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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근네모 Mar 03. 2024

아빠와 노래방에 간 적도 있었다

기억을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

 중학교를 다닐 때쯤 아빠와 자주 노래방에 갔다. 퍽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빠와 나 사이는 기복이 매우 큰 편이었다. 사이가 안 좋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이좋게 지내는 기간이 있었다. 중학생 때는 그런 기간에 같이 노래방을 갔다.


 그때 가던 노래방 이름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지트'였다. 아지트 노래방 사장님은 아빠와 나를 기꺼워했다. 보통 내 또래 아이들이 노래방에 친구들이랑 오지 아빠랑 오는 경우는 드물다며 너무 보기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 나와 아빠는 그런 보기 좋은 부녀인 것처럼 행동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그 시기에는 실제로 사이가 좋았으니까. 하지만 또 마냥 '사이좋은 부녀'라고 당당히 말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것이 우리 관계였다. 그도 그럴 게, 아빠와 나는 한 집에 살면서 1년 넘게 말을 안 하는 시기도 있었다.


 원래 내 말이 거짓임을 아는 사람 앞에서 거짓말을 하기란 힘든 법인데 우리는 서로 앞에서 뻔뻔했다. 특히 아빠는 "다음에는 집사람도 데리고 오려고요"라고 사장님에게 사람 좋게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나는 아빠만치 뻔뻔하지는 못해서 그냥 자연스럽게 웃었던 것 같다. 아빠는 그때 무슨 마음이었을까. 사이좋은 부녀 역할이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아빠의 마음이 지금도 궁금하다.


 방에 입장하고 나면 즐거웠던 기억만 난다. 아빠와 나는 노래 취향이 비슷했다. 90년대 록발라드나 해외 밴드의 유명한 메탈 곡을 주로 불렀다. 이선희나 김광석을 부르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음악을 좋아하지만 생각해 보면 취향의 계기는 분명 아빠였다. 중학생 때 나는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좋아했다. 인정하면 지는 것 같아서 싫지만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 아빠와 취향을 공유하면서 드는 그 친밀감이, 아빠 취향의 노래를 좋아한다고 할 때 아빠로부터 뭔가 인정받는 듯한 기분이 좋았다. 아빠가 "네가 뭘 좀 아네" 할 때 그 뿌듯한 기분이란. 아빠가 나에게 록 밴드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나면 왠지 들떠서 그 대화를 몇 번이나 다시 떠올려 복기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평생 아빠와 친해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짝사랑이라도 하듯이. 사춘기 시절 죽도록 미워하면서도 너무 좋아했다. 물론 아빠 역시 외동딸인 나를 끔찍이 사랑했다. 나에게 잘해준 것이 너무나 많았다. 어린 시절 즐거웠던 기억엔 항상 아빠가 나랑 놀아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아빠에게 좀 '만만한 존재'였다. 그래서 기분이 좋을 때면 한없이 잘해주다가도 수틀리면 기분대로 나를 대했던 것 같다. 남보다 가족을 막대하는 것이 어디 아빠뿐이겠는가. 나를 포함해서 사람은 다 조금씩 그런 경향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아빠라는 성인 남성이 어린애한테 얼마나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는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어릴 때부터 내가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내가 아빠보다 덩치가 컸다면. 내가 아빠보다 힘이 셌다면. 그러면 아빠를 이렇게 무서워하지 않았을 텐데. 아빠도 나를 이렇게 대하지 않았을 텐데. 아빠는 어느 날에는 너무나 재밌는 친구였다가 어느 날에는 무법자고 폭군이었다.


 나이를 먹은 지금도 아빠가 나를 대했던 태도를 떠올리면 뭔가 수치심 비슷한 기분이 든다. 너무 잘 보이고 싶었던 상대에게 나는 그렇지 않은 존재였다는 것이, 그럼에도 나는 어떻게든 친해지려고 애를 썼다는 사실이 그런 기분을 들게 한다. 아빠는 나를 사랑했을지언정 나를 '잘 보여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아빠가 이 글을 본다면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말해주길 바라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그런 수치심은 때로 좋은 추억마저도 왜곡해 버린다. 아빠와 즐거웠던 추억조차도 '아빠의 변덕스러운 호의에 배알도 없이 좋다고 어울렸던 내 모습'으로 곡해되며 급발진적인 분노로 변하는 것이다. 그런 기분에 빠지지 않으려면 무던히도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은 연습 중이다. 기억을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이다. 노래방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도 그중 하나다. 아지트 노래방에서 나는 분명 아빠와 즐거웠다. 사장님 앞에서 사이좋은 부녀 행세를 했던 것을 뻔뻔스럽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그때의 기분은 쑥스러움에 가까웠다. 속으로 아빠를 비아냥거렸지만 그건 아빠와 실제로도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던 마음에서 기인했던 것 같다. 아빠도 같은 마음이었다고 믿는다.


 가족과의 기억은, 특히 아빠와의 기억은 모순된 것들이 많다. 너무 좋았던 기억과 너무 나빴던 기억들이 온통 뒤섞여 있다. 그걸 정리해 나가는 것이 꼭 내 평생의 숙제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정리가 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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