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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근네모 Oct 05. 2023

'서비스직'이라는 것... -상-

제목만 써도 가슴이 웅장해진다.

 '서비스직'이라는 단어만 봐도 손발이 저리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과연 내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이 주제에 대해 쓸 수 있을까. 자신은 없지만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길 수 없어서 쓴다. 글로라도 내뱉지 않으면 최소 사리, 최대 담석 같은 게 될 것 같으므로.


 내가 시작부터 학을 떼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에서 서비스직으로 일한다는 것은 결코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이 일에 종사하면서 나는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신체건강과 정신건강, 사람 간의 기본적인 믿음과 신뢰, 거기에서 비롯되는 타인에 대한 친절함, 나의 본래 성격, 머리숱 등등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나만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내가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수없이 했다. 정답을 찾진 못했지만 사실 '서비스업이 적성에 잘 맞는 사람'이라는 것은 도시괴담처럼 말만 있을 뿐 실체가 없다. '나는 서비스업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가 봐.....' 하는 눈물 섞인 말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한때는 내가 그 도시괴담의 주인공인 줄 알던 시절도 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시절까지 나는 많은 알바를 했다. 타이핑, 물류, 설거지 같은 종류도 했지만 대부분은 매장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서비스 업무를 맡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진상 손님'에 그렇게 괴로워하지 않았다. 당시엔 그게 나의 담대한 성격 덕분이라고 믿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단지 내가 '알바생' 신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폭언이나 모욕을 들어도 나는 앞치마 벗고 퇴근하면 땡인, 내 본업이 아니라 이른바 '부캐' 상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큰 타격이 없었던 것이다.


 반면 본업이 되자 얘기는 달라졌다. 더는 진상 손님의 폭언과 모욕을 흘려보낼 정신적 방패가 없었다. "일 똑바로 안 하세요? 이러면서 월급 받아먹어요?"라는 말을 더는 ("나는 알바생인데 어쩌라고.")로 방어할 수가 없어지니 남은 것은 두들겨 맞는 일뿐이다. ("저는 똑바로 안내했는데 그쪽이 제대로 안 들었잖아요...")라는 혼잣말 따위로는 그다지 나를 보호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 사람이 불합리하고 내가 결백하다 해도 결국 사과해야 하는 쪽은 나라는 사실만 뼈아프게 다가올 뿐이다.


 그런 일이 잦아지자 벨벨벨벨- 하는 유선 전화 벨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내려앉게 되었다. 나중에는 나는 언제든지 누구든지 와서 두들겨 패고 갈 수 있는 샌드백 같은 존재이며, 어디로도 도망치지 못하고 이 자리에 누구든 때리기 좋게 앉아있어야 하는 입장이라는 자조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손님은 언제 어느 틈에 찾아올지 모르고, 나는 그걸 결코 피할 수가 없다.... 그게 얼마나 깊은 무력감을 주는지. 물론 산업안전보건법에 의거한 안내멘트처럼 폭언, 욕설 시에는 통화를 종료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쌍욕이라도 나오기 전까지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다. 실제로 동료가 면전에 대고 쌍욕을 들었을 때도 별다른 대응을 못하기도 했다.


 서비스직이란 대체 무엇일까. 서비스직이란 몇 차 산업혁명에 무형의 것에 가치를 부과하고 어쩌고 하는 사전적 정의를 인용해올 수도 있겠지만 그런 정의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한국에서 (외국은 안 겪어봐서 모른다) 일부 사람들에게 서비스직이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해당 기업 또는 사업장의 욕받이 무녀 비슷한 것이며, '서비스'라는 불분명한 상품이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본인 마음에 들 때까지 컴플레인을 걸어도 되는 존재에 불과하다.


 사실 나는 사기업에 재직 중이지 않고 직무 또한 일반적으로 서비스직 하면 연상되는 일은 아니다. "그게 서비스직이라고요?" 내지는 "그런 곳에도 진상이 있어요?"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그럼에도 고객 응대 업무에서 파생되는 수없는 사건 사고를 겪는다. 나와 동료들은 "내가 누군 줄 알아?" 하는 진상 고객을 한바탕 진하게 겪고 나면 '여기가 백화점도 아니고....' 내지는 '돈도 안 쓰면서, 지가 백화점 VIP인 줄 알아'라는 한탄을 하기도 한다. 당연히 백화점 VVIP의 할아버지여도 직원에 대한 갑질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진상 고객에 대한 분풀이를 하고 싶어 우리끼리 욕을 하다 보면 그런 식으로 말하게 되는 것이다. 돈 쓰는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나 진상을 부린다고. 그리고 그런 말 뒤에는 '돈을 많이 쓰면 서비스직을 하대해도 된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깔려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하루에도 수십 번 고초를 겪는 나와 내 동료들부터도 이렇다니.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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