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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근네모 Sep 23. 2023

야생동물 다큐멘터리에서 배우는 것

 나는 야생동물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사자나 늑대, 곰이나 하이에나, 코끼리, 범고래, 상어 등 종류는 가리지 않는다. 세상엔 수많은 동물이 있고 저마다의 생존 전략을 가지고 있다. 어떤 동물은 무리를 지어 살고 어떤 동물은 평생 혼자 살아간다. 어떤 동물은 공동 육아를 하고 어떤 동물은 단독 육아를 한다. 어떤 동물은 자기 영역에서만 살아가고 어떤 동물은 철 따라 이동을 하며 살아간다. 그런 걸 보며 생각한다. 인간의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


 당연하지만 인간도 동물의 일종이다. 이족보행을 하고 도구를 사용하면서부터 어떤 변화가 시작되었고, 거대한 빌딩숲속을 걷거나 스마트폰 따위의 전자기기를 익숙하게 사용하다 보면 가끔 인간이 생태계 법칙을 초월한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건방진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자의식이 좀 과할 뿐 인간은 여전히 동물의 한 종으로서 생태계에 속해있다. 먹이활동을 하고, 무리 생활을 하고,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서로 가르치고 배우고, 영역 다툼을 하고, 임신과 출산을 하고, 공동 육아 내지는 단독 육아를 하고, 늙고 병들고 죽어간다.... 속한 문화권에 따라 다양한 생활 양식을 갖지만 기본 골조는 변하지 않는다.


 가끔 삶이 버거울 때면 다큐멘터리 나레이터의 시점으로 나를 설명해본다. 나는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관찰하기로 택한 개체다. '둥근네모'는 먹이활동을 시작합니다. 유독 게으른 개체로 아침에 일어나기 버거워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무리 사회 속에서 맡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인간 사회는 역할 분업이 매우 세분화 되어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개체는 직접 사냥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무리 속에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해 대가를 지급받고, 이를 먹이와 교환하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합니다. '둥근 네모'가 맡은 일은 높은 대가를 지급받진 못하지만 다른 역할이 그렇듯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를 견디느냐 못 견디냐가 '둥근 네모'의 생존을 좌우합니다. '둥근 네모'는 오늘도 굴욕을 삼키고 먹이 얻기를 택합니다.... 이런 나레이션은 정말 살기 팍팍할 때, 나 역시 하나의 동물로서 목숨 걸고 먹이 활동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자신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살다 보면 '어쩜 사람이 저럴 수가 있나....' 싶은 순간도 있다. 인간이 끔찍하고 싫을 때, 그럼에도 어떻게든 그런 현실을 받아들여 소화시키고 인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기능해야 할 때도 다큐멘터리 과몰입이 도움이 된다. 다시 나레이터의 시점으로 들어간다. 묻지 마 폭행 같은 끔찍한 범죄 뉴스를 본다. 인간 무리는 덩치가 크기 때문에 매우 다양한 개체가 존재합니다. 그중에는 여러 이유로 무리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되는 개체들도 있습니다. 그 중 어떤 개체는 자신이 낙오된 데에 대한 분노를 자신보다 약한 개체에게 풀고자 합니다. 인간 사회는 이러한 현상을 제재하기 위한 장치를 가지고 있어 어느 정도 자정 작용을 하지만, 완벽할 순 없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싶던 일들도 다큐멘터리 나레이션으로 풀어보면 다 있을 법한 일 같다. 아주 불합리한 일들조차도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하면 울컥 치솟은 분노가 조금은 가라앉는다. 마찬가지로 어떤 집단에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을 때, 내가 실수를 해서 일이 꼬였을 때, 나의 게으르고 나쁜 습관들을 좀처럼 극복해낼 수 없을 때 역시 동물 관찰 다큐멘터리처럼 나를 바라본다. 이런 인간도 있고, 저런 인간도 있고, 어느 지역의 인간 무리에선 오늘 이런 일이 벌어졌으며, 으레 있는 자연의 섭리라고.... 내가 세상을 합리화하는 방식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같은 동물도 인간의 관점에 따라 매우 다르게 해석되는 점도 흥미롭다. 어떤 다큐에서 늑대는 가장 힘이 센 수컷이 우두머리가 되어 무리에서 군림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다른 다큐에서 늑대는 부부 한 쌍이 우두머리가 되어 평생을 함께하며, 가장 강한 개체가 아닌 가장 지혜롭고 리더십 있는 개체가 우두머리가 된다고 설명한다. 다큐 역시 다른 영상과 마찬가지로 편집이 절반 이상이기 때문에 인간의 시점대로 변모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또 어떻게 보면 야생동물 다큐멘터리의 매력이다. 인간에 대해서도 알 수 있으니 일석이조랄까.


 일례로, 다큐에 자주 쓰이는 이런 식의 표현도 인간의 시점을 반영한다. '늑대는 평생 한 마리의 암컷과 짝을 이루어 산다'와 같은 문구다. '늑대'란 것은 그럼 수컷인가? 늑대 다큐에서 수컷 늑대는 '늑대', 암컷 늑대는 '암컷'이라고 칭하는 것은 어쩐지 뉴스에서 남성을 김철수(20), 여성을 김영희(20, 여)로 지칭하는 것과 비슷해보인다. 다분히 남성중심적인,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나오는 표현이겠다. 이쯤되면 야생동물 다큐는 오히려 반쯤은 인간 다큐멘터리에 가깝고 나는 그 점이 재미있다.


 사바나 초원에서 사자와 임팔라와 하이에나와 아무튼 많은 동물들이 서로 먹고 먹힐 때, 옆에서 나의 네 살 먹은 반려견이 하찮게 드러누워 있는 대비도 야생동물 다큐의 재미다. 그래, 너나 나나 야생에서 태어났으면 진즉 죽었겠다. 문명에 감사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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