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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르티잔 Aug 22. 2024

비오는 날에 쓰는 편지

영어 수업 중인데 자꾸 창밖을 봅니다.

오늘도 비가 옵니다.

그래서 오빠 생각이 났어요.

영어 수업 중인데 자꾸 창밖을 봅니다.

창밖엔 비가 내리고 교문 밖에

오빠가 저를 기다리는 상상을 해봅니다.

하지만 당신은 멀리 있고,

네 마음을 모르죠.


가끔 오빠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어요.

기억하세요.

답장은 없었지만…. 


비를 핑계로 편지를 쓰고

여름이 덥다고 가을이 와서 좋다고

첫눈이 내렸는데 어찌 사냐고

다시 봄이 왔다는 편지를 썼죠.

답장은 없었고,

저만 편지를 보냈죠.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비가 오면 당신 생각을 합니다.


아마도 언제가 비 오는 날

오빠와 함께 둘이 밤새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날

내 사랑이 시작된 것 같아요.


그래서 비만 오면 처마에서 서서

지시랑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죠.

똑똑..... 

물소리를 듣다 보면 제가 반기는 소리가 들렸어요.


뚜벅뚜벅…. 오빠가 걸어오는 소리

제 가슴도 두근두근 했었는데


저에게 "요즘은 어떠냐라든가 "편지는 읽었어}라는 

간단한 질문에도 마음이 떨렸죠.


그런데 벌써 40년이 흘렀어요.  

이제 늙어 버렸고,

청춘의 흔적 조차 찾아보기 힘든

나이죠.


그래도 가끔 비 오는 날

학교 앞 문방구에서 예쁜 편지지를 고르고,

글씨가 잘 써질 것 같은 펜을 고르고, 

꾹꾹 예쁘게 글씨를 쓰고 우표를 사고,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그 편지가 가고,

그렇게 당신이 제 편지를

펼치고 글자 하나하나 읽는

당신의 모습을 상상하곤 합니다.


이제는 당신의 주소도 모르고

당신이 나를 기억하는지도 모르는데,

저는 이제 남아 있는 삶이 많지 않고,

그래서 오늘 오래된 당신의 주소로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우리가 연인이 되지 못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나는 항상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당신은 항상 저를 아는 동생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저는 생각했죠.


마지막 밤 제가 당신을 찾아갔을 때

당신은 그냥 오랜 후배가 찾아온 듯

술 한 잔 먹고 결혼 축한 한다며 잘 가라는 말을 하고는

떠나죠.


그때 제가 고백해야 했는데

저는 그런 용기가 없었습니다.


제 결혼식에 와서 저를 보고는

축하한다는 말 대신

"우린 둘 다 용기가 없었다"는 말을 남기고는

떠나셨죠.


저는 당신도 저를 사랑했다는 고백을

그때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저는 결혼식장에 걸어 들어가고 있었죠.


그래서 아마 더 눈물이 났던 것이었을까요.

그래도 저는 중매로 만나 두 달 만에 결혼한

남편과 40년 동안 아내로, 엄마로 충실하게

살았답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 생각이 나네요.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세상의 모든 것이 알고 있다는 구글 검색을 해도

SNS를 검색해도 당신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군요.


이 편지가 도착하면 저는 더 이상 이승의 사람이

아닐수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당신의 손에 이 편지가

도착한다면 부디 저를 잊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저는 언제나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다고요. 

선호는 어제 이 편지를 받았다.

그도 그녀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한 번도 잊지 못한 이름이었다.


그가 평생 유일하게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살아 있다면 그녀를 만나야겠다고 선호는 생각했다.

아진의 주소는 영어로 되어 있었다.

그는 서둘러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선호는 캐나나 동부의 뉴펀드랜드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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