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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의 버드나무 Feb 22. 2022

뿌리 뽑혔던 나무 :해외살이의 득과 실

외환위기를 맞아 IMF의 관리하에 있던 당시 우리나라는 스페인어 언어권의 나라와 교역이 활발하지 않았던 때이다. 그리고 스페인어보다는 영어가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외국어였다. 


우리 가족과 같이 스페인에 살았던 다른 주재원들은 자비를 들여서 자녀들을 국제 학교에 보냈다. 중요한 외국어인 영어교육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20년 후에 스페인어의 희소성과 더불어 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스페인어 문법을 익히면 영어도 빨리 습득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왜냐하면 영어와 스페인어는 같은 라틴어 계열의 언어로 유사한 문법구조와 어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일상생활의 어휘는 달라도 전문분야의 어휘는 발음만 따를 뿐 영어와 철자도 같았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영어에 주력하는 트렌드를 거스르는 무모한 도전의 길을 택한 것이다. 즉 영어에 올인하느라 비싼 학비를 내고 국제 학교를 선택하기보다 학비를 절약한 돈으로 유럽 여행을 하며 견문을 넓히기로 했다.


강물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길을 택한 결과 다행히도 20 년 후 성인이 된 우리 아이들은 영어뿐 아니라 스페인어 및 그와 유사한 포르투갈어 능력자가 되었다. 


그러나 외국어 능력자가 되긴 했으나 해외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후 아이들은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왜냐하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어 어휘의 대부분은 한자어로 이루어졌다. 그 한자어의 어휘와 관용어구를 이해하지 못해 일어나는 웃지 못할 각종 해프닝이 있었다. 


스페인에서의 2년간의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뒤 큰 애는 초등학교 6 학년으로 복학했다. 학교에 갔다 온 첫날 아이가 다음날 국수를 사 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의 말이 담임선생님께서 칠판에 준비물 "국수사자"라고 쓰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수를 사 가야 한다고 한 것이었다. 큰 아이는 국어 수학 사회 자연을 줄여서 "국수사자"라 부르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운동회를 앞두고 있던 어느 날 큰 아이가 집에 와서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했다. "엄마 내일 학교에서 총연습을 한 대. 학교에서 왜 총을 갖고 연습하지? 이상해 " 아이는 총연습을 총을 갖고 총 쏘는 연습을 하는 거라 이해했던 것이다. 아재 개그에 활용할 만한 한자어가 많은 우리말의 특성으로 인한 해프닝이다.


아이들은 일상생활 언어를 구사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한자어나 줄임말과 같은 관용어구에 대한 지식의 부족으로 전반적으로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때로 의사소통 시 오해가 생겼다.

또한 한국의 교육내용이 너무 어렵기도 했다.  한국의 교육과정은 모든 과목마다 학자를 만들어 내겠다는 목표를 설정해 놓은 것 같았다.


아이들은 스페인어란 낯선 환경에 겨우 적응했나 싶었는데 다시 한국어에 적응해야 했던 것이다. 스페인 아이들과 겨우 소통할만할 때 또다시 생소한 한국 아이들의 수직적인 선후배 문화에 부딪혔다. 


그 후 우리 가족은 인도네시아에서 3년 반을 그리고 태국에서 1년을 살게 되었다.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행운(?)을 얻은 것이다. 

한편 또다시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할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나무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 성질이 다른 흙 속에 다시 심어진 것이다.


무의식 저변에서 꿈틀대는 스트레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외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큰 애는 대학 다닐 때 외국 생활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시기하는 선배에게 이유 없이 뺨을 맞기도 했다. 군대에서도 선임들의 이유 없는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와 중학교 2학년 2 학기 과정에 복학한 작은 애 역시 순탄치 못한 학교생활을 했다. 한자어와 관용어구뿐 아니라 입시 위주의 어렵고 타이트한 교육과정 때문이었다. 학생들의 학업능력을 수치화시킨 한국에서의 첫 성적표를 받아 들고 나도 막막했지만 아이도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영어를 빼고 모든 과목이 중하위권에 있었다.  그 후 다행히 한국의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했다.


대부분의 해외 주재원 가족의 자녀들이 한국에 돌아온 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외국으로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해외 살이가 마냥 부러움의 대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얻은 것과 더불어 잃는 것도 있었다. 

다행히 여러 토양을 옮겨가며 심어졌던 나무는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나름 자신의 뿌리를 내리며  잘 자라 가고 있었다.


 * 풍상 : '바람과 서리' 란 뜻의 한자어로 모질게 겪은 세상의 고생이나 고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도 복이다. 출처 :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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