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요즘 무엇이 당신 가슴을 뛰게 하나요?'라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진상 고객'이라고 답해야지 싶다.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도 그냥 좀 쎄한데, 싶기만 하면 심혈관계가 먼저 반응한다. 그렇게나 길들여져 있다.
일하면서 알게 된 바, 진상이라고 다 같은 진상이 아니다. 거기엔 생각보다 다양하고 방대한 세계가 존재한다. 막무가내로 욕하고 소리를 지르는 1차원적 진상이 있는가 하면 확고한 본인만의 논리를 펼치는 고차원적 진상이 있다. 또, 애초에 오늘 진상을 부려야겠다고 작정을 하고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범한 고객이었다가 본인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돌변하는 경우도 있다. 다양한 부류의 진상 고객을 겪다 보면 차라리 1차원적 진상이 제일 낫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1차원적 진상은 노상방뇨를 하기도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다 걸리기도 하고 막무가내로 뭘 해달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당할 때는 정말이지 난처하지만 나의 존엄성까지 훼손되지는 않는다(재미있는 안줏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고차원적 진상은 다르다.
언제 한 번은 퇴근 시간 10분 정도 지나서까지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10분이 짧다면 짧은 시간일 수 있겠지만 그날은 명절 연휴 전날이었고 야간 근무였다. 모두 퇴근하고 어두운 가운데 내 자리만 불을 켠 채로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상대방은 처음에는 논리 정연하게 불만을 제기하다가 모든 논리가 가로막히자 내 태도를 걸고넘어지는 참이었다. 익숙한 패턴이었다. 이런 식의 싸움에 능숙한 고객이 있다. 전문가랄까. 그네들은 처음에는 그건 이래서 저래서 말이 안 된다고 따지다가 막히면 제일 먼저 '다른 데서는 됐다' 카드를 꺼내 들고, 그래도 안 먹히면 '왜 이건 되고 이건 안 되는지'에 대한 지리멸렬한 논리싸움을 벌인다. 그러다 끝끝내 말이 막히면 뭐든지 뚫는 창을 꺼내드는 것이다. 그건 바로, '나는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네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다.
이 만능의 창은 악성 고객이 고객응대근로자를 상대로 언제 어떤 상황에서 꺼내들 든 백전백승을 거둘 수 있는 무적이다. 설령 이 실랑이의 시작이 고객 본인의 과실임이 명백히 밝혀진 다음에도 이 창을 꺼내면 고객응대근로자는 무조건 사과하는 수밖에 없다. 내 태도가 마음에 안 드셨다는데 달리 어쩔 것인가. 나는 결국 명절 연휴 전날밤 퇴근 시간을 10분 넘겨서 그 치가 떨리는 고객에게 처음의 논지에서 한참 벗어나 내 태도에 대한 사과를 거듭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하고 어쩌고...... 그리고 상대방은 사과 도중에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과연 전문가였다. 순간 이성이 끊겨 나도 모르게 재다이얼 버튼을 누르려다가 직전에 멈췄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부들부들 떨며 버튼에 손가락을 댄 채로 수십 번 고민했다. 지금 다시 전화해서 지금 어디냐고, 나오라고 할까. 나 여기 때려치울 테니 인간 대 인간으로 얘기해 보자고. 나도 당신과 똑같은 사람인데 본인 실수로 일이 꼬이게 되었다고 해서 지금 생면부지인 나한테 이렇게까지 화풀이를 해도 된다고 생각하냐고.
몇 분이나 고민하다가 결국 말았다. 시시한 결말이다. 하지만 피가 거꾸로 솟던 그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모멸감이라 해야 할지, 분노라고 해야 할지, 수치심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명절이라 본가로 퇴근하려 했었지만 도저히 가족을 볼 수 없어서 자취방으로 향했다.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왠지 가족을 만나고 싶지 않다. 왜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면 어쨌건 당신들이 성심껏 키워낸 당신 자식이 밖에서 어떤 일을 겪으며 일하는지 말하게 될까봐,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다칠까봐서인 것 같다. 친구나 연인에게도 그렇다. 평소에는 주변에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진상 고객 썰을 자주 풀다가도 가끔 '진짜'를 만나고 나면 한동안 그 사건에 대해 말할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날밤 일도 그렇다. 몇 년이 지난 일인데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런 전문가들과 싸워 이기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들은 '다른 곳에서는 됐다', '다른 직원은 해줬다', '왜 이건 되고 이건 안 되냐', '나는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네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 외에도 많은 카드를 가지고 있는데, 이직한 곳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지금 말씀하시는 분 이름과 직함이 어떻게 되시죠?'다.
