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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근네모 Apr 15. 2024

엄마에게 카톡이별 당하기

나는 밥 먹듯이 엄마에게 버려진다

 국회의원선거였던 지난 10일, 일찍 투표를 끝내고 남편과 데이트를 즐길 야심 찬 계획을 세웠지만 갑자기 엄마에게 밥을 먹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거절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좋은 마음으로 부르는데 거절하기 미안해서 남편에게 양해를 구했다. 데이트는 취소하고 남편과 친정으로 가서 고기를 구워 먹고 낮술을 마셨다. 다 함께 산책을 나가 벚꽃 앞에서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사진도 찍었다.


 기혼자라면 공감할 텐데, 배우자를 데리고 부모님을 뵙는 것은 제법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혹여 배우자가 불편하진 않을지, 부모님이 말실수라도 하지 않을지 적잖이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이 날은 제법 성공적인 분위기였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기분이 좋았는지 너무 즐거웠다며 하트를 두 개나 붙인 카톡을 보내왔다. 뿌듯했다, 어리석게도. 엄마는 결코 내가 안심할 틈을 만들지 않는데.


 역시나 다음날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또 '그 카톡'이 왔다. 익숙한 패턴에 몸이 경직됐다.




교통사고처럼 찾아온 엄마의 카톡. 하루 만에 태도가 종잡을 수 없이 바뀌었다.


 엄마가 내게 이런 식으로 구는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다. 잊을만하면, 정말 잊을만하면 한 번씩 교통사고처럼 예고 없이 찾아오는 이벤트였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나는 번번이 태연하게 대응하는 데 실패한다. 매일 보는 진상 고객이라고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는데 엄마에게만은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카톡을 읽는 순간 핸드폰 글자가 안 보일 정도로 손이 떨리고 심장이 조여왔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결국 자리를 비우고 계단참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늘 이렇게 엄마에게 말리고 만다.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를 받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작게 외쳤다. 대체 또 무슨 일이냐고. 일하는 중인데 제발 이러지 좀 말라고. 계단에서는 아무리 작게 말해도 소리가 울렸다. 엄마는 이미 장전이 되어 있었다. 곧바로 악을 있는 대로 쓰며 이년 저년 하며 거의 비명을 내질렀다. 요지는 오전에 통화했을 때 피부과를 간다는 엄마의 말에 내가 걱정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거였다. 대체 관리받으러 피부과를 가는데 뭘 걱정해야 했던 걸까. 혹시 아파서 간 거였다면 그렇게 말하면 될 일인데 엄마는 도통 그런 방법은 몰랐다. 어떻게든 상황을 나쁘게 해석하며 자신을 피해자로 만드는 것밖에 몰랐다.


 엄마는 정해진 수순대로 예전 일까지 들먹이며 나쁜 년, 못된 년 하며 악귀가 씐 것처럼 쉬지 않고 막말을 쏟아냈다. 들먹이는 옛날 일들도 벌써 지겹도록 해명한 일이었는데 소용없었다. 엄마가 매번 꺼내는 일들 중 그나마 최신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작년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엄마가 남편 앞에서 곤란한 말을 했다. 당황해서 엄마랑 둘이 화장실에 갔을 때 사위 앞에서 그런 얘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게 다였다. 되레 내 쪽에서 서운하면 서운했지, 엄마가 이렇게 몇 년에 걸쳐 울고 불고 할 일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도 어김없이 다음날 퇴근길에 전화를 해서 연을 끊자고 하며 나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리고 이벤트 때마다 입에 올리는 서운한 것 리스트에 박제했다. 이러저러한 입장이라 그렇게 말한 거였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통하지 않았다. 내가 싫은 소리를 해서 그 순간 엄마가 서운한 기분을 느꼈다는 것, 그것만이 중요했다. 일단 그런 기분이 들었으면 무슨 짓을 해도 돌릴 수 없었다. 그리고 엄마는 마르지 않는 자기 연민을 바탕으로 어디서든 서운함을 창조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계단참에서 엄마의 폭언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졌다. 익숙한 내용이었다. 갱년기가 와서 우울한데 너는 내 걱정을 안 한다. 나를 보는 눈빛이 차갑고 쌀쌀맞고 매정하다.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너 같은 딸년은 세상에 없다고 한다. 너는 내게 해준 게 없다. 있으나 마나 한 딸이니 앞으로 얼굴 보지 말자.... 일단 시작하면 엄마는 믿어지지 않는 속도와 성량으로 폭언을 이어나갈 수 있었. 그 자기 연민과 피해망상으로 범벅된 고성을 더는 들을 수 없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가서 앉았다. 하지만 이내 화장실로 달려눈물을 말려야 했다. 이것 역시 익숙한 일이었다. 엄마는 항상 내가 학교나 회사에 있을 걸 알면서도 이런 연락을 했다. 일부러 더 미치게 만들려고 타이밍을 고르는 걸까? 겨우 진정하고 다시 나왔지만 고객을 상대하고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는 내내 스스로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도 몰랐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매번 겪는 일인데도 엄마에게 절연을 통보받는 순간은 익숙해지지 않고 울화만 쌓인다.


