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둥근네모 Feb 24. 2024

부모님을 닮은 나

하드웨어는 그렇다 치고 소프트웨어까지....

 내가 부모님을 닮았음을 절감하는 순간이 있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나이를 먹으며 자아성찰 레벨이 올라갈수록 그런 순간이 자주 온다. 미처 의식하지 못했지만 나는 아빠와 비슷한 일에 짜증을 내고 엄마랑 비슷한 방식으로 화를 낸다. 아마 자라면서 아, 이런 때는 짜증을 내는 거구나. 화가 날 때는 이렇게 표현하는 거구나, 하면서 습득한 게 아닐까? 그런 걸 보면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나의 모든 싫은 습관들까지도 복제해서 남겨두는 거니까.


 아빠는 화를 잘 낸다. 뭔가 뜻대로 안 되면 성질부터 내는데, 특히 물건과 많이 싸웠다. 옷에 달린 지퍼나 한 번에 짝이 딱 맞게 집어지지 않는 젓가락 같은 것에 그렇게 분노했다. 다 큰 지금에서야 그게 좀 웃길 때도 많은데 어릴 때는 무서웠다. 시한폭탄 같았다. 그래서 상황이 아빠 뜻과 다르게 돌아가는 것 같으면 내 심장이 먼저 조여왔다. 그러다 사춘기가 되었을 쯤엔 내가 겁먹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해서 덩달아 짜증을 내어 그 불안을 해소하곤 했다. 아 쫌! 아빠 그만 좀 해! 속으로는 엄청 쫄았으면서 그랬다. 아빠는 내가 무서워서 뭔 말을 못 하겠다고 했지만 그건 실은 내가 했어야 할 말이었다.


 아빠의 그런 성향을 그렇게나 싫어했는데, 요즘 물건하고 씨름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면 우습고 허탈하다. DNA에 각인되기라도 한 것처럼 설거지를 하다 수저라도 수챗구멍으로 빠질라 치면 갑자기 아빠가 빙의돼서 짜증이 치민다. 이런 걸 닮게 될 줄은 몰랐는데. 고치고 싶지만 어릴 때부터 꾸준히 학습된 뇌는 쉽게 수정되질 않는다. 뇌: "이럴 때는 화내는 거라고 배웠는데요?" 이미 아빠의 방식대로 코딩이 되어 있다.


 엄마한테서도 물려받은 것이 있다면 그건 다혈질적인 성향과 순두부보다 무른 유리멘탈이다. 엄마는 어째서인지 내가 당신과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믿고 있지만 콩 심은 데 콩 나고 부모 심은 데 자식이 난다. 자녀가 너무 마음에 안 드는 부모는 한 번쯤 자아성찰을 해봐야 한다. 얘가 누굴 닮아서 이러는가. 제조자에게 원인이 있지는 않은가, 하고.


 아마 누구나 자라면서 부모님에게 서운한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중 어떤 것은 나이를 먹으며 이해하게 되고, 어떤 것은 더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나도 그렇다. 부모님이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서로를 만나 자식을 키우면서 얼마나 어려운 일이 많았을까. 이제 나도 부모님의 많은 잘잘못들을 십분 이해한다. 다만 아직까지 담아둔 채 풀지 못하고 있는 응어리도 있는데, 몇 번인가 진정한 화해를 기대하며 말을 꺼내봤다가 본전도 못 건지고 화만 불렀으므로 이젠 속에 묻어둘 뿐이다. 가끔 꿈자리가 뒤숭숭한 밤에만 꿈속에서 싸우다가 울며 깨어난다. 억울하게도 꿈속에서조차 항상 내가 처참히 진다.


 부모님을 원망하는 부분이 있는 한편, 내가 부모님을 똑 닮아가는 것을 느낄 때면 부모님조차도 부모님에게 물려받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부모님도 부모님으로부터 비슷한 성향을 물려받은 거겠지. 그러면 컴플레인할 곳(?)을 잃은 채 약간 막막한 심정이 된다. 이 성질머리는 어디서부터 내려오는 걸까. 조상 중 최초의 성격파탄자는 누구였을까.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내가 아빠보다는 덜 화내고 엄마보다는 덜 다혈질에 유리멘탈이라는 것이다. 후대로 갈수록 조금이라도 개선이 되는 걸까? 그것도 쉽게 되는 것은 아니고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만 쬐끔 수정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딩크로 마음이 조금 더 기운다. 이 성질머리를 굳이 하나 더 만들어 낼 게 무섭다. 윗대에서부터 내려온 긴긴 이중나선 구조를 내 선에서 다 고쳐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정신수양을 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건조해서 가습기, 습해서 제습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