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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티잔 Jul 05. 2024

정원일기 5편 흰 백합 경계에 서다.

10년 넘게 꽃 한 번 피우지 못한 사연



#흰 백합 경계에 서다.




처음 집을 짓고 고향 집에서 가져온 백합이다.

생명력이 좋아 어디든 뿌리를 잘 내리고

잘 번진다. 잘 죽지도 않는다.



이 백합은 매년 저 자리에서 나온다.

하지만 매년 예초기로 잘라 버리곤 했다.


화단과 잔디밭 경계에서 크기 때문이다.

내가 심은 것은 아니다.

어쩌다 보니 저 자리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물론 저 백합도 우연히 저 자리에 자리를 잡은 것이지

꼭 경계에 자리를 잡으려고 했던 것도 아닐 것이다.



어쩌다 보니 경계에서 자랐고 

10년 넘게 꽃 한 번 피우지 못하고

매년 댕강댕강 잘려 나갔다.


올해는 예초기로 작업할 때 백합을 자르지 않았다.

아니 그동안에도 내가 꼭 잘라 버리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신경을 쓰지 않았고 화단 밖으로 나와 있으니


생각 없이 자른 것이다.


이번엔 신경을 써서 작업했고 마침내 꽃도 피었다.

정원에 있는 어떤 식물이든 쉽게 피는 꽃은 없다.

관심을 두고 살펴 줘야 꽃을 피우고 유지가 된다.


그동안 정원에 만발했던 많은 식물이 사라져 갔다.



한때는 개양귀비가 한가득했는데 


3년 전 마지막 한 송이가 피더니 


내 정원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허브도 20종이 있었는데 


이제 3~4종이 귀퉁이에 남아 있을 뿐이다. 

내가 일부러 죽이지는 않았다.

단지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한때는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예뻐서 심었지만, 시간이 지나가고 관심이 무뎌진다.

눈앞에서 점점 멀어지고, 

어느 날 살펴보면 이미 내 곁을 떠나 있는 경우가 있다.

생명은 유한하고 영원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다시 내가 관심을 두고 작업을 한다면

백합은 저 자리에서 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또 언제 변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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