 살고 싶어서, 미쳐버릴 것 같아서 처음으로 상담을 예약했다. 집 근처에 있는 상담소였다. 당장 죽을 것 같아서 당일로 예약을 잡았다. 마지막 타임만 비었다고 해서 야근을 하며 밀린 일을 처리하고 늦은 시간에 상담소로 향했다. 가서 휴지 한 통을 거의 다 쓰며 울었다. 상담사는 긴 이야기를 들은 뒤, 엄마를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엄마는 달라지기 어려우니 내가 살기 위해선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했다. 이미 거리를 둘 만큼 뒀다 생각했는데 모자랐던 걸까. 떨어져 산 지도 거의 10년이 되었는데 어쩌다 같이 있는 시간이 1시간만 넘어도 이 사달이 났다.


 엄마는 때가 되면 자연재해처럼 돌아오는 이 시간, 그러니까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 있는 나를 교통사고처럼 덮쳐서 잠식해 버리는 이 시간이면 늘 내게 쌓인 게 많다는 말을 한다. 수십 수백 가지 이야기를 몇십 분이고 듣다 보면 모두 같은 맥락이다. 내가 당신을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 그리고 태도가 쌀쌀맞다는 것이다. 그것이 쌓여서 서운함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둘 다 어느 정도 사실이다. 나는 더 이상 엄마의 우는 소리를 들어도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 맹세컨대 쌀쌀맞게 굴진 않았지만(엄마가 또 폭발할 것이 두려워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럽기 때문에 감히 그럴 수가 없다) 엄마가 바라던 예전 모습처럼 엄마에게 곰살맞게 굴지도 못한다. 그게 엄마 입장에서 쌀쌀맞다면 쌀쌀맞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정말 모르는 걸까? 진심으로 모르는 것 같은 모습이 가끔 당황스럽다.


 나야말로, 엄마에게 쌓인 게 너무 많다. 늘 피해자를 자처하며 남에게 기대려고 하는 엄마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만이 유일한 내 살 길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걸핏하면 부부싸움을 했다. 서로를 죽일 것 같은 부부싸움 다음날이면 집에서 신발을 신고 다녀야 했다. 그리고 밤에는 엄마의 울음 섞인 하소연을 들었다.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내게 아빠 험담, 외할머니 험담을 했다. 밤마다 흐느끼며 내게 위로를 갈구했다. 성인이 된 지금 돌이켜보면 경악할 만큼 엄마는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도 어린 나에게 서슴없이 말했다. 나는 이른바 감정 쓰레기통이었다. 내가 그 역할을 의심 없이 수행해내던 때가 엄마와 나 사이가 좋았던 마지막 시절이었다.


 감정 쓰레기통 역할이 엄마에게 마음의 문을 닫게 된 결정적 계기는 아니었다. 그건 자아가 형성되면서부터 부여된 역할이라 미처 깨닫지도 못했다. 계기는 다름 아닌 대학생 때였다. 앞선 글에서 밝힌 적 있듯이 엄마는 절약에 대한 비이성적인 집착이 있다. 외할아버지의 투병과 외할머니의 남아선호사상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그 깊은 집착은 내가 대학생 시절 절정에 달했고, 그 지옥 같은 4년을 견디고 나니 더는 엄마를 이전처럼 대할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엄마는 마치 그 4년을 기억에서 모조리 지워버린 것 같았다. 당신이 내게 했던 그 모든 언행은 다 잊어버리고, 어릴 때와 달리 살갑지 않은 나에 대한 서운함만 끝없이 쌓아가고 있다.


