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 하혈했던 게 처음은 아니었다. 이것 때문에 응급실에 간 적도 바로 얼마 전에 있었고. 하지만 이 정도로 많은 피는 생전 처음 보는 거라서 냉정함을 찾기가 어려웠다. 아니, 내가 뭘 했다고? 하지 말라는 운동도 안 했고, 그저 떡 하나 사 온 것뿐인데! 억울함과는 별개로 줄줄 흐르는 피를 보며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피가 더 흐르지 않게 하려고 거실 바닥에 납작 드러누웠다. 왜 생리를 할 때도 서 있을 때보다 누워 있을 때 피가 덜 나오니까. 의료 지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제발 똥끼야 제발…”
배 속 아기에게 닿을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아기도 아기지만 나를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다 문득, 어제 받은 양수 검사가 떠올랐다. 양수 검사는 아무래도 배를 직접 찌르는 검사다 보니, 그 위험성이 기형아 검사 중 제일 높은 걸로 알고 있었다. 혹시 이 하혈, 어제의 검사 때문일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병원에 연락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가 더 흘러내리지 않도록 엉금엉금 바닥을 기어서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안녕하세요. 어제 양수 검사받은 환자인데요.
지금 하혈을 많이 하고 있어서요.
혹시 이게 어제 검사랑 관련이 있을 수 있나요?
그리고 지금 병원으로 가도 될까요? “
“어머 정말요?? 그런데 지금은 여기로 오셔도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일단은 응급실이 있는 종합병원으로
가셔야 할 것 같아요.”
맞네. 분만도 하지 않는 개인 병원에서 이 상황을 어떻게 감당하겠나. 한시가 아깝고 급한데 뭐 하러 여기부터 전화했지 하는 생각과 함께 바로 119를 눌렀다. 지난번에 응급실에 갔을 땐 혼자 택시는 탈 수 있을 정도였지만, 이번엔 조금만 움직여도 피가 후두둑 쏟아질 게 뻔해서 도저히 혼자 갈 수 없었다.
119에 상황을 설명하자 15분 안에 도착한다고 했다. 그 사이 일하는 남편과, 근처에 사는 엄마에게도 연락을 해뒀다. 다행히 엄마는 곧장 달려와서, 구급차가 출발하기 직전에 나와 함께 탈 수 있었다.
“어느 병원으로 가시겠어요? “
“아 저 삼성병원이요. 거기 다녀요. “
사실 12주에 딱 한 번 진료받고, 16주 양수검사는 다른 병원에서 했으면서 ‘다닌다’고 말하려니 좀 민망하긴 했다. 그래도 앞으로 계속 다닐 병원이니, 완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기만 무사하다면,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근데 아기가 무사할까…‘
솔직히 기대감은 반쯤 내려놨다. 내 바람과는 별개로, 그 정도로 피를 쏟고도 똥끼가 무사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것 같았다.
그래도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진 아무것도 단정 짓지 말자!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최대한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 내 모습이 엄마에겐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보였는지 엄마는 구급대원을 자꾸 재촉했다.
“어떡해 어떡해.. 더 빨리 갈 순 없어요? “
집에서 병원은 가까운 거리였지만 강남은 늘 막히는 곳이라 이동 시간이 제법 걸리고 있었다.
'엄마 그러지 마, 나 슬퍼서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그런 말 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어.'
속으론 그렇게 엄마를 만류했지만 실제론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냥 말 한마디조차 입 밖으로 내뱉기가 힘에 부쳤다. 그때는…
원래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임산부는 바로 진료를 받기 어렵다. 지난번에 다른 종합병원에 갔을 때 나도 정말 오-랜 절차를 거치고 나서야 겨우 진료를 받았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다행히 삼성병원에 내 진료기록이 있어서인지 일사천리로 분만장으로 이송될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분만장에 도착한 나를 전공의들이 에워싸고 분주하게 내 모습을 살폈다. 밑을 살피기도 하고 초음파를 보기도 하고. 그렇게 열심히 내 상황을 봐주시는데 어째선지 누구 하나 아기가 어떻다 하는 말은 해주질 않더라.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다. 왜들 그러세요. 말 좀 해주세요.
