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우울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나는 우울한 사람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인정해야겠다. 지난 인생을 가만히 돌아보면 우울감 없이 행복하기만 했던 기간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내가 우울했던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에는 매일 같았던 부모님의 다툼이 가장 큰 이유였고, 학창 시절에는 초등학교 때 한 학년 동안 당했던 따돌림이 이유였다. 성인이 되어서 지금까지는 줄곧 엄마와의 갈등이 가장 큰 이유였다. 내 인생에는 우울할 일이 늘 있었고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울할 일이 있어서 우울한 것은.
문제는 내가 가끔은 우울할 일 없이도 우울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관성처럼, 습관처럼. 눈을 떴을 뿐인데 우울하거나 길을 걷고 있을 뿐인데 우울할 때가 있다. 아마도 우울한 감정이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뇌에서 때때로 기분 모드가 잘못 켜지는 것 같다. 느닷없이 우울할 거리를 찾아서 혼자 우울한 생각에 빠지는 나 자신을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자의로 제어할 수 없는 흐름이다. 나를 가장 걱정해 주고 사랑해 주는 남편조차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실은 나조차도 내 급변하는 기분을 이해하기 어렵다.
요즘 내가 두려운 것은 이게 내 인생이 될까 봐서다. 우울한 매일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우울한 인생이 되는 게 아닌가. 우울한 일이 없어도 우울하다면 나는 어떻게 해도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닐까. 어쩌면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밤마다 이유 없이 울거나 종잡을 수 없이 화가 나서는 악다구니를 퍼붓던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모습이 내 모습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든다. 그래서 가족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엄마에게서 흘러온 우울이 또다시 나와 내 가족을 망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들은 내가 나를 싫어하게 만든다.
물론 그렇게 놔두어서는 안 되므로 노력을 한다.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고, 돈을 들여 상담을 하고 명상을 배운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을 달래어 출근을 하고 일상을 이어나가며 우울한 기분을 잊으려고 한다. 기분전환을 하겠다고 불쑥 안 하던 짓을 하기도 한다. 남편에게 짜증을 내고 나를 어떻게 좀 해보라고 매달리기도 한다.
어떤 날은 내 우울을 침착하게 따라가 본다. 내 우울은 많은 지분 엄마에게서 왔고, 엄마의 우울은 대부분 외할머니로 인해 만들어졌다. 엄마의 삶은 엄마의 잘못이 아니고 엄마도 다루어지지 않는 인생을 붙들고 이제껏 살고자 달려왔음을 이해하려 한다. 엄마는 감정이 많은 사람이지만 고민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엄마는 당신이 달리는 방향을 잘 모른다. 내게 상처를 주었지만 그것이 엄마가 의도한 바는 아니다. 내가 엄마에게 받은 상처를 엄마는 전혀 모른다는 것이 내 우울 속 또 하나의 예민한 트리거임을 깨닫는다. 엄마가 내 상처를 알아주기란 어려우므로 나는 내 우울을 스스로 반추해야 한다. 되짚어보고 말로 하고 글로 써보며 달랜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이 내게 상처 준 것을 깨달았으면 하는 부질없는 바람을 다른 누가 알아줄 수 없다면 내가 알아주고 돌보아 언젠가는 버리는 것이 나의 숙제다.
나는 엄마와 다르게 가고 싶다. 내가 달리는 방향을 알고자 한다. 주변에 상처를 주고 나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우울에 떠밀려 가지 않을 것이다. 엄마에게서 흘러온 우울이 내게 고였다가,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눈을 떼지 않으려 한다. 남편에게 너무 짜증 내지 않고, 너무 자기 파괴적인 방법으로 화를 풀지 않으면서, 너무 자격지심 갖지 않고, 나 자신을 너무 싫어하지 않으려 하며, 어떻게든 매일의 우울을 잘 다스리려 안간힘 쓰고 있다. 얌전한 반려 우울 정도가 될 때까지 작게 다듬어 나가려고 한다. 어떤 날은 잘 되는 것 같고 어떤 날은 나는 역시 안 된다는 패배감이 든다. 남편은 내가 할 수 있다고 한다.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오늘 무너져도 내일은 또 잘해보려 한다. 별안간 기분이 좋은 날에는 머쓱함을 버리고 또 실컷 놀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