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을 지나며

by 복코코



내가 만약 난임병원을 일찍 졸업했었더라면.

그래서 다니던 분만병원이 있었더라면.

이런 상황에서 갈 곳이 있었을 텐데.


아직 난임병원을 졸업하지 못한 나는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일단 응급실로 가야겠지.

3차 병원은 사람이 너무 많겠지?

중증 환자가 우선이라 나는 한참 기다려야 할 거야.‘



그런 생각에 처음에는 중형 규모 병원의 응급실로 향했다. 전에 여기 응급실이 한산하다고 주워들은 적이 있어서 와 본거였는데 정말 응급실 로비에 아무도 없었다.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에 접수처로 향했다.


“지금 산부인과 의사가 없어요.”

“예?”

“지금 진료 가능한 의사는 인턴밖에 없는데

인턴에게라도 진료를 받으시겠어요? “


“아… 네 그럴게요.”


얼떨결에 대답했지만 이내 생각이 복잡해졌다.

아직 배우는 단계인 인턴의사가 산부인과 초음파를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아무래도 아닐 것 같았다.


“저 그냥 다른 병원으로 갈게요.”



결국 나는 산부인과 의사가 무조건 한 명은 있을 것 같은 3차 대형 병원으로 향했다. 예상은 했지만 초음파를 보기까지 내 생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임산부였고, 이 병원에 진료 기록이 없었기때문에 처음 외래진료를 온 환자처럼 산더미 같은 문진을 거쳐야 했다. 이곳의 규칙이니 따라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하혈이란 응급 상황에서 “초경 시작 나이는 언제인가요?”와 같은 질문에까지 답하려니 갑갑했다.


모든 절차를 겨우 마치고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모든 불이 꺼진 고요한 산부인과 외래 진료 층에서 당직 중이던 두 전공의 선생님이 나를 맞아 주셨다. 한 분은 4년 차, 다른 한 분은 저연차 선생님이었다. 4년 차 선생님이 후배를 지도하며 내 초음파를 보기 시작하셨다.


“이럴 때는 아기 심장부터 봐야 해.“


맞습니다! 저도 심장이 궁금해요! 나도 속으로 대답했다. 눈으로는 베드 커튼 무늬만 구경하며 차마 스크린을 올려다보진 못했지만 말이다. 어쩔 수가 없다. 익숙해진 비극을 다시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몸이 또 얼어붙어 버렸다.



"아기 심장이 잘 뛰고 있네요."


그 말에 스크린을 빼꼼 올려다보았다.

이어서 선생님이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었다.


"쿵-쿵-쿵-쿵-"


진료실의 스피커 음량이 몹시 커서, 우리 아기의 심장 소리가 깜깜해진 병원의 한 층을 다 메우고 있었다.


"주수대로 잘 크고 있어요. 심박수도 정상이구요.

출혈도 처음 흘렸던 거 이후론 없어 보여서

괜찮은 것 같아요."


"아 정말요?"


솔직히 자신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이야길 들은 적이 있어야 말이지. 슬픈 소식을 들을 각오도 어느 정도하고 왔는데 아기가 무사하다니. 긴장이 풀려서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드린 뒤 병원을 나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가만 생각해 보니 고작 삼십 분 걸은 걸로 이렇게 하혈을 했다는 게 이상했다.




‘나는 아스피린과 크녹산을 처방받고 있잖아?

이 두 개는 아무래도 혈전 용해 기능이 있는 약이니까

그 영향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내가 임의로 약을 끊거나 할 수는 없으니 빨리 난임병원 선생님을 찾아뵙고 상담을 드려야 했다. 우리 선생님은 원래 미리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진료받기 가 힘든 분이라서, 내일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서 당일 접수를 노려볼 계획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다음날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접수처에서부터 가로막혔다. 선생님의 예약 환자가 너무 많아서 당일 접수는 어렵단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지. 선생님의 진료실 앞을 승냥이처럼 기웃거리다가 잠깐 밖으로 나온 선생님 전담 간호사분을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어제 응급실에 다녀온 것을 강조강조하면서. 덕분에 정말 운 좋게 추가로 당일 접수를 할 수 있었다.


참 그때도 지금도 하는 생각이지만 난임병원에서 환자들은 정말 큰돈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을이 되는 것 같다. 더 간절한 쪽이 아쉬운 거니까 어쩔 수 없지만.



선생님께 어제 일을 말씀드렸더니 역시나 운동 같은 건 하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도 그럴 생각이긴 했지만 조금 씁쓸했다. 격한 근력 운동하는 산모들도 많은데 나는 걷기조차 안 되는구나 싶어서. 하지만 그동안의 내 상황을 돌이켜 보면 이 또한 배부른 투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 그까짓 거 출산하고 하면 되니까 열심히 누워나 있자고, 마음을 긍정적으로 고쳐 먹었다.




“선생님 저 어제 피를 봐서

아스피린과 크녹산을 끊어야 하나… 걱정돼요."


“지금은 출혈이 없으니 그냥 맞아도 될 거 같아요.

그리고 아스피린이랑 크녹산은

어차피 곧 끊게 될 거예요.”


“곧 끊는다구요? 출산 전까지 맞을 거라 생각했어요.

저 유산도 많이 했고 해서... 끊고 싶지 않아요."

“그 유산들은 다 그냥 약한 배아여서 유산된 거예요.”


하긴. 예전에 대학병원 류마티스 내과에 갔을 때 교수님도 비슷하게 말씀하셨다. 항인지질항체증후군으로 인한 유산이 일어난다면 보통 임신 중기에 일어난다고. 임신 초기에만 여러 번 유산을 겪은 나는 그냥 다른 이유에서 그랬을 거라고.



그래도 마음의 안정을 위해 크녹산과 아스피린은 계속 처방받고 싶었다. 아무리 아파도, 배에 피멍이 들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 놔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17주쯤 양수검사를 여기서 하게 되면

그전에 2주간 아스피린이랑 크녹산은 끊게 될 거예요.

양수검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여기는 종합병원이

아니라서 대처할 시스템이 없거든요."


“2주나 끊어요?"


“만약 그렇게 빨리 끊는 게 신경 쓰이면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일찍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거기서 양수검사도 받고요.

대학병원은 그렇게 오래 안 끊을 거예요."


"아... 네 그럴게요."


원래 계획은 여기서 선생님께 양수검사를 받고, 18주쯤 전원을 하는 거였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아기가 괜찮은지, 그리고 약을 끊어야 할지 확인만 받으러 온 거였는데 어쩌다 보니 졸업까지 하고 있었다. 대학병원 진료 의뢰서랑 각종 서류를 바리바리 싸들고 병원 출구로 향했다. 내가 든 졸업 서류를 본 몇 간호사들이 축하 인사를 건네왔다.


"어머, 졸업하시나 봐. 축하드려요~"

“아 예… 감사합니다. “

이게 무슨 상황이지? 어제는 응급실에서 울고 있었는데, 오늘은 축하를 받으며 졸업을 하고 있다. 현실감이 없었다. 내가 축하받아도 되는 상황인가? 그나저나 오늘이 졸업날인 줄 미리 알았으면 빈 손으로 오진 않았을 텐데. 갑작스러운 상황변화에 선생님께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나온 것 같아 못내 찝찝했다. 나중에 출산하면 다시 정식으로 인사를 드려야겠다고 다짐하며 붐비는 병원을 빠져나왔다.




이제 전원 할 병원을 정해야 했다. 나는 항인지질항체증후군 산모라서 로컬 분만병원은 애초에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3차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서울에는 큰 병원이 워낙 많다 보니 오히려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어디로 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