 상담사가 내게 해준 말들은 대부분 내가 수십 년 간 살기 위해 스스로 생각해냈던 것들이었다. 엄마와 거리를 둘 것, 내 가족은 이제 부모님이 아닌 남편이라는 것을 명심할 것 등등. 모두 절박하게 일기장에 쓰고 또 쓰며 나를 일으켜 세우려 하던 말들이었다. 다만 생각지 못한 부분도 있었는데, 엄마가 내게 이러는 이유가 버려질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거라는 소리였다. 멀어질까 봐 두려운데 제대로 소통하는 법을 몰라서 어린애처럼 떼를 쓰는 거라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우습게도 엄마는 이 이벤트(그러니까 예고 없이 폭언을 퍼붓고 절연을 통보함으로써 내 모든 일상을 뒤흔들고 내가 어렵게 쌓은 행복한 감정을 다 부수어 깨버리는 일) 다음에 내가 다시 당신에게 살가워지기를 기대하는 태도를 보였다. 다시 말해, 엄마는 진심으로 그렇게 난동을 부리면 내가 당신의 서러운 마음을 깨닫고 참회하며 충실한 딸로 돌아오리라고 믿고 있는 거였다. 당신이 하는 것은 서운함을 토로하는 것이 아닌 내 정신을 부수는 폭력이며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긴다는 것을 그렇게 설명했음에도. 긴 세월 쌓아온 엄마의 자기 연민은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는 기능마저 망가뜨린 것 같았다. 불쌍한 사람. 엄마는 이 나이까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조차도 배우지 못한 거였다.


 엄마에 대한 이해를 하나 더했지만 여전히 해결책은 없었다. 참고 또 참아도, 감정을 억누르고 또 억눌러도 엄마와 제대로 된 소통을 이뤄내기란 불가능했다. 나의 상처에 대해 엄마에게 이해받는 것은 완전히 포기하고, 이 이벤트만은 멈추려고 애썼지만 그마저도 좌절되었다. "엄마, 엄마 서운한 것 다 알겠으니 제발 이런 식으로 갑자기 전화해서 막말만 하지 마. 안 본다는 말도 그만하고. 이러면 엄마 기분도 안 좋잖아." 그러면 엄마는 맞다고 했다. 막말한 건 미안하다고. 그런데 너한테 쌓인 게 너무나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엇이 서운한지, 리스트의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 목록 안에 갇힌 것처럼.


 억울한 것은 엄마가 진정 상처받은 사람처럼 구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못된 사람인지 나한테 이해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설명하며 나를 죽도록 괴롭히는 그 순간마저도 당신이 무고한 피해자이며 이것이 정당한 호소라고 믿고 있다. 나도 엄마에게 서운한 것이 많지만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고 역지사지를 시도해 보았지만 엄마는 정말 그걸 할 줄 몰랐다. 나도 엄마에게 서운한 게 있다는 말을 듣는 것마저 엄마에게는 서운한 일이었다. 내 상처를 보듬을 생각은 않고 너는 또 네 서운한 것만 말하려 든다고.


 낳아준 사람으로부터 절연하자는 말을 이렇게 많이 들은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엄마로부터 절연당할 이유가 나보다 많은 사람은 또 있을까? 나는 언제나 엄마의 손절 저울 위에 놓여 있다. 당신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며 감싸안는, 엄마 같은 딸을 원하는 엄마에게 나는 늘 참아줄 수 있는 마지노선에 서 있다. 그러다 엄마가 기록하는 서운함의 리스트가 쌓여 눈금 하나를 넘으면 버려진다.


 엄마와의 절연은 겨우 몇 달을 갈 때도 있고 1년 이상을 가기도 한다. 엄마의 절연 선언은 매번 실패할지라도 하나하나가 절절한 진심이다. 나 같은 막돼먹은 딸은 필요 없다는 다짐을 하고 또 하며, 왜 나를 버리는지에 대해서 나에게 이해받길 원한다. 나는 피부과 가는 엄마를 걱정하지 않아서 버려지고, 신혼집에 오고 싶다는 말에 난감한 눈빛을 해서 버려지고, 엄마의 이유 없는 난동을 갱년기라는 이유로 감싸안지 않아서 버려지고, 배가 불러서 밥은 됐고 카페를 가자고 했다고 버려진다(엄마는 사실 배가 고팠는데 내가 그렇게 말해서 밥도 못 먹고 돌아와 울면서 밥을 먹었다고 한다). 나는 엄마가 다짐과 실패를 반복하는 끝없는 여정 속에서 무너지고 일어선다. 카톡으로, 전화로, 가끔은 직접 이별 통보를 당하면서.

 

 엄마가 바라는 노력과는 방향이 다르지만 나는 나대로 노력하고 있다. 표면상의 평화를 유지하며 거리를 두고 원만히 지내는 것이 내가 원하는 방향이다. 엄마를 대하는 일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지칠 때가 많다. 엄마는 반대다. 죽고 못 사는 아주 살가운 모녀가 되거나(정확히는 내가 엄마에게 끝없이 애정과 보살핌을 제공하는), 그러지 못할 바에 절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바람은 언제나 양 극단을 오가나는 영원히 엄마의 마음을 채워줄 없다. 엄마의 울화는 엄마가 스스로 풀어나가야 숙제다. 엄마 당신이 그 어떤 짓을 해도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받아줄 누군가를 원하고 있는 한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우리 모녀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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