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처음 만난 선배에 집에서 기생했다.
대학 3학년 때
그해 처음 만난 선배에 집에서 기생했다.
그해 겨울 처음 만난 서울에서 내려온 선배는 86학번이었다.
어찌어찌하여 복학을 했고 지하 술집에서 처음 만났다.
그 술집 이름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민중가요 제목이었던 것 같은데 아마
"노동의 새벽 아니면 일터... 뭐 그런 이름이었다.
그 술집 주인은 그 선배였다.
그날 나는 많이 취했다.
그 선배 집에서 잠을 잤다.
그리고 그 집에서 1년을 살았다.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인데
고맙게도 그 선배는 나와 함께 사는 것을 흔쾌하게 수락했다.
선배 집이 없는데 함께 살아도 되나요?
네 맘대로 해라!!
우리는 그렇게 1년을 살았다.
대신 나는 시골에서 쌀과 김치 같은 반찬을 가져왔다.
즉 선배는 집을 제공했고 나는 식량을 제공했다.
하지만 내가 매주 집에 가는 것도 아니다 보니
반찬은 거의 없었다.
아마도 6월이었을 것이다.
모든 반찬이 떨어졌다.
남은 것은 오직 쌀과 마늘 그리고 고추장 뿐이었다.
선배는 밥을 먹지 않았지만 나는 매 끼니를 마늘과
밥 그리고 고추장으로 보름 동안 해결했다.
그 후 선배는 나를 만날 때마다
저 녀석은 아마 전생의 곰일 것이라고 말하면 웃었다.
매일 마늘과 고추장 밥을 먹어서 그랬을까?
그해 나는 속이 매우 쓰리고 아팠다. ㅎ
그 선배는 요즘 연락이 되지 않는다.
8-9년 전 서울 마라톤 대회에 갔을 때도
그 선배 집에서 하루 잠을 잔 적이 있다.
우리는 그 때의 추억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었다.
대회가 끝나고 운동장에서 입구에서
나를 기다렸고 우리 다시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몇 해 전 후배 장례식장에서 만났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당뇨병을 앓았다.
그리고 몇 해전부터는 신장 투석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
소문에는 요양 병원에 있다고 했다.
아무도 연락이 되지 않으니,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다.
며칠 전 순천에서
구례로 넘어가는 고속도로에서 전화를 해봤다.
신호는 가지만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살아서 다시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