내가 일하는 곳은 진상 중에서도 '고차원적 진상'에 속하는 사람 비율이 유독 높다(진상 자체의 비율이 높은 것은 아니다. 진상의 비율은 어딜 가든 다 비슷한 것 같다). 그들은 자신과 가족이 누구인지 늘 설명하는 사람들이다(제가 교사로 20년 근속했던 사람인데요/제가 전에 연구원으로 일했는데요/남편이 의사라 지금 수술 들어갔는데요/저희 애가 하나뿐인 외아들이라 귀하게 키우는데요/ㅇㅇ아파트 이사 온 사람인데요). 그리고 일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지금 말하는 분 이름하고 직함이 어떻게 되시죠? 하는 것이다. 그건 네 윗선에 너의 행동에 대해 항의하겠다는 말이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드물고 대부분은 단순히 당장 그 자리에서 앞에 있는 직원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하는 멘트이다. 말하자면 '네게는 얼마든지 너를 휘두를 권력이 있다' 내지는 '네 위치를 자각해라'라는 뉘앙스인데, 그들에게는 아주 손쉽고도 점잖게 우위를 차지하는 방법인 것이다. 물론 정말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면 현명한 컴플레인 방법일 수 있겠지만 본인이 원하는 대로만 일이 처리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고압적으로 내 이름과 직함을 묻는 말이 돌아오면 맥이 빠진다.
내 직장이 있는 곳은 최근에는 교권 이슈로 논란이 된 여러 지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 관련 뉴스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았을 텐데 나는 그걸 넘어 한동안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갑질'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이는 종류의 사건이 결코 남일이 아니며 서비스업 종사자로서 언제든 내가 그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사람이 서비스 직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느 정도까지 함부로 대할 수 있는지. 그걸 경험하고 나니 직장 내 괴롭힘이나 악성 민원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의 마음이 더는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힘들면 차라리 그만두지 왜 그런 선택을 할까 생각했던 적이 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건 단순히 직장을 때려치우면 그만인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영혼을 상처 입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퇴사를 한다고 해서 그 모든 폭언과 상처가 없던 것이 될 수는 없다.
이 글을 쓰는 며칠간에도 많은 고객을 응대했다. 바로 어제 오후에는 볼펜 도둑이 왔다. 하얀 편의점 비닐봉지 안에 다른 곳에서 훔친 볼펜들이 한가득이었다. 나는 피해가 없었지만 동료 직원은 볼펜 한 자루와 15cm 자를 하나 도둑맞았다. 처음에는 동료가 아니라 내게 펜을 빌려달라 했었는데, 검은 볼펜을 빌려줬더니 쓰지도 않고 바로 돌려주었다. 알고 보니 오직 삼색볼펜만을 모으는 것 같더라는 제보가 들어왔다. 봉투 안에 든 것이 모두 삼색 볼펜이더라고. 그리고 자도 하나 빌려달라길래 30cm만 있어서 건넸었는데 받지 않고는 다른 직원에게 가서 15cm를 받아 그대로 가버렸다. 30cm는 아무래도 비닐봉지에 들어가지 않았던 걸까.
지난달에는 시설 화단에 고구마를 버리다 걸린 아저씨가 고구마는 자연에서 온 것이니 화단에 버려도 상관없다는 '고구마 청정론'을 펼쳤고, 지지난달에는 아직 오픈 시간이 아니니 기다려달라는 동료의 말에 '이 새끼가' 소리가 돌아왔다. 세상에는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있는지 겪어도 겪어도 끝이 없다. 겪을수록 무뎌질 줄 알았는데 웬걸, 겪을수록 날카롭게 깎여가고 있는 것 같다. 점점 예민하고 작은 것에 스트레스를 쉽게 받게 된다. 아무래도 나는 정말 정말 서비스업이 맞지 않는 것 같은데.... 그래도 정말 가끔 느끼는 보람과 자부심, 그리고 매달 입금되는 소소한 월급을 보며 일단은 매일을 이어나가고 있다. 언젠가 이직해서 이 바닥 뜬다, 라고 동료들과 지껄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