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실현 병이 도지면....

직장인의 불치병

 꾸준히 뭔가 하는 사람을 보면 대단하다. 나는 늘 뒷심이 약하다. 학생 때도 항상 중간보다 기말 성적이 떨어졌다. 1학기보단 2학기가 떨어졌고. 공부든 운동이든 처음엔 과하게 하다가 금방 의욕이 식고 만다. 브런치도 그중 하나다. 꾸준히 글을 쓰는 건 참으로 어렵다.

 나는 어려서부터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쭉 장래희망이 같은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 같은데 나는 한결같이 작가, 소설가, 시인 따위를 적어 냈었다. 그렇지만 그런 게 되려면 뭘 어떻게 시작해야 되는지 몰랐다. 관련 과로 진학하여 졸업장을 따긴 했지만 작가 비스무리한 것도 되지 못했고 현실 운운하며 빠르게 취업을 해서 그냥저냥 독서를 좋아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뒷심은 없지만 오히려 뭘 시도하려는 의욕이 없어서일까 직장은 계속 다니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듯 퇴사욕(인간의 3대 욕구로 쳐야 한다)의 파도는 주기적으로 나를 덮쳐오는데, 이직할 곳이 마땅치 않아 버티고 있다. 그러다 정말 퇴사욕의 파도에 휩쓸려 미칠 것 같은 때면 직장 외에 나의 자아를 실현할 구석을 찾게 된다. 회사가 내 삶의 전부가 아니며 내게는 회사 밖의 삶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 상기시키고 싶은 심리 아닐까. 브런치도 그렇게 손댄 것들 중 하나였다. 직장을 다니며 영 기회가 없었지만 나는 원래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누가 내 글을 읽고 피드백을 해줄 때면 말할 수 없이 뿌듯했다. 그래, 이 참에 소설가 같은 건 못 되더라도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써보는 거다. 글을 쓰면 그게 작가지 뭔가.

 하지만 개뿔, 퇴사에의 파도가 또 한 텀 지나고 나면 모든 게 시들해진다. 헬스도 그랬고, 영어공부도 그랬고, 홈트도 그랬고, 런닝도 그랬고, 결국 브런치도 꾸준히 하지는 못했다. 다시 이렇다 할 것 없는 출퇴근의 반복이다. 집, 회사, 집, 회사... 가끔 술이나 친구와의 약속으로 만드는 작은 일탈까지 포함하는 일상의 쳇바퀴를 굴린다. 아, 조금 자괴감이 드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지금 일상이 적당히 행복해서인 것도 같다. 매일 불평불만 하긴 하지만 실은 미지근하니 적당히 안온한 것도 사실이라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대체로 간절하지는 않다. 문득 한 번씩 자아실현 병이 도지면 또 바지런히 뭔가 새로운 걸 찾아볼 따름이다. 이런 나를 '한심하지만 괜찮아'하며 보듬어주어야 할지, 개과천선을 목표로 독기 품고 노력해야 할지 노선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오늘은 급성 퇴사욕이 또 나를 덮쳐왔으므로 자아실현을 위해 브런치를 열어본다. 집 근처 원데이클래스도 검색한다. 정말이지 자아를 실현하고 싶다, 회사가 아닌 곳에서. 나의 자아란 걸 언젠가 실현할 수는 있을까. 나의 자아란 대체 뭘까.....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것인가.... 정답이 있나.... 주변을 보면 나만 이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마도 직장인의 불치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