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트리거와 한국적 상황

by 파르티잔


우리 마음속엔 모두 트리거가 하나씩 들어있다. 극한 상황이 되면 방아쇠는 당겨지고, 화약이 폭발하고, 총알은 총열을 통해 총구를 벗어나 적의 심장을 향해 날아간다. 결과는 책임져야 하지만 내 마음의 응어리는 풀어지고, 나는 드디어 그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새가 된다.


한국은 총기가 엄격하게 규제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총기가 없기 때문에 다른 나라도 우리와 같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한·중·일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총기 소유가 가능하다. "규정이 엄격하거나 느슨하다"는 차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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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사람들은 모두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사회적 불만 또는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검색창에 '총기 구입'이라는 단어를 입력한다. 그러면 총기가 택배를 통해 전달되고, 그는 드디어 총기를 손에 쥐게 된다. 이제 그는 세상이 조금은 쉬워 보인다.


"까불면 죽어. 아니면 나한테 총이 있어. 나를 자꾸 자극하면 내 손의 총이 너를 향할 수 있어."


학폭 가해자는 총을 든 피해자를 향해 살려달라고 빌고, 참혹하게 죽은 노동자의 어머니를 벌레 취급하던 사장은 그녀의 손에 총이 쥐어지자 벌벌 떨며 한 번만 봐달라고 무릎을 꿇는다. 아마 드라마를 보면서 내 손에 총이 있다면 '죽여버리고 싶은 사람'이 한 명쯤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내 손에 총이 있다면 누구를 죽이고 싶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는데, 딱히 내 주변에 그렇게까지 죽이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스무 살 때의 나였다면 꽤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조리한 사회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자살하거나, 혹은 죽이거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현실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총을 가지고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총이라는 것은 나만 가지고 있고 상대는 없을 때 효용이 최대화된다. 하지만 나도 가지고 있고 상대도 가지고 있다면, 그 효용은 하향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롤러코스터와 같이 급락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총기 소유가 가장 쉬운 나라 미국은, 나뿐만 아니라 상대도 총을 가지고 있기에 오히려 힘의 평형이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총기로 죽는 사람은 연간 4만 명 수준이다. 꽤 많은 수가 총기로 죽는다.


한국은 총기로 사망하는 사람이 거의 0에 수렴한다. 하지만 한국은 더 많은 사람이 자살로 죽는다. 물론 자살하는 모든 사람이 누구 때문에 죽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불안, 우울, 울화, 경제적 결핍과 우울증 또는 공황장애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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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한 해 자살하는 사람은 1만 4천 명 정도다. 미국 인구와 비교하면 한국에서 자살로 죽는 사람이 미국의 총기 사망자보다 많다. 더구나 미국의 총기 사망자 수에는 총기로 자살한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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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구(약 3억 4,300만 명)는 한국 인구(약 5,170만 명)보다 약 6.6배 많다. 한국의 자살 사망자 수를 미국 인구 비율로 환산하면 한 해 거의 10만 명 가까이 된다. 이는 미국의 총기 사망자보다 2배나 많은 수치다. 극단적으로 설명하면 **"한국은 자신에게 총을 쏘고, 미국은 타인에게 총을 쏜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 대부분은 평생 자신의 마음속에 트리거를 꼭꼭 숨겨두고 산다. 그 응어리가 한이 되고 울화병이 되며, 스트레스가 극단으로 치달으면 결국 자신을 향해 트리거를 당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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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한국에 총기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왕따 시키던 가해자가 줄어들까? 갑질하는 사장은 좀 더 노동자를 배려하게 될까? 여자라고 무시하거나 가난하다고 멸시하는 사람은 줄어들까? 우리 사회의 부조리는 줄어들까? 갑질하는 검사와 판사는 퇴근길에 총을 든 사람이 찾아와 자신의 머리에 구멍이 날까 봐 좀 더 정의로운 행동을 할까?


미국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으므로 이것은 아닐 것이다. 총기가 없는 대한민국은 현시점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하나다. 누구도 타인의 물건에 함부로 손대지 않고 타인을 가해하지 않는다. 여자가 밤중이나 새벽에 노천을 달려도 아무렇지 않은 나라는 많지 않다.


드라마를 다 보지 않았다. 총기를 들고 트리거를 당긴 사람들은 대부분 감옥에 가거나 죽는다. 한국에 총기를 퍼뜨리고자 하는 인물은 한국에서 끔찍한 기억을 가진 해외 입양아다. 한국은 여전히 총기 청정국가이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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