칙했던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검사 후 만나 뵙게 된 교수님은 두 진료실을 왔다 갔다 하시며 분주하게 수많은 환자를 맞이하고 계셨다. 역시 대학병원은 뭔가 다르구나. 환자수도 적고 우아한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동네 산부인과랑은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교수님은 내 두꺼운 진료 자료를 빠르게 넘기더니 분만까지 크녹산과 아스피린을 쓰자고 하셨다. 그 말이 듣고 싶어 여기까지 온 거라 만족스러웠다.
“2차 기형아 검사는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아 저 양수 검사로 하고 싶어요."
"음.. PGT통과 배아의 경우 양수검사가 권고사항이기는 해요. 교과서적인 의미로는요. 하지만 저는 그다지 추천하지 않아요. 니프티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씀인지 알 것도 같았다. 나도 염색체 미세 중복이 있는 사람인데 태어나서 잘 살고 있으니까. 괜히 몰라도 되는 걸 알게 돼서 출산까지 우울한 기분으로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두려워서 검사를 안 한다고 하면 그 또한 내내 찝찝할 것 같아서 나는 그냥 난임병원에서 처음 권고받은 대로 양수검사를 하기로 결정했다.(미세결실검사까지)
양수검사는 여러 2차 기형아 검사 방법 중 가장 정확한 방법이라, 그전에 덜 정확한 다른 검사는 받을 필요가 없다. 따라서 다음 진료는 4주 뒤인 16주에 와서 양수검사만 하면 된다고 했다. 걱정했던 부분인 크녹산과 아스피린에 대해서는 굳이 검사 전에 미리 끊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난임병원은 검사 전 2주나 끊어야 한다고 그랬는데? 확실히 차이가 크긴 컸다.
집에 와서 병원 서류들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양수 검사를 해주실 분이 우리 교수님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마도 갓 전문의가 된 펠로우 선생님이 해주시는 것 같았다. 하긴 교수님들은 워낙 바쁘시니까 이런 검사까지 직접 하진 않겠지. 머리로는 이해가 갔지만 양수검사는 배를 직접 찌르는 침습적 검사라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나는 풍부한 검사 경험이 있는 분께 받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로, 많은 고민 끝에, 대학병원 예약을 취소하고 기형아검사로 유명한 로컬 병원에 예약을 걸었다. 여기도 약을 2주나 끊으라고 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지만 다행히 이곳은 3일만 끊으면 된다고 했다. 그 정도면 뭐, 버텨볼 만했다.
양수검사를 예약한 로컬병원에 14주쯤 미리 찾아가서 상담도 받고 간 김에 초음파도 보았다. 보통 로컬 병원들처럼 아기 길이 재고 심장 bpm재주시고 하겠지~싶었는데 웬걸. 무슨 일반 초음파를 정밀 초음파처럼 세세하고 꼼꼼하게, 신체부위 개수랑 장기들까지 오랜 시간을 붙잡고 살펴봐주셔서 놀랐다. 대충 5분 정도면 끝날 줄 알았던 초음파 시간이 20분이 넘어가자 나는 문득 궁금한 게 떠올랐다.
“선생님 혹시… 지금 성별 나와요?”
이쯤 되면 성별이 대충 보인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주워 들었다. 이맘때 보이는 건 틀릴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궁금했고 알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