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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의 버드나무 Feb 05. 2022

영국 탐험 5탄

부제: 스페인에서의 나의 특별 휴가 중

영국 탐험 마지막 날 아침에 그동안 마음의 여유가 없어 눈여겨보지 못했던 민박집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지상 전철을 타고 가면서 내내 마주쳤던 전형적인 빨간 벽돌로 지어진 이층 집이었다. 일층은 주방과 거실이고 이층은 침실이다. 잔디가 심어진 아담한 정원이 거실 통유리창 너머로 보인다. 땅콩을 밖에 놓아두면 다람쥐가 가끔씩 와서 먹는다고 했다. 


민박집은 런던 중심가에서 전철로 1 시간 반 정도 걸리는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근교의 인천이나 수원 같은 곳에 있었다. 

런던도 메트로폴리탄 즉 거대도시이다. 런던 중심가에서부터 민박집까지 쭉 건물로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건물 사이사이로 녹지를 균형 있게 조성하고 생태계를 보전해서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다람쥐가 놀러 온다는 사실이 부럽고 놀라웠다.


박세리의 영향을 받아 민박집 아들도 골프를 배우고 있었다. 

1960 년 말에서 70 년대 초까지 많은 태권도 사범들이 스페인으로 이민을 왔다. 그렇게 스페인으로 이민 온 1세대 한국인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골프를 시킨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보다 비용을 적게 들여 골프를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골프로 성공하게 되면 막대한 부를 거머쥘 수 있었으니 부모들이 자녀를 통해 꿈꾸어 볼 만한 일이기도 했다. 그와 비슷한 추세를 영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가정에서 발견하는 기분이 야릇했다. 한국인들의 유난한 골프 사랑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 민박집은 우리 가족 같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면서도 한국에서 영국으로 유학 온 청소년 두 명의 홈스테이를 하고 있었다. 또한 그 청소년들의 영국 보호자 즉 가디언 역할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민박집 안주인이 유학생 청소년들이 공부도 안 하고 게임만 하고 놀기만 한다고 흉을 살짝 보았다. 

자신들이 홈스테이로 먹고살긴 하지만 보호자 없이 애들만 유학을 보내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자칫 아이들의 버릇이 나빠지고 인생을 망칠 수도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공감되는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되었다.


나와 아이들에게 멋진 휴가를 준 남편의 감동적이고 호쾌한 후원 덕분에 늘 꿈꾸던 영국에서 살아보기란 나의 로망을 이루었다.  4박 5일의 여행 중 감사하게도 날씨가  모두 화창하였다. 나와 아이들이 여행했던 시기는 초여름이라 그런지 늘 흐리고 안개가 자욱하다고 들었던 영국의 날씨가 아니었다.  


IMF의 여파로 결국 남편의 회사가 워크아웃되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남편은 명퇴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경유지로 런던을 거쳐가게 되었다. 스페인 빌바오에서 한국으로 오는 직항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또 다른 영국 탐험을 했던 2000년 2월의 영국 날씨는 늘 들었던 그대로의 우중충한 날씨였다. 오후 3시에도 하늘은 어두웠고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었다.


스산한 날씨와 함께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을 간직한 채 우리 가족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감상했다. 한국으로 귀향하는 경유지인 런던에서 1박을 하며  세계 4대 뮤지컬의 하나를  보기로 한 것이었다.  미래가 불확실한 가운데 뮤지컬 티켓 가격이 결코 싸다 할 수 없었음에도 우리 부부는 과감하게  그런 결정을 내렸다. 앞으로 우리 인생에서 뮤지컬의 본고장인 런던에서 뮤지컬을 감상할 기회는 다시 오기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직을 당했다고 우울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주어진 그 순간의 기회를 즐겁게 즐기자는 생각에서였다.


레미제라블은 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영화에 삽입되어 음반으로 제작된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를 다시 들을 때면 그때 가슴 벅찬 감격이 생각이 나기도 한다.  권력에 짓밟히고 비참하게 살았던 보통 사람들이 힘을  합쳐 권력에 항거하여 일어서며 자유를 향한  희망을 비장하게 외쳤던 노래. 영어 가사를 잘 몰랐어도 멜로디만으로도  불끈 주먹이 쥐어지고 마음이 뜨거워지게 하는 무언가  솟아오르게 하는 힘이 있는 노래였다.   프랑스혁명 당시의 프랑스의 민초들이 그 모든 시대의 고통을  겪어야 했듯 우리나라도  IMF 정국으로 인한 고통을 우리 같은 서민들이 온전히 감내해야 했다. 


회사가 법정 관리하에 들어가면서 한때는 동료였던 사람들이 서로 살겠다고 뒤통수를 치는 아비규환과 같은 어두운 시간을 보냈다. 뮤지컬을 보면서 그동안 겪었던 마음의 상처가 치유된 듯한 느낌이었다. 어둡고 흐린 구름 아래 태양은 숨겨져 있다. 거센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나면 밝고 따듯한 햇살이 비취어 오듯 삶의 굴곡 또한 그러했다.  흐린 날이 있으면 화창한 날이 기다리고 있음을 우리 부부는  믿을 수 있었다.  


뮤지컬을 본 후 우리 가족은  햄버거가 아닌 영국식 전통 요리라 할 수 있는  " 피시 앤 칩스(Fish & chips)"를 저녁으로 먹었다.  나와 아이들이 영국 탐험을  잘할 수  있도록 숙소를 예약해 주고 셰익스피어 생가를 같이 돌아보았던  남편의  영국 주재원 동료가 우리 딸과 동갑인 딸을 데리고  우리 가족을 만나러 왔다. 바쁜 와중에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우리 가족을  배웅하겠다고 시간을 내주신 따듯한 마음이 고마웠다. 그 가족 덕분에  나와 아이들의 영국 탐험은 즐거운 추억으로 오래 남았다.  서로 뒤통수를 치는 아비규환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미를 잃지 않고  따듯한 마음을 나누어 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굴곡진 인생이지만  서로 기대며 더불어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당시 11 살, 7 살이었던 아이들은 영국 여행이나 그 후에 갔던 해외여행에 대해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견문을 넓힌다는 의미에서 효율적인 여행이 되려면 적어도 중학생 이상은 되어야 하나보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들은 그래도 기억나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딸아이는 기억나는 게 전혀 없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경험하는 여행의 효과는 생각보다 효율적이지 않다. 나 또한 남편 없이 홀로서기 여행을 하는 동안 아이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신경 쓰며 긴장하고 있어서 느긋하게 문물을 감상하는 진정한 의미의 여행다운 여유를 누리진 못했다. 여기저기 바쁘게 발을 찍고 돌아다니기만 한 것 같다.


그러나 그때 그 순간 나와 아이들은 이국적인 풍경을 마주하면서 색다른 정취를 느끼며 우물 안 개구리에서 탈피하여 세계화가 되어가는 과정에 서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지금은 이름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곳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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