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집 임밍아웃 이벤트 대실패
1:2:7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세상에 10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중 7명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2명은 내가 뭘 하든 나를 싫어하며, 1명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나를 싫어할 사람은 싫어하고 좋아할 사람은 좋아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너무 노력할 필요는 없다는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이다. 매우 공감이 가는 말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 내가 뭘 하든 나를 싫어하는 2명의 사람 중 한 명은 다름 아닌 내 엄마다.
우리 엄마는 내가 뭘 해도 나쁘게 생각한다. 엄마는 내가 쌀쌀 맞고, 매정하고, 차가운 사람이라고 믿는다. 실제의 나는 정도 많고 남 눈치도 많이 보는 INFP 인간이지만 어쩐지 엄마에게만큼은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내가 엄마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행동들은 엄마의 안에서 왜곡되고 폄하되고 때로는 아예 지워진다. 인간관계 조언에 따르면 그런 엄마의 마음에 들기 위해 너무 노력할 필요는 없는 셈인데 잘 되지는 않는다.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니까.
2주 전쯤, 내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과 본격적으로 아이를 갖자고 마음먹은 지 3개월 만이었다. 바랐던 일이긴 했지만 막상 임테기에 뜬 두 줄을 보니 얼떨떨하고 실감이 안 났다.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컸던 사람이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럼에도 극복하고 가져보자 한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축복이 빨리 찾아왔다. 당황했지만 감사할 일이었다. 마음이 조금 진정되고 나니 제일 먼저 친정 부모님께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누가 뭐래도 내 엄마, 내 아빠니까 기뻐하리라 믿었다.
그렇게 '임밍아웃'을 위해 지난주쯤 약속을 잡았다. 퇴근하고 바로 갈 테니 함께 저녁을 먹자 했다. 선물상자에 임테기를 넣어 퇴근하자마자 친정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아빠에게 카톡이 왔다. 분위기가 안 좋으니까 그냥 오지 말라는 소식이었다. 날벼락같은 소리였다. 남편도 이미 친정집으로 출발한 차였기 때문에 급히 전화를 해서 대체 무슨 일이냐고 따졌다. 아빠는 제대로 대답을 주지 않았다. 답답함에 재차 캐묻자 결국 벌컥 성질을 냈다.
"그렇게 알고 싶어? 그럼 알려줄게. 니네 엄마 너 싫어하잖아. 너네 온다고 내가 장 봐와서 음식 좀 하려니까 니네 엄마가 꼴보기 싫은 것 오는데 뭘 그렇게 돈을 들이냐고 했어. 그래서 내가 당신은 매번 왜 그러냐. 계모도 아니고 왜 그러냐 하면서 싸웠어. 들으니까 속이 후련하니? 알면서 뭘 물어. 너, 니네 엄마 앞에서 눈 하나도 조심히 뜨라고 그랬지? 말 한마디 한 마디 조심하라고. 니네 엄만 너 트집 못 잡아서 안달이야."
엄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나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최근에는 제법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뒤에선 그렇지만은 않았나 보다. 임신 소식을 알리러 가는 길에 들은 '네 엄마는 너 싫어해'라는 말이 새삼 왜 그렇게 가슴을 찌르는지. 아빠 말처럼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아빠한테 그 자리에서 전화로 임신 소식을 알렸다. 아빠는 생각지 못한 얘기에 당황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아빠 기분을 헤아리기에 내 기분이 너무 참담했다. 나름 이벤트를 하겠다고 선물 상자 바닥에 임테기를 붙여서 들고 있는 내 모양새가 우스웠다. 나는 왜 엄마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지 못할까. 엄마가 뭐길래. 부모가 뭐길래. 내가 이제 그 부모가 되어야 하는데 또 한 번 자신이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다시 친정집에 가서 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임신을 알렸지만 엄마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을 테니 손주 소식이고 뭐고 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늘 자신의 기분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니까. 밥을 먹는데 조금 울컥해서 눈물이 났다. 하지만 금방 추슬렀다. 전에는 이런 일이 있으면 몇 달씩 힘들어하곤 했는데 충격이 예전만은 못하다. 나도 이제 엄마를 받아들여 가나 보다. 고칠 수 없고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상담 선생님이 예전에 그랬다. 나중엔 엄마를 불쌍하게 생각하게 될 거라고. 그때 나는 속으로 절대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를 향한 엄마의 미움은 가히 병적인 영역이고 거기에 휘둘리는 일에는 영영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괴로운 날들이 쌓이고 극복하려 노력한 날이 쌓이니 마음이 조금은 달라졌다.
처음 진심으로 엄마를 향한 연민이 느껴졌다. 가난한 집에서 차별받는 딸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이 아니다. 양가 도움 없이 오로지 부부의 힘으로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외동딸도 시집보내 손주도 생긴 지금. 오직 행복할 일만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도 불행을 만들어 불행한 것이 불쌍하다. 행복을 행복 그대로 볼 줄 모르는 엄마가 가엽다. 엄마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매일 노력하는 가족들이 있어도 모든 걸 꼬아서 보는 엄마가 안쓰럽다.
엄마가 나를 향해 가진 증오의 뿌리는 아마도 사랑받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엄마는 사랑을 주는 법, 사랑을 받는 법을 모른다. 하나뿐인 딸이 자신을 보듬어주고 안아주고 헤아려주었으면 하는데 내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까 분노하다 못해 미워하는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매정하고 쌀쌀맞은 딸'이라는 관념 속에 나를 가두고 홀로 자기 연민이라는 불행에 잠겨 있다. 엄마를 그 속에서 구해주는 것은 안타깝게도 내 능력 밖이다.
다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엄마의 그릇된 감정에 휘말려 함께 엄마를 증오하지 않는 것이다. 너무 오랜 세월 엄마의 말에 휩쓸리며 고통받았다. 나를 향한 가시 돋친 증오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그 너머의 엄마를 생각한다.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라 자주 실패하고 지금도 문득 마음이 울컥하지만 그래도 그러려고 한다. 그게 엄마를 향한 나의 최선이다.
나는 엄마와 같은 엄마가 되지 않는 것. 그게 나의 또 다른 인생의 목표가 될 것이다. 지금 내 배에 자리 잡은 깨알보다 작은 씨앗이 무사히 자라 태어나고 나면 그때가 긴 도전의 시작이 될 것이다. 나는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에게 미움받으며 자랐지만, 엄마와 달리 엄마를 미워하며 인생을 망치지 않을 것이다. 남편을 괴롭히고 자식을 괴롭히며 이유 없이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행복할 때 행복할 것이다. 아기가 생긴 지금 '내가 엄마처럼 되면 어떡하지?'라는 먼 두려움보다는 당장의 기쁨을 만끽하고 싶다. 행복할 때 행복해야 불행할 때 또 이겨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