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해 세계는 지구촌 이른바 하나의 마을이 되었다.
20 년 전 전 세계적으로 교육열이 드높았던 우리나라의 대다수의 가정에는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또한 자녀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고자 하는 열풍이 불어 컴퓨터 학원이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20 년 전 1998 년에서 2000 년까지 우리 가족이 살았던 스페인은 당시 우리나라보다 1 인당 국민 소득이 높은 나라였다.
그러나 그 나라의 가정용 컴퓨터의 보급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스페인 사람들의 생각은 모든 사람이 다 컴퓨터를 사용할 필요는 없으며 필요한 사람이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또한 공공스포츠 시설과 더불어 도시 곳곳에 위치한 공공도서관에 가면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가정에 컴퓨터를 가질 필요가 없었다.
반면 재래시장을 비롯한 모든 상가에는 컴퓨터가 보급되어 전자화가 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매출이 투명하게 기록되고 매출 근거가 되는 영수증이 철저히 발행되고 있었다.
20년이 지난 오늘날 스페인의 가구 인터넷 접속률과 스마트폰 보유율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그러나 여전히 스페인의 가정용 컴퓨터 보급률은 낮은 편이다. 이로 인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정상적인 학교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 스페인 교육 당국은 어려움을 겪었다. 즉 가구별 컴퓨터 보급률이 낮아 원활한 재택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가구당 컴퓨터 보급률이 낮은 이유는 가정에 컴퓨터가 꼭 필요하지 않다는 스페인 사람들의 실용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실용정신은 가정용 가전제품 구입 품목에도 영향을 미쳤다.
스페인에서 우리 가족이 세 들어 살았던 집은 가구 및 가전제품이 비치된 집이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많이 보급되긴 했지만 20 년 전 당시에는 보기 힘들었던 드럼세탁기가 빌트인으로 구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식기세척기도 있었다. 그에 반해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에어컨은 우리나라에서 작은 원룸에도 필수품이었는데 말이다.
국민 소득에 비해 스페인의 에어컨 보급률이 낮은 이유는 고온 건조한 기후 때문이었다. 태양의 나라인 스페인은 여름에 화창한 날이 많아 일조량이 높으며 건조하다. 또한 겨울에 비가 자주 내리는 지중해성 기후이다. 여름에 집중호우성 장맛비가 자주 내려 고온다습한 우리나라와 다르다. 따라서 섭씨 35 도에서 40 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라도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다.
스페인 아파트를 비롯한 주택 창문에는 우리나라 상점에 설치된 셔터와 같은 쟈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 쟈바라는 밤에 거리의 빛을 완전히 차단하는 암막 커튼의 역할을 한다. 더운 여름 한낮 이 쟈바라를 내리면 햇빛이 차단되어 집안을 동굴처럼 만들어 시원해지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스페인 사람들은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인위적으로 차가운 바람을 일으키는 에어컨을 굳이 집안에 설치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또한 여름휴가가 1달이나 되는 나라이다. 더위를 피해 시원한 휴양지로 떠나는 그들의 실용주의로 판단하건대 에어컨은 필수품이 아니다.
학교 수업을 마친 스페인 학생들은 여가 시간에 신체활동을 주로 하였다. 비용이 저렴하거나 무료로 각종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는 좋은 인프라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실용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낮은 컴퓨터 보급률 또한 스페인 청소년들을 극심한 게임 중독까지 몰아가진 않았다.
IT 강국답게 우리나라의 게임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학습용으로 구입된 가정용 컴퓨터를 통해 우리나라의 많은 청소년들이 쉽게 e스포츠라 불리는 게임산업의 소비자가 되었다.
좋은 성능을 갖춘 컴퓨터가 구비된 PC방이 상가 곳곳에 자리 잡은 우리나라는 게임하기에 좋은 인프라를 갖고 있다. 더 나아가 게임 중독에 빠지기도 쉬운 환경이라 말한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양날의 칼처럼 게임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게임중독으로 인한 폐해도 만만치 않다. 게임산업으로 인해 창출되는 이익보다 게임중독을 치료하는데 더 많은 비용이 들고 있다는 각종 보고서가 난무한다. 병 주고 약 주기식의 아이러니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