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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의 버드나무 Apr 11. 2022

부모의 마음


돌싱이란 돌아온 싱글의 줄임말이다.   

언젠가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한국어와 영어가 뒤섞여 만들어진 해괴한  신조어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는 세태를  예리하게  풍자한  재치 넘치는 말이기도 하다. 


돌아온 싱글이나 이혼한 부부를  소재로 한 티브이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요즘 세태를 보며 격세 지감을 느낀다.   

사실  몇십 년을 다른 생활환경  속에서  살아온 두 남녀가  가정을 꾸리고 살다 보면 많은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다.  

결혼 생활 중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지옥 같은 고통 가운데  사느니   그럴 바에는  헤어질  수도 있다는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IMF로 인해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급증하기 시작해 OECD 국가 중 최고로 높다고 한다.   

그러나 혼전 동거 커플이 많은 서구의  유럽 국가들에 비해  혼전 동거 커플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우리나라의 상황으로 볼 때 이혼율 통계는  무의미한  허구일 수도 있다.  

다만  결혼에 대한 보수적이며 전통적인 가치관이 많이 퇴색되어가는 과정에서 이혼율 또한 급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 년 전 내가 살았던 스페인의 이혼율은 우리보다 높아 보이진 않았다.  

당시  우리나라와 달리  혼전 동거 커플  비중이 높으며 헤어진 동거 커플은 이혼율  집계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한  대부분의 스페인의 법적 제도는 사회적인 약자를 보호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혼과 관련된 법규도 남편보다 아내에게 유리하다.   

이른바 이혼을 하면  스페인 남편들은 쪽박을 차게 된다는 것이 사회적인 통념이었다.   

이런 통념이 이혼율을 줄이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서구식 개인주의 교육을 받은  우리나라의 20~30대 청년세대들은  보수적이며 전통적인   한국의 결혼관보다 서구식의 결혼관을 갖고 있다.  

그 어떤 세대보다 공부도 많이 했고 똑똑해도 그들의 역량을 펼칠 일자리가 부족해서 취업에 대한 불안이 늘 잠재되어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취업에 대한 불안과 더불어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은  내 집 마련에 대한 좌절감을 청년세대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이러한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이유와 더불어 자기 계발과 자아실현을 중시하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그들 젊은 세대들에게 있어 결혼관은 부정적일 수 있다. 

즉 결혼이  가족 부양이라는 책임감과 의무가  요구되는  부담과 구속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런저런 이 유로 인해   청년들은  취업과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한  이른바 삼포세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옛말에 짚신도 짝이 있다고 하더니  삼포세대에 해당되는  아이 둘이 모두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으니 부모로서 이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이른바 결혼 적령기라 할 수 있는 나이에  자기 짝을 찾아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요즘은  결혼 적령기라고 딱히  못 박아 말 하기가  애매하며 그렇게  규정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풍토이다.)    

어쨌든  작은 애는  평소 비혼 주의를 자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큰  애는  중. 고교를 외국에서 나왔기 때문에   한국인 교우관계나 인맥이  넓지 않았고  직장에서도  여성 직원이 적어  여자 친구를 만날 확률이 그다지 높은 상황이 아니었다.  


사실 인륜지 대사라 할 수 있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혼을  결심을 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득과 실을 따져  꼭 계산기를 두드리지는 않더라도 결혼을 결심하기에 앞서 현실적인 여러 요건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보다   결혼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걸고 심사숙고 한 끝에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와 책임을 바탕으로 결혼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두 사람이  각자 자신의 개성을 양보하면서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합의점을   찾아  한 곳을 바라보며  서로 돕는 배필이 되어가는  과정은  쉽지 않다.  

오죽하면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같이 사는 것이 결혼 생활이라 했을까?


우스갯소리로 눈에 콩깍지가 씌어 결정했다 할지라도 마음을 열고  소통을 하고 결혼을 결심할  대상을   찾았다는 것 자체가  축복받을 일이다.  

부디 그 초심의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말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백년해로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이런 바람은 40여 년 전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이 가졌을  마음이었을 것이며   나와 남편의  기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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