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했던 사랑의 이면
몇 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살아생전 엄청난 남아선호사상가(?)셨다. 옛날 분이니 어쩔 수 없다 할 수도 있겠지만 더 연세가 많으셨던 친할머니를 떠올려보면 꼭 다 그런 건 아니지 싶다. 여하튼 외할머니는 평생 먹는 것부터 입는 것까지 아들과 딸을 차별해 키웠고 사위가 올 땐 극진한 손님으로, 며느리가 올 땐 종년보다 못하게 대했다. 그건 당신에게는 당연한 세상의 순리 같은 것이라 그게 차별이라 생각하지도 않으셨다. 그럼에도 외할머니가 예외를 둔 것이 단 하나 있다면 바로 외손녀인 나였는데 거기엔 사정이 좀 있었다.
외할머니는 슬하에 자식을 딱 둘 두었다. 첫째는 아들 둘째는 딸로 나에겐 외삼촌과 엄마가 되겠다. 자식을 많이 낳는 게 흔하던 시절에 왜 자녀계획이 둘에서 그쳤는지에 대해선 들은 바가 없다. 외할아버지가 병으로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는데 그것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들만 귀히 여기는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며 엄마가 얼마나 설움이 많았을지는 짐작할 법하다. 당시 결혼은 엄마에게 집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을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아빠를 만나 결혼했고 얼마 안 있어 바로 나를 가졌다. 이듬해 내가 태어났을 때 외할머니가 외손녀를 마뜩잖아한 것은 놀랍지 않은 일이었다. 당신에게 딸은 아들 열 명 몫을 해도 못마땅한 존재였고 딸이 낳은 딸이란 더욱 그랬을 테니까. 엄마가 갓난 나를 데리고 친정에 발걸음 했을 때조차 할머니는 첫 손주를 예뻐하기는커녕 눈길도 주지 않았다고 했다.
사정은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조금씩 달라졌다. 갓난쟁이였던 내가 자라고 자라 어린이집에 가고 유치원에 가고 이윽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도 외삼촌이 미혼이었던 것이다. 몸이 약했던 엄마도 나를 낳은 뒤에 자녀계획을 접었으므로 결국 나는 할머니의 유일무이한 손주로 상당히 오랜 시간을 있게 되었다.
시간은 정을 만드는 법. 그쯤 되자 할머니도 나를 점차 예뻐하게 되었다. 미우나 고우나 하나뿐인 손주이니 별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기억을 할 나이쯤부터 할머니는 항상 나를 반겨주는 존재였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는 탓에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아무 때고 전화를 걸어도 세상에서 제일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주었다. 여름방학에 혼자 할머니네 가서 몇 밤 씩 자고 올 때면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목욕탕에도 가고 옆집에도 갔다. 공부를 잘한다고 다른 할머니들한테 자랑했고 밤에는 옛날이야기를 해주었다. 화투를 뒤집어서 그림을 맞추는 놀이, 할머니의 발음으로는 '두집기'라고 부르는 놀이를 자주 했는데, 그걸 해달라고 조르면 "두집기는 뭘 또 두집기!"하다가도 금세 또 서랍장에서 주섬주섬 화투를 꺼내와서 해주었다. 구두쇠라 하면 동네에서 제일 가던 할머니가 내게는 늘 전기장판 밑에 꼬깃꼬깃 넣어둔 지폐를 꺼내 용돈을 주었다.
하지만 어려서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른 남자 형제가 태어나거나 외삼촌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나는 바로 찬밥 신세가 될 거라고. 실제로 무신경한 어른들이 내가 있는 앞에서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너는 니 오삼춘 결혼 하면 아무것도 아니여 이것아"라고.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외삼촌은 내가 중학생이 될 쯤에야 결혼했다가 고부갈등을 원인으로 자녀 없이 이혼했다. 결국 기간제였던 '하나뿐인 손주' 타이틀을 내 손에 영원히 거머쥐게 된 것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외할머니가 좋았다. 아기 때 나를 본 체 만 체 했다고 해도 나는 기억에도 없는 일이니까. 물론 원체 불 같은 성미에 나에게도 역정을 낼 때가 많았지만 이상하게 나는 할머니가 별로 무섭지 않았다. 부모자식 사이와 조부모와 손주 사이는 비슷한 듯 달라서 엄마가 했으면 상처가 되었을 것들이 할머니가 하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별 것도 아닌 일에 할머니가 지붕이 날아갈 듯한 불호령을 내리면 나는 그냥 할머니 옆에 붙어서 아아앙~ 하고 애교를 떨었다. 그러면 할머니는 백이면 백 웃었다.
엄마는 내가 외할머니를 따르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싫어하기도 했다. 엄마는 그 두 가지 감정을 어찌하지 못하고 가끔 어린 내게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얼마나 못 되게 굴었는지 말해주곤 했다. 도시락도 삼촌만 싸주고 엄마는 싸주지 않아서 굶었던 일. 공부를 잘했어도 딸이라고 대학에 보내주지 않았던 일. 술버릇 나쁜 아빠와 심하게 싸우고 밤중에 아기였던 나를 안고 친정에 갔던 날 할머니가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일, 아빠와 별거하게 됐을 때도 집에 올 생각하지 말라고 해서 방을 얻어 따로 살았던 일 등.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게 살갑던 할머니와 엄마에게 모질게 굴던 할머니가 도무지 동일인물처럼 느껴지지 않아 영 이상했다.
사실 지금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사랑했던, 나를 사랑했던 외할머니가 엄마의 인생에 지우지 못할 그림자를 남겼으며 그것이 자주 나에게까지 대를 이어 영향을 미치는 것을 느낄 때면 모든 게 이상한 연극 같다. '두집기' 놀이를 해주던 할머니, 전기장판 밑에 있던 뜨끈뜨끈한 지폐를 쥐어주던 할머니, 빨리 자라고 성화를 하다가도 결국 어둠 속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옛날이야기를 꺼내놓던 할머니는 두 자식의 인생, 나아가 며느리로 들어왔던 남의 집 귀한 자식에까지 지우지 못할 불행을 깊이 심어놓고 갔다. 집안의 모든 불행의 시작점에 사랑하는 외할머니가 활짝 웃는 얼굴로 기억되고 있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미워해야 할 것 같다가도, 나를 어쩔 수 없이 사랑했던 거지만 어쨌거나 많이 사랑해주었던 외할머니가 내게서라도 사랑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