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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티잔 May 29. 2024

1편 빈터... 우리들의 봄날 [소설]






빈터... 우리들의 봄날     

1.     

매캐한 최루탄 연기가 벚꽃처럼 피어올랐다.      

수현은 날아오는 최루탄이 강진의 다리에서 불타오르는 것을 봤다.      

강진이 벌벌 떨고 있었다.      

수현은 강진에게 달려가 불을 껐다.      

불탄 바지가 다리에 붙어 있었다.      

강진이 머뭇거리는 것을 본     

백골단이 강진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뛰어...      

강진과 수현은 교문 안으로 달려갔다.      

“휴... 다행이다..     

잡힐 뻔했잖아.”     

교문 안으로 들어와 상처를 살펴봤다.      

불탄 바지가 피부에 달라붙어 있었다.      

스티거를 떼어내듯 달라붙은 바지를 떼어내자      

강진의 피부가 함께 벗겨졌다.     

“병원에 가자….      

많이 아프지…. “     

“뭐. 괜찮아…. “     

“뭐가 괜찮아....     

엄청 아파 보이는데….”      

강진과 수현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같은 과에 들어왔다.      

고등학교 때 말이 없고, 얌전하던 강진이 시위 현장에 나온 것을 본 수현은 많이 놀랬다.      

그럴 놈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수현은 강진을 집에서 학교까지 매일 부축했다.      

강진은 다행히 학교 근처에 살았다.      

그렇게 한 달을 수현은 강진의 아픈 다리를 대신했다.      

한 달이 지나자 강진은 스스로 거를 수 있었다.        



  

2.     

강진은 문학서클에 가입했다.

들어가 보니 운동권 서클이었고 선배를 따라 

그날 처음으로 집회에 나갔다가 화상을 입은 것이었다. 

강진의 다리에는 화상자국이 남았다.            

그 후 그들은 한 달 동안 보지 못했다. 


수현은 학교 서클 활동에 빠져 있었다. 

강진과 수현은 각자의 서클에서 활동했다.     

강진이 가입한 해방문학 동아리는 말만 문학 동아리지 운동권 양성소라고 불리는 학교에서 유명한 동아리였다. 강진의 권유로 수현은 서클에 가본 적이 있었다.   

  

서클방은 학생회관 지하에 있었다.

수현이 지하 서클방을 열고 들어가자 5~6명의 꽤 나이가 있어 보이는 

선배들이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었다.

오래되어 보이는 책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강진이 만나러 왔는데요?”     

"네가 수현이냐?"     

"네"     

"강진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너 고등학교 때부터 학생 운동을 했다며?     

"네……. 그런 그것은 아니고 그냥 참교육 운동할 때 강당에서 연설을 좀 하기는 했습니다."     

"대학생들 집회 때 따라다니기도 하고요"     

"너 나경이를 안 다며?"     

네….      

나경 선배는 수현이 고등학교 때 만난 선배다.

고등학교 때 수현은 경찰서 근처에서 살았다.

매일매일 경찰서 앞에서 시위가 있었다.     

경찰서 앞에서 시위대를 따라가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수현 옆에 있던 선배가 나경 선배였다.     

"야. 고등학생 아니야?"     

"네….     

그런데요.     

고등학생이 여기 나오면 어떡해….     

잡히면 너 고생한다..     

그럼 누나는요.     

잡히면 고생 안 하나요?   


뭐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대학생이고 너는 고등학생이잖아….     

상황이 달라….     

뭐…. 저는 달리기 잘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누나…. 딱 보니 잘 달리지 못해서 경찰에게 잡힐 것 같은데요.     

야. 너 누나를 뭘로 보는 거냐.     

누난 절대 안 잡힌다..     

왜요.     

누나는 변신하면 되거든.     

그러면서 가방 안에 가발과 다른 옷을 보여 주었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   


나경 선배를 수현은 그 후로도 몇 번 시위현장에서 만났다.     

사실 나경 선배를 만나기 전에도 수현은 대학교 앞에 서점에서      

매일 운동권 필독서를 사서 읽고 있었다.     


찰학에세이나 강철서신 같은 책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집회에 참여한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경 선배와 몇 번 만나면서 막연하게 대학교에 들어가 학생 운동을 해야겠다는 수현은 생각했다.     

어쩌면 수현에게 학생 운동은 대학에 입학한 유일한 이유였다.  

 

"수현이 너 우리 서클에 가입하지 않을래"     

"네 친구 강진이도 있고….     

