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나 보고 아이를 낳으라고 할까
- 난 절대 결혼은 안 할 거야. 아기도 안 낳을 거야.
어릴 적 엄마에게 그렇게 선언한 적이 있었다. 딴에는 혼날 각오로 한 말이었는데 엄마는 무심하게 너 알아서 해라, 하고 말았다. 엄마는 내가 왜 결혼을 안 하고 싶은지 알았을까? 알았다면 일부러 모르는 척한 것일까. 몰랐다면 왜 묻지 않았을까.
유치원 수업시간 때 장래희망이 '엄마'라고 발표한 친구들이 몇 있었는데 그게 몹시 의아하게 들렸던 기억이 난다. 쟤는 왜 엄마가 되고 싶을까? 나는 커서도 절대 결혼하지 말아야지. 절대 엄마도 되지 말아야지. 자아가 다 형성되기 전부터 그런 다짐을 했고 그런 다짐과 함께 자아를 만들어 갔다. 장래희망으로 엄마를 꿈꿨던 친구들이 아마도 자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그런 미래를 그리게 되었을 것처럼 나도 자연스럽게 반대의 다짐을 하며 성장했다.
그 다짐을 굳이 엄마에게 말한 데에는 조금쯤 원망하는 마음도 깔려 있었던 것 같다. 당신의 자식으로 사는 삶이 행복하지 않으며 자식이 나처럼 불행할 바엔 애초에 낳지도 않는 게 낫겠다는 의미였다. 엄마가 조금쯤 상처받길 바라며, 동시에 엄마가 정말 상처받을까 두려워하며 어린 마음에 뱉은 말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시간이 흘러 내가 지금 남편을 만나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결혼은 안 하겠다던 내 말을 처음부터 믿지도 않았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정말 그렇게 되었으니 할 말이 없긴 하다. 다만 내가 엄마에게 결혼을 안 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에게 바랐던 것은 실제로 결혼을 하는지 안 하는지 여부보다도 내가 왜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해였다.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욕구가 나라고 없었을까. 다만 보고 자란 경험이 있어서인지 스스로 자꾸만 그 욕구에 제동을 걸었을 뿐이다. 나는 단란한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사는 내 모습이 쉽사리 그려지지 않았다. 결혼을 상상하면 행복한 모습보다는 불행할 수 있는 수십 가지 방향으로만 생각이 흘러갔다. 행복한 가정을 꿈꿀 수 있는 능력이 고장 나버린 것처럼 내 머릿속에서 결혼이나 가족이라는 키워드는 불행한 이미지랑만 줄줄이 연결되어 있었다. 물론 내가 이렇게 된 것이 꼭 엄마의 잘못은 아니겠지만, 엄마도 그러길 바란 적은 없을 테지만 누구라도 탓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다행히 '이 사람이라면 다를 것 같다' 싶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지금도 문득 남편과 잘 안 풀릴 때면 우리의 결혼생활도 부모님과 비슷하게 흘러가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고개를 든다. 부모님이야말로 내가 평생 가까이서 봐온 유일한 부부의 모습이니 별 수 없다. 롤모델로 삼을 만한 부부의 다른 모습이 내겐 없다.
결혼 날짜를 받아둔지 얼마 지나서부터 엄마는 손주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애는 안 낳을 수도 있다고 여러 번 말했으나 못 들은 사람처럼 굴었다. 결혼했으면 애는 낳아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자식이라고는 나 하나 있으니 엄마가 손주를 보고 싶은 마음도 이해는 한다. 다만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질문이 내 안을 맴돌 뿐이다. 엄마, 엄마는 나를 낳아서 행복해?
철없는 질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엄마를 보다 보면 품지 않을 수 없는 의문이다. 엄마는 '네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는 말을 내가 대학생일 때부터 했다. 얼핏 딸이 엄마에게 할 법한 말인데 우리 집은 반대였다. 엄마는 늘 나를 원망하는 말을 많이 했다. 외할머니와의 갈등도, 아빠와의 갈등도, 직장에서의 갈등도 결국은 내가 그런 힘듦을 돌보아주지 않는다는 원망으로 귀결되었다. 그 마음에 공감해 주기는 어렵지만 나를 향한 원망의 크기만큼은 짐작할 수 있었다. 무난한 듯이 지내다가도 한 번씩 엄마는 그 감정을 나에게 쏟아내곤 했다.
나는 그런 엄마의 감정에 적잖이 휘둘린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다가도,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걷다가도 엄마의 악에 받친 말들이 온통 나를 사로잡고 있음을 깨닫는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이면 깊은 절망감이 든다. 내 삶이 온통 엄마에게 지배되어 있는 것 같고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평생 원망했지만 당신도 결국 그런 엄마가 되었다. 그래서 엄마가 나에게 자식을 낳으라고 할 때면 따지고 싶은 말들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내가 엄마 되기 두려워하는 것은 엄마 때문이 아주 크다고. 나도 엄마처럼 될까 봐 두려워서 자식을 낳기 두렵다고. 하지만 엄마에게 굳이 상처주길 원치는 않기 때문에 삼킬 뿐이다.
최근 결혼한 친구가 임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카가 너무 귀여워서 빨리 애를 갖고 싶어졌다고 했다. 그런 마음이 신기하고 궁금했다. 유치원 때 엄마가 꿈이라던 친구를 볼 때와 똑같은 기분이 든다. 자연스럽게 행복한 미래를 그리는 것이 신기하다. 결혼을 하면 우리 부모님 같은 부부가 될까 봐 걱정했던 것처럼 나는 애를 낳으면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될까 봐 두렵다. 결혼생활과 마찬가지로 엄마 되기도 주어진 롤모델은 하나뿐이니까. 나는 내가 외할머니와 엄마의 대를 이어 똑같은 일을 반복할까 봐 두렵고 아이를 낳으면 행복할 것보다 불행할 일들이 먼저 떠오른다. 나의 상상력은 나쁜 쪽으로만 발달해 있다.
내게 이런 상상력을 키워준 엄마가 내게 꼭 애를 낳아야 한다고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아빠와의 결혼생활이 그렇게 행복했던 것도 아니면서, 내가 못된 딸이라고 부르짖으면서 결혼과 출산이 필수라고 말하는 것은 그냥 그래야 한다고 배운 관성일까. 아니면 나에게 말하지 않은 기쁨이 있었던 것일까. 후자라면 정말 알고 싶다. 나를 낳아 행복했던 순간들에 대해 한 번도 들은 바가 없다. 그런 순간이 있었다면, 그래서 나 보고 애를 낳으라고 말하는 거라면 나도 다른 상상을 해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물을 용기가 없어 속으로만 궁금해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