시간이 지나 고연차 전공의 한 분이 총대를 메고 내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아기는 아직 살아 있지만, 태반이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태반 조기 박리. 심각한 응급 상황이었다. 태반이 떨어지면 아기는 엄마에게 영양과 산소를 공급받지 못해서 바로 위험해진다. 내가 만약 지금 만삭이었다면 수술로 바로 아기를 꺼내겠지만, 아직 겨우 5개월 차인 우리 똥끼는 배에서 꺼내봤자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선택을 하셔야 할 것 같은데…”
전공의는 내가 어떤 결단을 내리기를 바라는 것 같았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목적어가 빠져있었지만 뜻은 충분히 짐작이 갔다. 보내주라는 거겠지. 사실 내게 뭐 선택권이 있겠어. 복잡한 마음으로 알겠다고 대답하려는 찰나, 전공의는 교수님을 모셔오겠다고 하고 사라졌다.
곧이어 분만장 안으로 들어온 교수님은 초음파 사진을 훑으며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태반이 반쯤 떨어지긴 했는데,
남은 태반이 잘 붙어있어 주면 희망은 있을 것 같아요.
에휴 24주만 지났어도 아기를 꺼낼 텐데~
지금은 뭐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교수님 저 어제 양수 검사했는데
그게 혹시 원인일까요?"
"양수 검사는 상관없어요. “
“그렇군요…”
“일단은 고위험 산모실에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보죠."
“교수님, 떨어진 태반이 다시 붙을 수는 없나요?”
“떨어진 건 다시 붙진 않아요.”
‘아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남은 태반이라도 잘 붙어 있게 기도하는 것뿐이겠구나.’
얼른 고위험산모실로 이동하고 싶었지만, 병실 자리가 아직 없다고 해서 몇 시간 동안은 계속 분만장에 머물러야 했다. 내 옆 자리엔 내일 출산을 앞둔 사람들이 밝은 목소리로 간호사와 내일 일정을 브리핑하고 있었다.
아… 너무 비참해.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지만, 애써 삼키려 했다.
저 사람들은 곧 아기를 만날 기대감으로 가득할 텐데,
내가 그 분위기를 깨면 안 되잖아.
그렇지만 그게 왜 그리 어려운지.
순간순간 삼켜지지 않는 눈물이 끄윽끄윽 새어 나왔다.
결국 다른 환자들도 다 눈치챘겠지.
저기 저 사람은 무슨 사연이 있나 보다 하고.
그렇게 우는 와중에도
우습게도 또 화장실은 가고 싶더라.
간호사는 걸으면 하혈이 심해질 수 있으니
침대 위에서 간이 변기를 쓰자고 했다.
생소한 간이 변기에 앉아 힘을 주려는 순간 소변은커녕
커다란 핏덩어리가 왈칵 쏟아졌다.
“으아악 선생님 저, 소변 안 볼래요. 안 봐도 돼요!”
엉엉 울면서 간호사에게 변기를 돌려줬다.
사실 그런다고 이미 내 안에 고인 핏덩이들이 없어지는 건 아닐 텐데.
도저히 그 피를 아무렇지 않게 마주할 수 없었다.
소변 좀 참고 더부룩한 게 백배는 낫다고 생각했다.
몇 시간을 더 기다린 끝에 고위험산모실로 옮겨졌다.
병실은 6인실이었고, TV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환자 침대 옆엔 사물함과 태아 감시장치가 있었다.
너무 늦은 시간에 병실에 들어가서인지
다른 산모들은 잠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도 조용히 불을 끄고 천장을 바라봤다.
‘오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머릿속이 멍했다.
원인도, 이유도 알 수 없는 일이 갑자기 벌어졌다.
그냥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기약 없는 내 고위험산모실 입원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