"전 이미 가입한 서클이 있어요.     

"아. 그래.     

"서클 두 개 가입한다고 잡아가는 것도 아닌데.     

근데 선배님들은 나이가 있어 보이는데요?     

우리…. 나이가 좀 있기는 하지….     

학생 운동이라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거든….     

네….     

수현은 그 서클에서 나왔다.     

그때 강진이가 서클로 들어오고 있었다.     

수현아.. 오랜만이다.     

우리 서클에 왔구나.     

어..     

같이 들어가자.     

내가 선배들 소개해 줄게.     

아니야…. 이미 만나고 왔어….     

그래….     

우리 서클에 가입할 거야?     

아니야. 난 서클에는 가입 안 하려고.     

왜?     

생각이 좀 달라서….     

그래….     

나중에 보자.     

강진이 가입한 서클은 총학생회장을 주로 배출하는 유명한 서클이었다.     

수현은 이미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현과는 성향이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강진이도 알고 가입한 것일까?     

 

강진이 학생 운동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강진은 고등학교 때 강당에서 내가 연설을 했을 때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눈빛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일이 지난해 5월이니까 1년도 지나지 않았다.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에 가입한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강진의 인생이니 내가 개입할 일은 아니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3.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수현은 나경 선배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나경 선배를 만나지 못했다.     

수현은 나경 선배가 다니는 국문과에 가봤지만, 나경 선배는 학교에 나오지 않은 지 꽤 되었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나경 선배는 어디로 간 것일까? 수현은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 만난 나경 선배는 어쩌면 수현이 이 대학에 들어온 이유 중에 하나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3살 차이였지만 수현은 나경 선배를 좋아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는 나의 이런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학교에 없었다. 어디로 간 것인지 수소문했지만 분명하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열혈 전사처럼 보였던 나경 선배는 알고 보니 열혈 운동권도 아니라고 했다.     

몇 번 나온 시위에서 나랑 몇 번 만난 것이 전부였다.     


[나경선배는 그냥 운동권이라기보다는 운동을 지지하는 정도 불가해..] 이게 대부분의 평가였다.     

수현은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몇 번 만난 선배가 좋다고 이 학교를 선택한 것도 그렇고 어디로 가버린지도 모르는 나경 선배 주변 친구들도 그렇고….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수현은 생각했다.      

4월이 된 학내에는 4.3 항쟁 세미나를 한다는 대자보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3월이 등록금 투쟁이 계절이라면 4월은 4.3 항쟁과 4.19로 연결되는 집회시즌이었다.     

세미나를 통해 신입생들을 확보하려는 동아리나 학회나 생회에서 열심히 홍보하기는 했지만, 참가 인원은 많지 않았다.      


이미 80년대를 지나고 90년대에 접어든 학생 운동은 조금씩 시들해지고 있었다.     

투쟁의 대상이 명확한 때는 전선이 명확하고 투쟁은 불길은 쉽게 오르기 마련이었다,     

사업이라면 이제 학생 운동은 레드오션이었다.   

  

집회 현장보다는 도서관을 행하는 학생들이 더 많은 시기였다.     

학생 운동을 하기 위해 대학에 입학한 수현은 이 상황이 불편했다.     

시들해진 전선이 아니라 시들해진 운동권들의 나약함이 문제가 아닌가?      

수현은 생각했다.      


여전히 군부 독재의 이인자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고 작년에만 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을 목숨을 버린 학생들이 몇 명인가? 여전히 통일은 멀고 노동자들의 삶은 팍팍했다.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해야 할 일이 없었다.      

선배들을 찾아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이야기해 보면 그만 생각하라며 술을 사주는 선배 말고는 특별하게 대안을 가진 사람도 없었다.     


세상은 멀고 술은 가까이 있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있었다. 

이제 곧 방학이었고 학교엔 농활대를 모집한다는 현수막이 보였다. 수현은 참가하지 않았다. 

수현은 농사일이라면 이미 집에서 충분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농할을 하려면 집에서 집안일을 돕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가하게 농활이라 갈 만큼 집안에 넉넉하지도 않았다.

여름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여름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수현은 막노동일을 나갔다.     

강진은 농활로 수현은 막일 현장으로 각자의 길을 선택했다. 

     

강진은 수현이 부러웠다.     

수현은 생각에 막힘이 없었다.     

강진은 우연하게 문학서클 선배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집회까지 나가게 되었다.

첫 집회에서 강진이 던진 화염병이 안 깨지자 전경이 그걸 다시 강진에게 던졌다.

그런데 우물쭈물 하다가 자신의 다리에 불이 붙어 버린 것이다. 

그 일로 학교에서 유명해졌고 선배들도 강진을 더 아꼈다. 

하지만 스스로 운동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강진의 부모님은 오랜 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아는 부모님의 모습은 10년 전의 멈춰 있었다.     

사실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막내로 태어난 강진은 터울 많은 누님집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성적에 따라서 지방대에 입학했다.     

아니 다른 곳에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았다.  

   

화물차 운전을 하는 매형의 벌이로는 서울에 있는 대학은 꿈도꾸지 못할 일이었다.

어떻게든 누나집에서 대학까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강진은 하고 있었다.       

강진의 누이 명숙은 처음 강진이 집회에서 다친 것을 보고 오래전에 사고로 떠나 부모 생각이 났다. 

겁이 덜컥 났다. 강진이도 이러다 죽는 것이 아닌가.. 방송에서 대모 하다가 죽은 학생들을 명숙은 기억하고 있었다.       


더구나 명숙이 처음 일을 했던 공장에서도 대모를 하다가 다치고 끌려간 언니 오빠들이 있었다. 16살이 되기도 전에 명숙은 부모를 대신해서 동생을 키워야 했다.     

명숙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공장에 들어가서 일을 했다.

그리고 거기서 만나 화물차 운전기사였던 철민과 결혼했다.


다행히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다 동생 강진과 사는 것도 그는 좋아했다.     

"내가 화물차 운전 때문에 멀리 떠나는 날이 많잖아.. 동생과 함께 있는 것이 더 맘에 놓여"     

남편이 이런 말을 했을 때 명숙은 눈물이 나왔다. 고마웠다.

강진은 이 모든 일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3월이 가기도 전에 집회에 나갔다가 화상을 입었다.

누나에게는 대충 다른 일로 다쳤다고 둘러 말했지만 강진은 맘이 편하지 않았다.

아무 고민 없이 학생운동에 전념하는 수현이 강진은 그래서 부러웠다.     

수현아 너는 학생운동하는 것.... 고민 없어? 강진이 물었을 때 수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없어.”     

 강진은 그렇게 짧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수현은 여름 내내 공사판에서 일했다.

조적공 시다를 했다.

벽돌을 쌓으려면 시멘트가 필요하다.


수현은 여름 내내 시멘트를 비벼 조적공에게 날랐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집합 장소에 나가면 봉고차가 수현을 실었다. 

현장에 나가면 6시 그때부터 오후 5-6시까지 

9시 12시 3시 새참과 점심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종일 시멘트나 벽돌을 날랐다.

손은 시멘독이 올랐다. 40장씩 벽돌 지게를 지어 옮기거나 모래를 퍼 날랐다.

허리와 다리가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일하면 하루 일당이 4만 원이었다. 적은 돈이 아니었다.

등록금을 마련하려면 하루도 쉴 수 없었다. 

매일매일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저녁에 버스를 타면 수현의 몸에서는 쉰내가 났다. 

창피했지만 수현은 어쩔 수 없었다.      

함께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대부분 50-60대였다. 

저분들이 평생하고 있는 일인데 한 두 달 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하다 보면 익숙해져.. 나도 처음엔 죽도록 힘들더라고... 하지만 목구명이 포도청이고.. 처자식에 학교도 보내야 하고... 뭐 그러다 보니 30년이네.. 함께 일하던 김 씨 아저씨는 수현에게 항상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학생은 끝나면 대학생이고 졸업하면 이런 일은 안 할 것 아니여... "


수현은 여름 내내 땀과 시멘트 냄새로 큼큼했다. 하지만 부모에게 손을 내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수현은 버텼다. 두 달간의 노동일이 끝나고 수현은 학교에 돌아갔을 노동에서 해방된 기쁨을 느꼈다.      

수현은 노동해방의 열사로 살고 싶다고 생각다. 진짜 해방된 것이다.

이렇게 힘든 것이 노동이라는 것인데.


일도 하지 않고 자본을 가졌다는 이유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은 분명 부당한 일이다.

수현은 점점 세상이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잘못된 세상은 바꿔야 해.. 


같은 노동 시간이라면 같은 소득을 버는 것은 정당하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노동의 가치라는 것은 차별할 수 없다.

의사와 노동자가 8시간을 일했다면 당연히 같은 수익을 얻어야 한다.

이것이 수현의 생각이었다. 


2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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